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7 / 성역과도 같던 해변

멜버른,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

by 사서 유

20년 가까이 살아온 나의 동네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그림 같은 산 능선을 쉽게 볼 수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뒷산으로 향하는 산책로가 있을 정도로 시골에 가깝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터라 여행을 갈 때에는 주로 산보단 바다를 더욱 선호하게 되었고, 멜버른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반드시 보고 와야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곳이 흔히 말하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호주 관광지여서도 아니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여서도 아니었다. 그저 12사도라는 이름과 걸맞게 커다란 바위들이 해변 앞에 장대히 서있는 그 절경을 내 눈으로 담고 싶었다.


전 날 다소 무리한 일정으로 간신히 아침에 일어난 나는 늦을세라 픽업 시간보다 10분가량을 일찍 도착하였다. 나와 함께한 투어 여행객들은 골드코스트에서 워홀 중이었던 커플과 다정한 모녀, 그리고 단란한 한 가족과 나처럼 혼자 온 예주였는데, 예주가 있어 여행을 외롭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일행 없이 동떨어져 홀로 감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아름다운 곳엔 감상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image_9673485291526983103972.jpg 메모리얼 아치 (memorial arch)
image_5056801641526983103966.jpg 론 (Lorne) 마을

시티를 벗어나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메모리얼 아치에서 잠시 정차 후 론 마을에 도착하였다. 맑았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이 어두워졌고, 흐린 날씨에 내심 실망하였을 여행객들을 위해서 가이드께서 노래를 틀어주셨다. 레옹의 주제곡을 들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2PM의 Heart Beat가 깔리자 버스 안은 이내 흥으로 가득하였다.


12사도를 가기 전 우리는 케넷리버 홀리데이 파크에서 야생 코알라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코알라를 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흔히들 상상하는 코알라의 그 귀여운 얼굴은 동물원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고, 자연휴양림과도 같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코알라의 질펀한 엉덩이 정도였다. 심지어 눈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엉덩이조차 나뭇가지에 얹혀있는 동그란 돌덩이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투어 중인 어린이가 곧잘 발견해내는 덕에 어른들은 보기 힘든 코알라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그 후 점심을 먹기 위하여 아폴로베이로 향할 즈음 날이 서서히 개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여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던 와중 12사도를 볼 수 있는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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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_7237898851526983103951.jpg 아폴로 베이 (Apollo Bay)

헬기투어를 신청하지 않은 나와 예주는 12사도부터 전망대까지 함께 걸어 올라갔다. 이윽고 12사도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함께 탄성을 내질렀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모티브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곳은 그 이름에 걸맞게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였다. 바위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신들이 장대한 기골을 뽐내며 서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저 절경이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 이곳은 그야말로 하나의 성역과도 같았고, 그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를 절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토록 장엄한 그곳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넋이 나간 채 그곳의 절경에 취하여 감상하는 일과 한 장면이라도 더 남기기 위하여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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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사람들을 뒤따라 전망대에 올랐고, 그곳에서 보는 경관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예주와 나는 서로 연신 사진을 찍어주다가 도중에는 그저 바다만 바라보기도 하였는데, 이 절경을 보기에는 핸드폰 화면이 도무지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망대에서는 파도가 바다를 부딪치며 내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뒤섞였고, 나는 그곳에 도취해 어떤 잡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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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80522_183951012.jpg?type=w966 12 사도 (12 Apostles)

그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이드는 우리를 싣고 로크 아드 고지로 향하였다. 12사도가 아름다운 절경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면 로크 아드 고지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이토록 작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절벽 틈 사이는 금방이라도 거대한 배가 비집고 들어올 것만 같았으며, 실제로도 로크 아드 고지의 이름은 난파된 영국 이민선 로크 아드 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로크 아드 고지 역시 사진으로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곳이었고, 고개를 높이 들고 몸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그곳을 제대로 감상하였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기암절벽이 하나의 커다란 원처럼 해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절벽이 보이는 해변에 앉아 더는 보지 않아도 눈에 익을 만큼 그 절경을 담아오고 싶었다. 차도 없고 면허도 없는 주제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처럼 투어 여행일 뿐이었지만, 이 날 만큼은 면허증도 없이 온 내가 못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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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80522_183956648.jpg 로크 아드 고지 (Loch Ard Gorge)

로크 아드 고지에서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장소를 이동하여 런던 브리지로 향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런던 브리지는 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영국에 위치한 런던 브리지와도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며 실제로 런던 브리지를 본 나로서는 그 감회가 새로웠다. 호주는 영국의 연방국가로서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멀리 여행을 오면서까지 실감이 날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런던 브리지 모양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거대한 다리와도 같았고, 1990년도에 바위 일부분이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그 모습이 제법 다리와 흡사하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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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80522_183955952.jpg 런던 브리지 (London bridge)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덧 밤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식 투어 여행이 그렇듯 온종일 이리 실리고 저리 실려 다닌 통에 온몸의 기운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그날의 감격을 서둘러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이런 글을 덧붙였다. 살면서 꽤 많은 바다와 절벽을 보았다고 자부하였음에도 그레이트 오션 로드 앞에서는 그저 넋을 놓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라는 사람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고 그 안에서는 나의 모든 잡념들이 순식간에 휘발되는 것을 느꼈다고. 마치 지금 내가 걱정하는 모든 것들이 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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