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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 영화와 음악

겨울에 만난 베트남

by 문성 moon song

사이공을 끝으로 지난 겨울 나의 베트남 여행기는 끝이 났지만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행기 마지막에 베트남을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던 작품들을 소개하리라, 여행기를 막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와 음악들이 베트남을 여행하던 중에도 여행이 끝나고 여행을 되돌아보던 순간에도, 여행기를 쓰는 와중에도,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아득한 숲과 흔들리는 지평선을 바라보다가, 덜컹이는 기차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 오토바이와 인력거와 뒤엉킨 인파 속에서, 허름한 식당에 앉아 식사를 하다가,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에 오도 가도 못하고 카페에 하염없이 앉아있다가. 영화의 한 장면이, 음악이, 그 때의 베트남이 겹쳐지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여독이 풀리고 일상에 복귀하자마자 내가 과연 여행을 다녀왔던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돌이켜보면 여행의 순간들은 영화의 장면들처럼 툭툭 떠오르고 그와 함께 기억속에 가물거리던 영화와 음악들도 떠올랐다. 이따금 사진을 보다 말고 다시금 인터넷을 뒤지며 영화와 음악 속 베트남에 젖어들고 있었다.


어린시절 주말의 명화로 언니들의 어깨넘어로 훔쳐보았던 매혹적이고도 강렬했던 장면들은 이제야 비로소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함의를 더해 더욱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베트남들이 거기 있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낸 베트남의 공기, 그 풍광과 사람들은 내가 보았던 베트남과 겹쳐지기도 서로 어긋나기도 하면서 새롭게 펼쳐졌다. 나의 베트남여행은 그렇게 새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 여러분에게 또 하나의 베트남여행을 선사해준 영화와 음악들을 소개한다. 여러분이 베트남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여행을 막 끝내고 돌아와 여운에 젖어 있다면, 이들이 여러분의 여행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


인도차이나, 연인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나는 그 사실을 세계사시간에 배웠지만 단 한문장으로 기술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소위 제1세계의 시선과 제국주의 식민지가 된 베트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위의 두 영화덕분이었다.

영화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인도차이나를 느낄 수 있다. 프랑스 제국주의 하의 베트남, 인도차이나반도를 어떻게 그려내는지, 그 시대를 살아간 서구인들은 인도차이나를 어떻게 느꼈는지. 포스터에서도 황혼에 물든 인도차이나만은 그들 서구인들의 감상을 드러내는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것, 눈치채셨는지.


영화 연인은 그 시선을 전복시킨다. 프랑스인이긴 하지만 가난한 여자애라는 명백히 하층계급의 주인공과 부유한 중국인 집안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남성이 베트남에서 우연히 만나 식민지의 겉으로는 평온하고도 아름다운 풍경 아래의 불안정하고도 불온한 제국주의 시대 베트남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전달한다.


두 영화속 베트남의 풍경들은 한없이 평화로우면서도 불안하고 한없이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을 저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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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메탈자켓,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베트남은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미군이 패전을 한 나라다. 프랑스가 철수하고 미군이 베트남으로 진주했고 혹독한 전쟁을 거치고도 결국 베트남은 독립했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내내 그것이 베트남에 엄청난 자긍심을 주었다는 걸 확인했다면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베트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느끼게 해주었다.

풀메탈자켓, 지옥의묵시록, 플래툰 모두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이자 이 영화를 통해 거장이라 인정받은 이들의 작품들. 전쟁의 폭력성과 참혹함, 그속에서 인간성을 묻는 통찰력있는 영화들이고 실제 베트남전쟁이 어땠을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수 있게 해주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덧붙이자면 베트남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반전운동이 벌어졌고 미국내에서도 전세계적으로도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당시는 미국의 학생운동과 흑인, 여성민권운동, 유럽의 학생운동, 일본의 반전반핵운동 등이 들끓었던 68혁명의 시대. 작가들은 그 시대를 소설로 시로 예술작품들로 함께했고 위의 영화들은 이후 그 소설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굿모닝 베트남, 미스 사이공


역시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서구인들의 시선이 담긴 두 작품. 굿모닝 베트남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군라디오의 디제이로 베트남에 온 로빈윌리엄스가 전쟁의 이면과 참혹함을 경험하게 되는 영화.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전쟁 중에 미군과 사랑에 빠진 베트남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는 뮤지컬. 두 작품 모두 베트남의 풍광과 베트남전쟁, 음악이 주요등장인물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

특히나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굿모닝베트남의 한가로운 논밭으로 갑자기 총알과 폭격이 쏟아지고 전쟁통의 모습 위로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 가 흐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는 작품 속에서 그의 특유의 페이소스가 담긴 유머와 제스쳐로 전쟁통 속 개인의 무력감과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그려낸다.


씨클로, 그린파파야 향기


베트남인들의 시선이 궁금하다면, 쩐 안 홍 감독의 두 영화, 씨클로와 그린파파야 향기를. 베트남전쟁 이후 피폐해진 자리를 딛고 살아나가는 베트남 젊은이를, 어린 베트남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영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씨클로는 라디오헤드의 creep이 삽입되면서 뮤직비디오로도 엄청난 유명세를 타기도 했었다. 덧붙이자면 양조위도 출연하여 그의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묵직한 명연기를 펼친다. 아직도 creep을 들으면 영화 속에서 출구 없는 하루하루를 초점없는 눈으로 허우적거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얀 전쟁, 님은 먼 곳에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의 시선이다. 우리는 68혁명의 시대, 일본에 청구권협상을 도매금으로 넘겨버린 박정희정부에 들고 일어난 대학생들의 시위로 동참했지만 동시에 월남파병으로 미군과 함께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아군의 동맹으로 명예로운 참전으로 혹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인정받기도 했지만 민간인학살과 폭력과 강간으로 여성인권을 짓밟은 전쟁범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얀 전쟁은 바로 그와 같은 전쟁의 어두운 이면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영화이다. 한국사회에 돌아와서도 베트남전쟁의 기억과 뒤섞인 삶을 살아야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는 이경영의 모습 속에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일들이 겹쳐진다. 님은 먼 곳에는 갑작스레 베트남으로 떠난 남편을 찾아 떠난 여자주인공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베트남전쟁, 베트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은 그 당시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며 영화 전반에 흐르는 그 노래는 더욱 애절하고 가슴아프게 들린다. 베트남전쟁의 상흔이 먼 한국땅에서 무심히 살아가던 이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남겼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


알포인트, 므이


베트남전 세대는 이제 고엽제 전우회라는 이름으로 또는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이야기로, 이따금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뿐이지만 알포인트를 보면 베트남전쟁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상흔으로 사람들에게 남아있다가 공포영화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공포영화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 폭력성과 참혹함은 인간이 가진 어두운 면을 발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베트남전의, 베트남에서의 경험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므이도 그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무의식에 남은, 어두운 면을, 우리가 느끼는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 분위기, 정서를 보여준다.


여러분이 보았던 베트남과 관련된 영화는, 그 영화속에 흐르던 음악은 무엇이었는지. 그 장면장면 속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여러분의 베트남여행의 장면들은, 그 속을 흐르는 음악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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