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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땀꼭 일일투어

겨울에 만난 베트남

by 문성 moon song

하노이가 여행자로 북적이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베트남의 다른 지방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 북부에서 아직은 도시화가 덜 된 특색있는 지방들은 하노이의 여행사들을 통해서 접근을 하는 듯 했다. 현지 여행사들은 하노이에 사무소를 두고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여행상품들을 팔고 실제로 많은 여행객들이 그 상품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베트남 북부 오지 전문 여행사, 하롱베이 전문 여행사와 같이 특화된 여행사들, 유명 관광지 중심으로 코스를 짜 놓은 대중적인 여행사들, 저렴한 가격과 짧은 시간으로 승부를 보는 여행사들, 다양한 여행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일정과 가격에 맞춰 가장 적합한 걸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관광이 산업화된 도시에서 여행객은 상상치 못했던 모험을 하는 탐험가라기보단 셀 수 없는 상품들 중에 무얼 골라야할지 고민하는 소비자일 뿐이다. 하지만 제대로 골라낸다면 새롭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도 낯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도 있고 무성의하게 고른다면 낯설고 어색한 걸 넘어 불편하고 피곤한 최악의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지나치게 싸거나 지나치게 비싸지 않은 제 가격에 여유있는 일정 그리고 성의 있는 가이드와 동행들을 만난다면, 새로운 곳에서의 시간이 즐거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 조건이 충족된다면 새로운 곳이 경이롭거나 아름다운 풍광이 아니라 해도 괜찮은 시간을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여행이라는 건 묘하게도 눈을 홀리는 광경 그 자체에 감동하게 되기도 하지만 얼마 있으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또 익숙해지고 나면 나머지 사소한 일상적인 조건들이 경험의 질을 좌우하곤 하는 것이다.



나는 베트남에 오기 전에는 베트남전체 지도를 보고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가 비교적 가까우니 -그렇다, 착각이었다- 하노이에서 머물 동안 하롱베이에 가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하노이에 와서 여행사들을 몇 곳 들른 끝에 하롱베이에 가는 데에만 적어도 한나절 이상을 소요해야하고 만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반나절을 훑는 간단한 투어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가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피곤한 상태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을지 뱃멀미에 시달리지는 않을지 고민하다가 과감히 포기하고 하루안에 여유있게 돌아보고 저녁에 돌아와 밤기차에 오를 수 있는 땀꼭 투어를 택했다.


투어를 안내해준 직원은 픽업하러 직원이 갈 것이라며 호텔이름을 물어보았고 투어당일날, 호텔 앞에는앳된 얼굴의 날렵하고도 싹싹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골목 곳곳의 호텔들을 돌아다니면 그를 기다리고 있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을 모아 미니버스에 우리를 태우고 투어를 시작했다. 그는 뀐이라고 이름을 소개하며 이제 막 가이드가 되었고 영어를 잘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수줍어하면서도 10여명 남짓한 다국적 여행객들의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이야기할 줄 아는 대찬 베트남 청년이었다. 약간은 긴장하고 들뜬 그의 목소리에 이제 한 팀이 된 여행객들은 모두 조용히 귀를 기울였고 그 순간 나는 그날의 투어가 괜찮겠구나 예감했다.

하노이는 서울과 다를 것 없이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자 농촌 풍경이 펼쳐졌는데 땀꼭은 그 중에서도 평지에 난데 없이 솟은 기암괴석들로 독특한 풍광으로 이름을 얻은 곳이라고 했다. 우리는 하노이 도심을 벗어나 두어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투어를 시작했다. 나란히 서 있는 오래된 사당 두 곳의 설화를 설명하는 뀐을 따라 느긋하게 그곳의 경치를 사람들을 그리고 유적지를 산책하는 사람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전통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라고 호객을 하는 이들이 있고,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기어이 낚이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흥정 그리고 어색한 포즈와 터지는 웃음을 재미있게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는 제3자. :)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이 유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길 옆에 넓은 공터는 현지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마도 중고등학생들이 소풍을 나온 듯 했다. 돗자리에 가방을 잔뜩 쌓아두고 한쪽에서는 도시락을 먹고 다른 한쪽에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또 게임을 하고 있었다. 유적지로 소풍을 가서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을 먹으며 지나는 사람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정작 유적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노는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것도 새로운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졌던 것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 신기할 따름.

조용하던 유적지는 외국인여행객들이 들어와 비로소 활기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사당의 입구에서 뀐의 설명을 듣고 정원을 지나 사당으로 들어가며 그곳의 분위기를 즐겼다.

죽은 이에게 혹은 조상에게 무언가를 기원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베트남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싱싱하게 보이도록 만든 모형 과일과 음식과 집기와 꽃들. 그것들이 놓여있는 화려한 무늬와 색깔의 탁자. 붉은 색을 주조로 하는 건물과 지붕.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기리는 장소로 쓰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문화와 관습이라는 것은 얼마나 질긴 것인가 생각한다.

비바람에 빛바랜 붉은 기와와 이끼가 가득한 정원을 거닐며 우리나라의 오래된 산사를 거닐 듯 고즈넉하면서도 편안했다. 낯선 관습과 문화가 때때로 생경하면서도 익숙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익숙함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지만 재촉하는 가이드를 따라 나선다. 다음 일정을 늦출 수 없기에 아쉬움과 특별함을 더하는 일일투어의 묘미.

다시 다음 투어장소를 향해 달리다 들린 휴게소에는 화장실과 간단한 매점 그리고 기념품점이 있었다. 화장실에 가려면 당연히 지나야하는 기념품점에서 모두들 한눈을 팔 수밖에. 수예작업으로 만든 액자들 너머 기념품점에서 아예 작업을 하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는 땀꼭과는 상관없이 호치민의 전기와 엽서, 농라 모자, 손지갑 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든 베트남이든 기념품이란 예외없이 조잡하고 쓸모없는 것들이 대부분임에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고 넋을 빼고 구경을 하고 또 그 안에서 보물을 찾아보겠다고 신중하게 고르는 그 과정도 하나의 재미라면 재미랄까.

두번째 일정은 자전거를 타고 땀꼭의 시골길을 달리면서 그곳의 독특한 지형을 즐기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시골길과 다름없는 인도도 없는 2차선 길을 그리 미덥지 못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이들의 뒤를 따라 페달을 밟다가 차츰 내 속도를 찾아간다.

붉은 깃발이 도열한 거리를 지나고 촘촘하게 집들이 늘어선 민가도 학교도 지나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도 지나친다.

갑작스레 나타난 우뚝 솟은 봉오리들을 따라 둑길을 논길을 달린다.

땀꼭은 독특한 지형때문에 육지의 작은 하롱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특별할 것 없는 농촌마을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평지에 솟은 난데없는 봉오리들에 새삼 감탄했다. 자전거로 논길을 달리며 봉오리들을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 또 관찰할 수 있었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그 풍경은 꽤나 독특하고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일정은 땀곡의 독특함을 배로 한번 더 감상하는 것. 논과 둑을 따라 엉덩이가 아프게 달리고 돌아와서 얻는 보너스같은 시간이었다.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이 여행사와 계약을 맺고 노를 저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뀐의 말에 따르면 정부에서 계약을 통제하기 때문에 매우 적은 돈을 받고 여행객들이 주는 팁이 주수입원이 된다고 했다. 팁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팁의 적당한 액수를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팁금액을 고민하는 와중에 순서대로 2인 1조가 되어 배를 타고 우리를 맞은 아주머니는 양발로 힘차게 노를 젓기 시작한다. 능숙한 발놀림에 배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다.

독특한 지형으로 생긴 동굴을, 풀숲을, 봉우리들 곁을 배는 유유히 지났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배에서 노젓는 소리와 셔터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질 않았다. 다른 배에 탄 이들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한 순간. 그곳에 모두가 사라지고 우리 배만 남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시공간이 정지된 듯 아득하게 느껴지고 문득 내가 누구인지 여기에서 무얼하고 있는 건지 산다는 게 무언지 모든 게 낯설어졌다. 나 자신마저 낯설어 나를 멀리서 바라보듯 보며 과연 어떻게 살아야할까 반문하게 되는. 여행지의 낯선 시공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도망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새롭게 보게도 해주는 그런 감각.

다시 미끄러지듯 다른 배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니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싱긋 웃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셀카로 찍을 수 없는 배에 탄 자신의 모습을 찍고 싶다며 내가 찍어주면 자기도 찍어주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사진을 남겨야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나는 기꺼이 그들을 찍어주었고 우리배를 저어준 아주머니도 우리 곁을 지나가는 다른 배들도 찍어주었다.

일일투어를 끝까지 성실히 책임진 뀐도. 환한 웃음으로 그와 인사를 나누었고 언제나 행운이 함께하길 빈다는 말을 건넸다. 그가 바라는 대로 가이드로 성공하기를 마음속으로 덧붙이며 가방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날의 일일투어는 소박한 재미로 꽉찬 알찬 여행이었다. 또 다시 하노이에서 하루가 남아 근교를 여행하게 된다면 역시 그날처럼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택하지 않을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프로그램을 택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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