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으로 여행을 온 이들은 휴양지로 곧바로 향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하노이로 들어와 호치민(사이공)으로 나가거나 호치민으로 들어와 하노이로 나간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로 베트콩(베트남공산당)의 거점으로 베트콩의 남진 통일 이후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으며 지금은 구시가와 개발이 진행되는 신시가가 뒤섞인 거대도시이다.
어린 시절에는 여행을 하면 전혀 새로운 문화속으로 풍덩 빠져들 수 있으리라고 막연히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여행자가 되어 새로운 도시를, 나라를 방문하면 방문할 수록 깨달은 점은 여행자는 여행자의 눈으로 자신이 경험한 만큼 알게 되는 것일 뿐 이라는 사실이었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은 반드시 경복궁과 광화문, 인사동에 들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쉽다. 여행자들은 대개 여행자를 위해 준비된 교통수단과 숙소, 투어패키지, 관광지에서 가이드를 하거나, 표를 받거나, 음식이나 물건을 파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 즉 여행산업에 종사하는 현지인들을 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곳이 유적지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일 수록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고 겪고 느끼는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내가 다 알 수 없는 여행지의 독특함에 대해서, 그들과 나의 차이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더욱 차분히 바라보고 찬찬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여행자들만의 재미도 알게 되었는데, 여행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일수록 특히 여행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일수록 그곳의 여행자문화 자체가 경험해볼 만한 무엇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의 문화와 정서가 다양한 문화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의 호기심과 자유로움과 만나 마치 여행자들의 해방구와 같은 특유의 공기를 갖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지금 제주도와 순천, 전주 등지 게스트하우스들이 그렇다면,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의 니키타의 집이 그랬고, 태국에서는 방콕의 까오산로드가,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 주변이 그랬다.
호안끼엠 자체는 호숫가에 서면 한 눈에 들어오는 크기로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에 전설이 얽힌 사당이 있는 고즈넉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호수이다. 현지인들이 밤낮으로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행자들에게는 이곳이 하노이의 모든 일정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2,3km 안에 주요 관광지들과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맛집들, 공연장들, 일일투어나 버스티켓, 기차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현지여행사들, 환전소들, 카페와 바와 술집들이 골목골목 빼곡하게 들어찬 거미줄같은 길들이 뻗어있기 때문이다.
처음 호안끼엠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밤이었다. 한겨울이었지만 가을밤보다도 따뜻한 날씨에 무거운 외투를 훌훌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이들 속에 합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발걸음은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호수의 한 가운데의 작은 사당도 호수 이쪽편의 화려한 최신의 호텔도, 호수 저쪽 편 현지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범한 일상도 더 없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밤이 무르익자 호수 아래쪽의 화려한 상점과 호텔들이 아름다운 조명들 아래로 오토바이들이 신호가 바뀔 때마다 질주하듯 달려나가며 흥분을 더하고 있었다. 호수의 한쪽편에는 이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를 펼칠 대형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긴 길에는 베트남에서도 역시 신묘한 힘, 권력, 그리고 행운을 상징하는 용 무늬의 조명이 펼쳐져 있었다.
꿈틀대는 용의 형상 아래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수없이 플래시를 터뜨리고 웃음을 흩뿌렸다.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아온 길 끝에 베트남어로 적힌 문구 너머로 길가에 늘어선 카페와 술집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서양인들과 동양인들, 여행객들과 현지인들,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목욕탕의자에 줄지어 앉아 좁은 도로에 들어찬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술을 들이키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거리를 향해 아예 트여있는 가게들, 문이 있어도 활짝 열린 가게들에서 쿵쾅거리며 쏟아져나온 음악들이 빵빵거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경적들과 뒤엉켜 그 자체가 거대한 볼거리였다. 그 흥분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걸어들어가는 것 말고 달리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그야말로 여행자들을 위한 축제같은 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구글번역기로 찾아본 결과, 알 수 없는 베트남어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이었다. :) 그것이 하노이의 전형적인 상투어가 아니라 기분좋은 인사로 여겨진 것은, 여행지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여행객이라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때문이었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여행지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도 여행자의 몫이 아닐까. 여러분도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에 간다면 그 주변에서 느긋하게 머물며 그곳의 분위기를 만끽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