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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사색의 낮, 향락의 밤

겨울에 만난 베트남

by 문성 moon song

베트남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사이공. 남북선 기차의 마지막 역이자 베트남 남부의 최대도시. 베트남을 식민통치했던 프랑스와 베트남전쟁을 벌인 미군의 중심지. 베트남 공산당이 탱크로 대통령궁을 밀고 들어가 길고 긴 식민과 전쟁을 끝내고 통일을 마무리했음을 보여준 베트남 남부의 상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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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역은 그 어느 곳보다도 컸고 그 어느 곳보다도 붐볐다. 인파와 함께 플랫폼을 빠져나오는데 등줄기에서 이미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과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는 휴양지 나짱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역을 둘러싼 복잡한 시가지, 여러갈래고 뻗어나가는 도로들, 첩첩이 늘어선 빌딩들과 사람들.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오만가지 풍경 속에서 사이공이 얼마나 크고 복잡한 대도시인지를 실감했고 순간 아찔했다.

여러분은 대도시를 여행하는 여러분만의 방법이 있는지. 대도시가 가진 여러 면모를 어떻게 마주하는지. 나는 이따금 대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서울토박이로 서울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살아오면서도 서울을 다 알 수 없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으니, 서울과 같은 긴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잠깐을 머문다해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들이라 해도 그것 역시 경험이다. 아무리 그날의 날씨와 감정, 개인적인 경험에 좌우된다고 해도 그 도시에서만 겪고 느낄 수 있는 무엇이 있다. 생경하고도 독특한, 그곳만의 고유함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굳이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무엇을 좀 더 생생하게 맛보고 싶어 가능하면 최대한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미루고 오감을 열어보려 노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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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 하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울창한 가로수들 사이를 달리는 오토바이 하나. 한낮에는 누구도 감히 거리를 어슬렁거리지 않았다. 바람 한 점 없이 아지랑이만 피어오르는 아스팔트에 일부러 바람을 일으키듯 오토바이만 스쳐갈 뿐. 나와 같은 여행객들만이 그 정지된 듯한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 느릿느릿 사이공 곳곳의 역사적인 장소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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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두번째 장면은 베트남전의 당사자들이었던 미국인들을 비롯한 해외여행자들이 바글거리던 전쟁박물관. 베트남 전쟁에 관련된 것들을 모아 전시해놓은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타이거케이지라고 불리는 1인용 독방이자 고문실이었다. 그야말로 동물우리처럼 쇠창살로만 이루어진 작고 납작한 사각형공간에 사람을 넣어 괴롭힌 것이다. 일부러 사람의 몸보다 작게 만들어 제대로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는 상태로 음식을 주지도 않고 잠을 재우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케이지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감옥들이 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남베트남의 방방곡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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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장면 셋. 사이공의 대통령궁.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는 산뜻하고 아름다운 외관의 건축물은 잘 다듬어진 너른 정원을 따라 다가갈수록 웅장하고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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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대통령의 접견실과 집무실, 화려한 내부를 둘러보고 지하로 내려간다. 전쟁관련 기록영상과 사격연습장소, 방공호와 같은 방어기지들이 70년대까지도 계속된 이들의 전쟁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처럼 남아 있다. 서늘한 지하를 나서면 다시 찌는 듯한 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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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얼른 사람들을 따라 그늘 속으로 들어섰다. 비행기와 탱크. 대통령궁으로 밀고 들어와 남베트남을 함락시킨 바로 그 탱크가 그 순간을 잊지말라는 듯이 대통령궁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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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탱크에 올라가 뛰어놀기 시작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터뜨리고 나는 천천히 그들을 지나쳐 다시 무더위 속으로 역사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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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민지의 증거로 남은 카톨릭 성당을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높다란 나무들 아래 느긋하게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속을 거닌다. 어느새 지는 석양 속으로 베트남전의 포화를 전세계에 전송하던 기자들이 묵었던 호텔을, 연설을 하고 대중을 몰고 다니던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드높이던 광장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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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장면 넷. 전세계의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배낭여행자 거리로 돌아왔을 때에는 해가 다 지고 난 뒤였다. 베트남에서 내가 본 가장 적나라한 근현대사의 현장 위로 어둠이 내려앉자 베트남에서 내가 본 가장 화려한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골목골목 온갖 종류의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지나는 가게마다 음악이 쿵쾅거리고 스치는 사람마다 어깨를 부딪쳤다. 거리를 걷는 이들과 택시, 날랜 오토바이와 호객을 하는 점원들, 거리에 나앉은 손님들과 재주를 보여주며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이 뒤섞여 있는 곳. 온갖 종류의 자극이 한데 모여있는 소용돌이 같은 그곳에서 또 한 번 아찔함을 느꼈다. 사람들의 흥분과 스피커가 터질듯 울리는 비트소리, 채 가시지 않은 낮의 열기 속에서. 사이공의 밤이 나를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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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사이공을 생각하면 상반된 낮과 밤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 낮과 밤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계속될 그들의 낮과 밤을 상상했다.

여러분은 사이공에 가면 어떤 낮과 밤을 경험할까. 여러분이 겪을 사이공의 낮과 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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