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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짱, 여행도 쉬게 한 휴양지

겨울에 만난 베트남

by 문성 moon song

또 한 번 기차에서 밤을 보내고 도착한 도시 나짱. 작열하는 태양에 기차가 멈추기도 전부터 한여름의 나짱해변을 상상하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배낭을 메고 플랫폼에 내려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어깨가 무너질 듯 아프고 그늘 한 점 없는 도로의 열기에 숨이 막혔다. 연이어 밤기차로 이어온 여정 때문이었는지 갑작스러운 기후 차이 때문이었는지, 마음은 날아갈 듯 한데 몸은 한없이 무거웠다. 이런 순간에 무리해서 돌아다니면 여행도 몸도 악화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곧바로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푹 쉬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에 왔으니 푹 쉬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가 모여있는 해변으로 걸어간다. 가로수는 야자수로 바뀌고 이따금 부는 바람마저 따뜻한 그야말로 동남아시아의 휴양지다운 분위기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평상시에는 자지도 않던 낮잠에 빠져들었다가 일어나자 해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배낭 깊숙이 넣어두었던 가벼운 민소매 옷을 꺼내입고 해변의 일몰을 보러나섰다. 퇴근시간인지 어김없는 오토바이, 오토바이, 오토바이의 물결을 헤치며 여행객들이 많은 쪽을 향해 걸어간다. 거리 간판에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가 넘쳐날 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해변에도 러시아인들, 미국인들, 중국인들이 넘쳐났다.

해변에서 나오는 여행객들과 반대로 해변을 향해 걸어간다. 하늘은 벌써 해가 사라지고 부드러운 주홍빛이 수평선으로 스러지고 있었다. 여전히 선베드에 누워있는 이들, 삼사오오 모여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 바다를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는지 내가 산책을 하고 돌아 나올 때까지도 그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간판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휴양지의 밤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채비를 하고 식당에 가서 배 터지게 저녁을 먹고 현지인들만 앉아 있던 허름한 생맥주 집에 들어가 생선튀김과 생맥주까지 들이키는 동안 낮의 더위를 식히려는 듯 소나기가 쏟아지고 또 그쳤다. 한참을 그렇게 즐기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소란스러운 휴양지의 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흥청거리고 있었다.

밤을 늦게까지 즐기지 않았던 까닭은 다음날 일일투어를 예약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일찍 픽업버스를 타야 여럿을 모아 떠나는 배에 탈 수 있었다. 십여명에서 이십여명의 제각기 다른 곳에서 온 여행객들이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해안의 경치를 즐기고 또 스노클링으로 바다 밑 경치를 즐기는 하루는 바닷가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오래전 태국에서 처음으로 맛 본 스노클링 일일투어는 베트남에서도 그와 같은 시간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역시나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출발부터 먹구름이 끼어 날씨는 그닥 좋지 않았지만, 낯선 이들이 말 그대로 한 배에 타서는 함께 바다로 나가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눈이 마주치면 괜히 한번씩 웃어보이다가 아름다운 경치 앞에 모두가 침묵 속에 서로의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너나할 것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서로를 지나치며 유영하는 재미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게다가 스노클링과 스노클링 사이에 우리를 이끌었던 선장과 선원들이자 투어가이드들이 준비해준 풍성한 베트남식 점심식사는 일부러 찾아간 베트남식당과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느긋하게 스노클링을 하고 돌아온 항구에서 우리의 선장이자 투어가이드 그리고 리더에게 사진 한 장을 청했다. 나를 포함해 일일투어에 참여한 우리들의 하루를 책임진 그를 기억해두고 싶었다. 그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하고 느긋하면서도 결단력있는 모습으로 배를 지휘하는 틈틈이 우리를 웃기는 유머러스함까지 갖춘 완벽한 리더였고 그날의 하루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혹 여러분도 나짱에 들러 일일투어를 하게 된다면, 그를 만나게 된다면, 나짱에서의 즐거움에 하루를 더하게 되지 않을까. 나에게 나짱은 여행도 쉬게 한, 쉬고 먹고 노는, 휴양지로 남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여러분에게는 나짱은 어떤 곳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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