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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r 15. 2022

2017.11.29 / 이토록 귀여운 것들

멜버른, 퍼핑 빌리 & 필립 아일랜드

나는 귀여운 것에 몹시 약하다. 적금 하나를 들더라도 이율이 같다면 앱 안에서 농장을 가꿀 수 있는 상품을 든다. 런 연유로 장난감 병장들이 타고 다닐만한 아기자기한 증기기관차부터 인형 사이즈만한 펭귄들이 집을 찾아 뒤뚱뒤뚱 줄지어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설명에 평소 관심도 없던 기관차와 펭귄을 보는 투어를 바로 신청했다. 평소 귀여운 것에는 몸 둘 바를 모르는 나로서는 예약하지 않을 수 없는 투어상품이었다.

전 날 12시간에 가까운 긴 여정 탓에 몸이 말이 아니었던 나는 퍼핑 빌리를 타보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간신히 일어나 전날과 같은 픽업 장소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를 함께한 예주와 이번 투어 역시 함께할 수 있었고, 잘 맞는 동행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는 조금 더 활기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버스를 달리고 달려 처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전날 본 메모리얼 아치와 제법 흡사하게 생긴 퍼핑빌리 입구였다. 입구 뒤로는 목재로 만들어진 퍼핑 빌리 기찻길이 보였고, 유아용 놀이기구를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제법 높이가 있어보여 창문 밖으로 발을 내밀고 기차를 타는 것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햇살이 좋은 덕에 입구에서 몇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고 그렇게 고대하던 단데농 국립공원에 입성하게 되었다.


단데농에 입성하자마자 우리는 퍼핑 빌리 증기기관차를 탑승할 수 있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기차가 잠시 정차되어 있는 동안 우리는 한동안 기다린 끝에 기차에 올라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퍼핑 빌리는 단데농 국립공원에 위치한 100년이 넘은 증기기관차로서, 실제로는 목재 및 과일 등을 운반하였다가 산사태로 무너져 내렸으나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관광 명물로 자리 잡은 증기기관차이다. 만화 토마스와 친구들의 모델이 되기도 한 이 기차는 실제로 그 외형도 몹시 장난감 같기도 했으며, 박물관에서 보았던 증기기관차 전시물을 실제로 보는 것과 같았다. 자원봉사자들의 유니폼 역시 고전적이었던지라 함께 사진촬영을 부탁드릴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일제히 사람들은 기차에 탑승하자마자 창가로 자리를 잡았고, 나와 예주 역시 명당을 놓칠세라 서둘러 자리를 앉았다. 퍼핑 빌리의 창문은 유리 대신에 쇠창살로 되어있어서 한 팔로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몸을 고정한 끝에야 안락하게 창문에 착석할 수 있었다. 설명만으로는 창가에 걸터 앉는다는 것이 꽤 낭만적으로 다가왔지만 실제로 창문 밖으로 다리를 내놓고 창문턱에 걸터앉으니 꽤 무서워 기차를 타는 내내 온 몸이 긴장했다. 나는 행여라 핸드폰을 떨어트릴세라 움켜쥐었고 한 손으로 촬영하는 예주를 보며 속으로 감탄하다가 이내 고개를 조금 더 내밀어 창문 밖으로 삼삼오오 걸터앉은 사람들도 구경하며 풍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무섭지 않다며 여유를 부릴 즈음 기차는 입구에서 보았던 꽤 아찔한 높이에 선로를 지나갔다. 선로 밑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였던 탓에 그 무엇도 떨어트리지 않고자 사진 찍는 것을 멈추고 핸드폰을 고이 손에 쥐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악을 먼저 상상하는 사람인지라 그 도로 위로 내 핸드폰이 와그작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나는 것이 절로 상상이 되었지만, 퍼핑 빌리는 별 탈 없이 정거장에 다다랐고 우리는 점심을 해결 후 사사프랑스로 향했다.

사사프랑스 동화마을은 마을 자체가 몹시 아담하고 귀여운 호주의 산골 마을이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가평에 위치한 쁘띠 프랑스의 실사판이라 볼 수 있겠다. 귀엽기는 하나 다소 인위적인 가평 쁘띠 프랑스에 비해 실제로 사람들이 산다면 이런 마을이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태생적으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곳에서 주어진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못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미스 마플 티룸 맞은편에는 장난감 가게부터 시작하여 양초 및 다양한 핸드메이드 제품들을 판매하는 상점이 줄을 이었고, 나는 예주가 꽤 오랜 시간 향초에 시간을 쏟는 동안 상점 밖을 나와서 사진을 찍어댔다. 어느 곳을 배경으로 찍어도 그림이 되는 곳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유명한 미스 마플 티룸도 아닌 한 향초 가게였다. 그곳은 향초에 큰 관심이 없던 나조차도 꽤나 많은 향들을 맡아보게 만들었다. 종종 향기에 이끌려 들어간 가게에서 온갖 냄새가 섞여 나오는 통에 머리가 아프기도 한데, 그곳은 특이하게도 그 모든 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나는 고심 끝에 오렌지향과 자스민향 핸드메이드 캔들을 사고는 예주와 함께 마스미플 티룸으로 향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투어 여행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던 장소가 로크 야드 고지였다면 사사프라스에서는 미스마플 티룸이 그러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고작 30분 남짓이었는데, 그 30분 동안 사사프라스 내에 위치한 상점들을 모두 둘러보고 카페에 가서 차 한 잔 하기까지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티룸이라는 호칭답게 그곳에서 하다못해 홍차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우리는 가게 앞을 서성이다가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직원의 양해를 구하여 잠시 내부를 둘러보는 것에 그쳤다. 가게 내부를 둘러보자 이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사프라스의 미스마플 티룸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마플'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 카페 내부는 노부인 탐정이라는 주인공의 특징과 걸맞게 꾸며져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얼마 안되어 돌아와야 했고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서로에게 보내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당초 투어 플랜으로는 마루 동물원에 들려 코알라를 보는 것이었지만, 전날의 강행군과 피로감으로 인하여 모두들 동물원은 지나치자 하여 노비스 센터에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어느덧 노을은 지고 있었고 꽤 매서운 바닷바람에 가이드분께서 빌려주신 담요를 들고 풍경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펭귄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만 상상했던 나로서는 노을이 지는 바다와 길게 드리워진 들판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 날 본 풍경이 이루어 말할 수 없이 장대하고 웅장한 것이었다면 노비스 센터는 잔잔한 아름다움이 주를 이루었다. 다리 밑으로 펭귄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는 가이드분의 말에 모두들 몸을 숙이고 펭귄을 찾아보았고, 펭귄 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자 어느덧 주위는 어두워졌다.


펭귄 퍼레이드에 대하여 정보도 없었던데다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마치 인형들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펭귄들의 그 자태에 반해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아무리 귀여운 것에 흥미가 없는 사람일지어도 펭귄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펭귄들이 귀엽다며 서로 호응해줄 수 있는 동지가 옆에 있어 그들의 귀여움은 한층 높아져갔다. 펭귄을 보호하기 위해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 작고 조그만 펭귄들의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이드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플래시마저 터트리는 사람들이 밉고 야속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내 팔뚝만 한 크기의 펭귄들이 각자 집을 찾아가려 줄지어 걸어가는 그 모습은 마치 클레이 무비 속 한 장면을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월레스와 그로밋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맥그로우의 실사판이 그곳에 있었다. 다리가 짧아 뒤뚱뒤뚱 걷다가 이내 넘어지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훔쳐 오고 싶은 충동마저 느낄 정도였다. 이후 나는 펭귄 퍼레이드를 본 다음날 아드만사 전시회에서 맥그로우 인형을 사려 했으나 45불이라는 사악한 가격에 이내 내려놓았다.

포기한 맥그로우 인형

그렇게 한참이나 펭귄의 귀여움에 헤어 나오지 못하던 우리는 어느덧 집에 갈 시간이 되자 미처 다 둘러보지 못한 기념품 숍에서 대형 펭귄 인형과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예주는 조악한 펭귄 인형들을 집어오는 나를 말리며 하루를 마감했다. 그 후 예주와는 우연찮게 시드니 시티 한가운데에서 마주쳤고 다행히도 그녀가 한국으로 출국하기 전 두어 번 정도 더 볼 수 있었다.


실은 혼자 여행하는 것을 퍽 좋아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을 되려 겁내하는 타입인지라 초면인 분들로 가득한 투어 여행이 잘 맞을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곳에서 유쾌하고 재밌기도 하며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데다가 사진마저 잘 찍는 동생을 만나 운이 좋게도 행복한 투어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가족과 연인 단위로 왔던 그 투어 여행에서 나 홀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광활한 전경과 퍼핑 빌리와 펭귄 퍼레이드의 그 귀여움을 보았더라면 지금만큼 좋은 기억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퍼핑 빌리는~하며 감상을 떠벌리다가도 이내 외로웠다며 끝을 맺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가득한 낯선 나라에서 생전 처음 본 누군가와 시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일. 어쩌면 그것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구태여 동행을 찾지 않아도 되는 나홀로여행이 주는 가장 큰 이벤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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