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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이동하기: 베트남사람들의 발, xe máy

by 문성 moon song


베트남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거대한 오토바이의 물결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그걸 짐작해본 적이 있는지?


내 상상속 베트남은 야자수와 같은 열대나무의 우거진 초록과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호치민의 뜨거운 태양이었다. 그런데 실제 베트남에 도착해 마주한 풍경은 상상 속 베트남 풍경에 수많은 오토바이들과 엔진소리와 경적소리와 배기가스를 더해야 했다. 상상속 고정관념에 갇혀있던 베트남의 이미지는 달리는 오토바이와 함께 청각과 후각과 촉감이 더해진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이미지들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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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도도한 물결처럼 쏟아지는 오토바이들을 입을 떡벌리고 바라보곤 하다가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엔진소리와 들이마시기 걱정스러운 배기가스냄새에 눈살을 찌푸리고 나중에는 오토바이가 지나가건 말건 오토바이가 옆에 서 있건 말건 상관없이 걷고 앉고 마시고 먹고 떠들어댔다. 어딜가든 볼 수 있는 오토바이는 그야말로 베트남사람들의 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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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고 어디든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오토바이에 앉은 채 노점상에 음식을 주문했다. 노점상을 발견할 때마다 멈춰 서서 구경하고 입맛을 다시고 기어코 주문을 하고야 마는 동안 사람들은 미끄러지듯 노점상 앞으로 다가와 엔진을 끄지도 않은 채 주문을 외치고 탈탈거리며 음식을 기다리다가 음식이 든 봉지를 오토바이 손잡이에 걸고 다시 미끄러지듯 도로 위의 오토바이 대열에 합류해 사라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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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오토바이 위에 앉아 크리스마스 미사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문이 활짝 열린 성당 앞 계단까지 서 있는 사람들 뒤로 너른 마당에 오토바이를 탄 이들이 오토바이를 비스듬히 세우고 오토바이에 앉은 채 안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말씀을 듣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들을 구경하느라 미사가 끝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설교를 듣다가 옆에 선 오토바이 주인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설교가 끝나기 전에 떠나기도 하는 자유분방한 신자들은 미사가 끝나자 일제히 굉음을 내며 성당을 떠났지만 성당 주변에는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오토바이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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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맞이 행사 역시 빵빵대는 오토바이들과 함께 도로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밤기차를 타기 위해 노곤한 몸과 무거운 짐을 끌며 길을 걷는데 벌떼들이 날아다니듯 여기저기서 윙윙대며 오토바이들이 나타나 밤거리를 질주했다.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오토바이들이 모여들고 도로와 인도 위에서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고 꼭 사물놀이나 사자놀이같은 전통음악과 전통춤공연이 한바탕 벌어졌다. 색색깔의 헬맷을 쓰고 싱글벙글하며 지나치는 맞은편 운전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달리는 오토바이들이 공연을 벌이는 무리들을 에워싸 이내 공연 소리는 오토바이들의 굉음에 묻혔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들뜬 분위기를 전하는 오토바이들의 장관이야말로 공연의 하일라이트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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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쯤 되고 나면 여러분도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지지 않을까? 나 역시 다음 도시는 오토바이를 타고 현지인처럼 거리를 누벼보리라 다짐을 하며 기차에 올랐다. 후에에 도착하자마자 허기를 채우고 몇 군데를 찾아가 흥정한 끝에 하루일정으로 오토바이를 빌렸다. 저렴하게 빌린 대신 사이드미러 한쪽이 없고 심하게 털털거리긴 했지만 후에를 둘러보는 데에는 문제없었다. 다른 현지인들의 대열에 합류해 강을 끼고 구시가지의 왕궁주변을 달리는 게 어찌나 짜릿하고 상쾌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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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처럼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 두고 그 옆에 앉아 멀리 왕궁을 배경으로 우리를 스쳐가는 오토바이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이다가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다시 기차에 오르는 길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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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여러분도 베트남에서 기회가 된다면 꼭 오토바이를 빌려 거리를 누벼보기를. 길을 걷는 관광객들을 가벼이 스쳐보내고 버스나 자동차는 지나지 못하는 좁은 길을 달리며 베트남 곳곳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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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면 아마 여러분도 나처럼 오토바이를 탄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베트남의 상징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어디에서든 민첩하고 기동력있게 움직이는 오토바이들은 그걸 타고 있는 운전자들과 한 몸같이 여겨졌다. 날씬하고 날랜 베트남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탈 것이 아닐까 감탄할 만큼. 오토바이들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바라보다 보면 종종 오토바이 운전자와 눈이 마주치곤 했는데 그들은 대개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비껴갔다. 그들의 크고 까만 두 눈은 오토바이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남아 머릿속을 맴돌곤 했다. 오토바이에 앉은 그들의 눈에 나와 같은 여행자는 어떻게 보일까. 그들은 여행자들이 북적이던 거리를 지나쳐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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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스쳐갔다. 달려나가는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여유로웠다. 오토바이를 탄 베트남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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