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후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베트남 옛 수도

겨울에 만난 베트남

by 문성 moon song

하노이를 떠나 기차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도착한 곳은 후에.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로 예전에는 번성했지만 이제는 쇠락한, 오래된 도시가 주는 특유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기차역에서 나오자 내리기 시작한 보슬비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여행자에게 비는 성가시고 때로는 일정을 꼬이게 만들거나 아예 그날을 망치게 하기도 하지만 그날의 비는 기꺼이 맞으며 길을 걷기를 택할 만큼 그날 그곳의 분위기에 어울렸다.

울창한 가로수길을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나도 얼른 오토바이를 타고 이 거리를 달려야지 하는 마음에 걸음이 급해졌다. 앳된 아가씨부터 백발의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타는 현지인들의 발, 오토바이를 나도 꼭 경헙해보고 싶었다. 하노이같은 대도시보다는 후에가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다는 추천을 이미 론리플래닛에서 읽어둔 터였다.

후에의 기차역에서 시내의 중심가까지 걷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달리고 멈춰서 볼 일을 보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스쳐갔다. 대여점을 몇 군데 돌아다니며 흥정한 끝에 저렴한 가격으로 오토바이를 빌렸다. 오른쪽 거울이 사라지고 심하게 털털거리는 낡은 오토바이였지만 하루종일 든든한 발이 되어 주었다. 한참을 달리다보면 어째서 베트남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지 꼭 오토바이 위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구는지 알 것만 같은, 나 역시 계속 달려 나가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오래된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후에도 역시 강을 끼고 있다. 강 위쪽에는 거대한 궁궐이 자리잡고 있고 그 주변에 왕족들과 연관된 사당이나 박물관과 같은 유적지들이 흩어져 있고 강 아래쪽에는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었다. 강 위쪽은 나라를 호령하는 중심지였으니 당시 베트남인들의 세계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테고 강 아래쪽은 현생이 끝나야만 넘어가는 저승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 강 위쪽은 쇠퇴한 구시가지가 되었고 강 아래쪽은 신시가지가 되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시간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오래된 도시, 후에. 나는 이 도시의 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의 더께를 보여줄 수 있는 곳들을 하나씩 방문하며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보기로 했다. 여러분이라면, 후에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궁궐의 서쪽에 있는 유명한 사원이었다. 서툰 대로 오토바이를 몰고 첫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는 조금 더 굵어졌지만 사람들은 빗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빗속에 우뚝 선 전탑 주변을 느긋하게 돌고 있었다.

높다랗게 솟은 탑의 위용에 나도 모르게 그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탑돌이를 했다. 요모조모 뜯어보고 둘러보며 감상을 했다. 인간의 손으로 쌓은 거대한 건축물은 그 웅장함과 섬세함에 이따금 말을 잃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 자리를 지켜오며 보냈을 오랜 시간과 그 시간만큼의 인간의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 절의 사천왕상과도 같은 수호신들을 지나 금당에 해당하는 본채에 들러 계단에 걸터앉았다. 오가는 사람은 점점 뜸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가득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다가 일어섰다. 문득 눈에 들어온 화분에 분재와 기암괴석으로 만들어놓은 미니어쳐 산수를 발견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도 일본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은 인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도 역시 그리스와 중동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인도는 중동이나 그리스와 같지 않으며 중국도 인도와, 우리나라도 일본도 베트남도 중국과 같지 않다. 어느 나라도 문화적으로 고립될 수 없고 어느 나라의 문화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탑을 돌며 시작된 상념이 정원의 분재를 지나쳐 사당을 나와서도 나를 따라왔다.

다음 목적지가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왕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 역시 그곳에 간다면 그곳을 둘러보는 내내 여러가지 감흥과 생각들과 함께 걷고 멈추고 또 앉아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우선은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 당했다. 왕궁은 좌우로도 앞뒤로도 한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한없이 뻗은 직사각형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곽 앞을 광장이 그 앞을 공원이 둘러싸고 있어 오토바이를 주차장에 맡기고 걸어서 입구로 진입하는데 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정면의 성문으로 티켓을 끊고 들어가 다시 성문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며 새삼 내 선입견을 깨달았다. 베트남 왕조의 궁궐이 거대하다는 것에 얼빠진 듯 할말을 잃은 내 자신을. 이들의 궁궐이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같은 크기정도 일 것이라고 혹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음을.

그리고는 왕궁의 역사를 전시해놓은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하는 정사를 주관했던 건물에 들어서서는 프랑스식민지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처지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조선왕조와 지배층의 무능을 넘지 못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넘어갔듯 이들도 역시 그러했음을 첩첩이 들어앉은 궁궐의 건축들과 그 안에 남아있는 전근대적인 왕조의 흔적들에 안타까워졌다.

문을 지나 왕궁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폐허가 펼쳐졌다. 프랑스식민지에서 미군정으로 넘어가고 지난한 전쟁 끝에 후에 왕궁의 많은 건물들도 파괴되고 폐허가 되어 수풀만 자라고 있다고 했다.

살아남은 건물들과 무너져내린 건물들 사이를 거닐며 자연스레 우리나라를 떠올릴 수밖에.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역시 지금 울창한 나무들이 있는 자리는 모두 왕과 왕비를 모시고 궁궐살림을 맡아하는 궁녀와 내시, 여러 일꾼들의 거처와 일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불에 타고 일부러 부수거나 소실된 그 자리에는 나무들이 자라나 지금과 같은 초록을 이루고 그곳을 관광객들이 거닐듯 외국인 관광객 우리도 그들의 지난한 역사를 거치며 무성한 수풀이 자라나는 이곳을 거닐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과 그것을 겪는 이들의 삶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곳. 건물과 폐허 사이를 천천히 거니는 사이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더니 해가 나고 있었다.

서둘러 궁궐 옆의 왕실박물관에 들러 왕가의 유물들을 둘러보고 궁궐을 떠나려했는데 그 거대하고도 고색창연한 공간을 걷고 있노라니 발걸음이 느려지기 일쑤였다.

다시 오토바이에 앉아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강을 건너 왕릉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무들은 더욱 빽빽해지고 건물은 줄어들어 인적이 드문 게 망자들의 집으로 가는 길다웠다.

막상 왕릉 앞에 도착하니 널찍하게 정돈된 아스팔트 도로와 주차장 그리고 관광지에 빼놓을 수 없는 주전부리와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를 끊고 입구로 들어서자 왕궁만큼이나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에 또 한 번 놀랬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찬찬히 둘러보지만 그 역시 역부족이었다. 나무들 뒤로 숨은 건물들까지 둘러본다면 시간이 모자랄 판이었다.

강 아래쪽에 있는 왕릉 중에서도 뛰어난 치적으로 혹은 왕릉의 규모자체로 유명한 다섯 왕릉이 유명하다고 했지만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이곳 외에는 둘러볼 수 없으리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왕릉은 넓은 연못과 정자, 사당과 묘비를 둘러싼 건축물들, 그 전체를 둘러싼 성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죽은 왕을 위한 왕궁이자 그가 사후에 살면서 다스릴 세계의 축소판으로 보였다.

호수와 정원을 즐기다가 이곳의 주인, 왕의 무덤으로 향한다. 계단을 올라 높다랗게 솟은 기둥들을 지나쳐 화려하게 치장된 비석을 살핀다. 왕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왕의 자리가 건축이 아니라 비석이었고 높은 그 자리에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탁 트인 게 아니라 높은 담으로 단단히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아래 단에는 석상들이 줄지어 도열해 죽은 자의 영혼이 이곳에서만 존재함을, 이곳만을 다스릴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 듯 했다.

다른 왕릉들을 포기하고 한층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느긋하게 경내를 거닐다가 마주친 이곳에 주저없이 찰칵. 벽이 무너져 내려 단면을 칼로 잘라낸 듯 벽의 이쪽과 저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왕릉이 견뎌온 시간의 더께를 보여주고 있었다. 왕릉을 관리하는 이들의 삶과 왕릉이 지나온 시간이 벽면을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행에서 유적지를 찾는 이유는 바로 이것, 현재를 거슬러올라가 과거와 만나고 또 다시 현재와 마주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왕릉을 떠나 다시 후에 시내로 돌아와서도, 왕궁에서 발달한 후에 음식을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도, 후에를 뒤로 하고 또 다시 기차에 오르면서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