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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r 23. 2022

2017.11.30 / 여행이 여행일뿐이라는 말의 대답

멜버른, 호시어 레인 & 야라강 & 유레카 스카이데크88 & 쿡선장의 집

책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가이드북에 꽤 의지하는 편이다. 실제로 여행의 질이 가이드북을 참조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편이며, 가이드북으로 이곳저곳 코스를 짜고 다이어리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던 멜버른 여행과는 달리 즉흥 여행을 택했던 퀸즐랜드 여행은 다소 무기력했다. 애초에 혼자 여행하기에는 도시가 휴양지보다 외로울 새 없고 선택지가 많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지만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은 외롭기 짝이 없었다. 마치 돈을 고 외로움을 산 기분이었달까.


그런 점에서 멜버른 여행은 이틀간의 투어 여행과 하루 10시간 이상의 도보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만족스러웠다. 다이어리에 적어둔 장소들을 가볼 때마다 숙소로 돌아와 라운지에 앉아 하나씩 체크하는 재미도 있던 데다가 내가 어디를 돌아다녔는지를 정확히 할 수 있었던 덕에 멜버른여행의 기억에 또렷이 남았다. 게다가 가이드북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도 소개하곤 하였는데, '그곳이 어떻다더라'라는 식의 후기는 가이드북에서는 알 수 없었으므로 여행에서만큼은 타인의 의견은 잠시 제쳐둘 수 있었다.

멜버른 하드웨어 소사이어티 (The Hardware Societe Melbourne)

앞서 말한 것과는 달리 가이드북에 의존할 수 없던 것은 바로 맛집이었다. 이상하게 맛집만큼은 네이버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있었다. 결국 네이버에 검색하면 순위별로 나오는 맛집을 두루 섭렵하는 것을 당시 여행의 소소한 목표로 잡고 사소하게나마 도장깨기에 나섰다. 그렇게 나는 멜버른에서 그렇게 핫하다던 브런치를 먹고자 이른 아침에 숙소를 나섰다. 조금만 늦게 도착해도 한참을 줄지어 기다려야 한다는 정보에 괜스레 겁을 먹었지만 서둘러 출발한 덕에 한산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였고, 나는 영어로 된 재료들을 조합해보며 그럴듯한 음식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음식을 반 정도 먹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가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못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두툼하고 느끼한 고기를 반쯤 먹었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남은 것들을 두툼하게 썰어 흰쌀밥 위에 김치와 얹어 먹고 싶은 심정이었고 반숙이던 계란마저 가뜩이나 느글거렸던 입안을 한층 더 느끼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번듯하게 찍어놨지만 실은 음식은 먹을 때보다 먹기 전이 더 맛있었고 한 푼이라도 더 아껴보려 음료는 과감히 생각하려 했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곳에선 시그니처 음식이 따로 있었고, 결론적으로 나는 음식선정에 실패하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사진 속의 그 시그니처 음식은 내가 주문한 것보다도 더욱 담백해 보였다.

블록 아케이드 (Block Arcade)

나름 맛있게 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집에 가서 다른 음식을 먹고 왔다는 생각에 속으로 분해 있던 나는 전 날 미처 들어가지 못했던 홉툰티룸을 다시 방문하기로 하였다. 쭈뼛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간 나는 카페라떼 한 잔을 주문하였고, 곧이어 직원과의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당시에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여행영어만큼은 자신 있던 나는 멜버른에서 적어도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들 거라고는 상상은 하지 못하였다. 어찌 되었건 외국인 쉐어를 하면서 큰 불편함을 못 느꼈던 나는 여행영어에 있어서는 꽤 자신 있었는데, 그것들이 내 착각이라는 것을 느닷없이 맞닥뜨린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직원 : 저희 가게에는 이것도 팔고 저것도 팔고 이것도 팔아요. 그리고 케이크는 미리 앞에서 주문할 수 있으니 하시겠어요?

나 : 예..? 케이크를 주문해야 하나요?

직원 : 예. 주문하실 수 있어요.

나 : 저, 그런데 식사나 케이크를 주문해야만 커피를 마실 수 있나요?

직원 : 무슨 말이시죠?

나 : 커피만 주문해도 되나요?

직원 :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예. 가능하세요.


앞서 상황을 다시 설명해보자면 직원은 내가 무엇을 주문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해주었고 시드니에서 늘 카페라테만 주문하였던 나는 느닷없이 쏟아지는 영어에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직원의 말이 몹시 빨랐던 탓에 가뜩이나 알아듣기 힘든 호주 영어에 넋을 놓았고, 주위 손님 모두 다 차와 브런치 또는 케이크를 먹고 있는 것을 보자니 '이런 곳은 커피만 시키면 안 되나 봐'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결과 직원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다 서로 카페라떼만 시키는 곳으로 협의 본 형국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던 직원이 옆에 있던 백인 손님에게 '말이 안 통해서 난처하네'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었고 두 사람의 아이컨택 속에서 나는 자신감을 잃고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시드니에서 반년 동안 살았으면서 고작 메뉴안내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옆에 있던 손님에게 난처한 눈짓을 보내던 직원이 못내 미웠다. 더군다나 그곳은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만큼 나 말고도 영어에 미숙한 손님은 많았을 터였는데 그 누구의 리뷰에서도 직원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시드니에서 보낸 반년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그저 'just café latte, please.'라는 말 한마디면 되었을걸 괜스레 되물었다가 망신을 당한 것만 같았다.


서운하고 울적한 기분을 달래고자 도연이에게 이런 저러한 일로 카페에서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 들었다고 푸념하였다. 나보다도 워홀생활을 1년 경험한 선배이면서 멜버른에서 살았던 도연이는 호주 억양이 유독 심해 그럴 수 있다며 위로해주었다. 사실 '그 직원이 호주 억양이 쌨던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답이 아니오로 기울었지만 앞서 일을 애써 털어버리기 위해 나는 그 직원을 '호주 억양이 너무 쌘 탓에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직원은 매일 같이 쏟아져 오는 관광객들에게 그저 기계적으로 메뉴를 설명해주었을 뿐이었고, 그 과정에서 넋을 놓았던 내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자 본인도 당황했으리라.

멜버른 시티 도서관 (City Library)

앞서 일을 털어버리고 나는 호시어 레인을 가기 전에 멜버른시티 도서관을 먼저 방문하였다. 헤이마켓에 위치한 시드니시티 도서관과는 비교될 정도로 시설이 좋았던 멜버른 시티 도서관은 내가 호주에서 방문한 도서관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었고 한국의 도서관과도 비슷하였다. 더불어 장서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이용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도서관 위층의 전시관과 매점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 도시는 어쩜 도서관마저 이뻐?'를 연신 속으로 외쳤다. 주로 공공도서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책 관련 전시회가 아닌 위 층이 독립된 작은 미술관과도 같았다. 도서관이 책이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하나의 문화 예술 센터를 담당하는 기분이었고, 그림을 보며 책을 읽는 이용자들의 모습이 꽤나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뒤이어 놀란 것은 바로 매점이었다. 조그만 매점 사이로는 옛날 영화 포스터들이 붙여져 있었고 자세히 메뉴판을 보지 않고서는 이곳이 매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어 보였다. 탄수화물이 주식이며 매점에는 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의 도서관과 커피와 빵이 주식이며 책을 읽는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의 비율이 적절한 호주 도서관의 차이점이 피부로 와닿았고, 누군가 호주와 한국 도서관의 차이점을 물어본다면 굳이 주립 도서관과 국립 중앙도서관을 비교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많은 공공도서관도 도서관의 특성에 따라 이용자의 특성이 고루 섞여있다.) 게다가 멜버른 시티 도서관은 헤이마켓 시드니 시티 도서관과도 큰 차이점을 보였는데, 시설이 꽤나 노후하고 비좁으며 중국인 이용자가 많은 탓에 한 층이 전부 중국 및 일본 서적으로 비치된 시드니 시티 도서관과는 다르게 멜버른 도서관은 그야말로 세련된 신축 도서관과도 같았다. 특화도서관이랍시고 억지스럽게 만들어내어 지역 특성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이용자와 지역 특성에 맞게 도서관 스스로가 특색을 갖춘 것이다.

호시어 레인 (Hosier Ln)

뒤이어 나는 한국에서 멜버른은 몰라도 미안하다 사랑하다에 나온 그 외국도시하면 누구나 알법한 호시어 레인(미사 거리)을 방문하였다. 미안하다 사랑하다가 방영할 시 드라마를 꽤나 재밌게 본 사람으로서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난 호시어 레인은 멜버른의 여러 관광지 중 기대가 높은 곳이었다. 유럽풍의 건물들 사이로 그래피티가 줄지어 그려진 거리가 꽤나 독특하게 다가왔으며, 멜버른에서 본 것 중에 가장 기괴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으로 보였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반항적이고 과감한 그래피티가 유럽풍의 건물들과는 대조되었고, 때때로 배트맨이 지켜야 할 고담시가 떠올랐다.

야라강 (Yarra River)
유레카 스카이데크 88 (Eureka Skydeck 88)

여행의 마지막 날인 만큼 이곳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보자는 심산이었던 나는 마지막 관광지였던 유레카 스카이데크 88을 방문했다. 이 건물을 찾고자 야라강 주변을 한참은 헤매었는데 야라강이 보이는 주변 레스토랑 근처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스카이데크 건물은 여의도가 떠오르는 빌딩 숲에 위치해있었다.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건물 안으로 입성한 나는 이후 전망대에서 보이는 탁 트인 도시의 전경을 보자 내가 온 여행지가 도시였음을 실감하였다. 유레카 스카이데크 88은 한국의 남산타워보다 전망대 내부가 다소 넓었으며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난간 체험이라 불리는 더 엣지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더 엣지로 입성하는 방법은 다소 독특하였다. 유리 난간이 손상되는 위험을 방지하고자 사전에 신발 위로 검정 덧신을 신었고, 소지품은 한편에 위치한 서랍장에 미리 보관해두었다. 마치 성스러운 곳을 입성하기 위한 준비과정처럼 느껴졌달까. 더 엣지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가 위로 가는 것이 아닌 앞으로 가는 듯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인데 더 엣지를 체험하기 위해서 유리방으로 들어가자 내심 긴장되었다. 내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으로 된 유리는 튼튼하여 내가 아무리 힘을 주어 뛰어 밟는다 하더라도 절대 깨지지 않을 만큼 두꺼워 보였고, 그만큼 두꺼워서인지 생각보다 혹은 유리 색이 탁했던 탓인지 상상했던 것만큼의 긴장감은 주지 않았다. 그러나 생전 처음 보는 사이일지라도 같은 체험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서로 웃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곳에서의 경험을 꽤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와 함께한 이들은 노부부 한 쌍과 가족 한 팀이었다. 우리를 태운 유리방이 건물 외벽에서 나와 모두 유리바닥으로 아찔하게 펼쳐지는 땅을 내려다보고 있을 즈음 사진을 찍을 테니 한 팀씩 나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 방에서 혼자 온 여행객은 나뿐이었던지라 고민하던 찰나 나는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께 사진을 같이 찍자 하였고, 그분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응해주신 덕에 우린 마치 모녀처럼 사진을 찍었다. 후에 사진을 찾는 곳에서 그분을 다시 만났는데 서로 같은 사진을 인쇄한 것을 보며 미소 지었고 사진 속 내 얼굴은 더위에 벌게졌지만 표정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더 엣지 (The Edge)
유레카 스카이데크 88 (Eureka Skydeck 88)

이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고 공항에 가야 함에도 여유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자 나는 정류장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 공항에서 숨 돌리며 좀 더 여유롭게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에서 들었던 쿡 선장의 집을 구경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웠던 나는 결국 그곳으로 급히 방향을 틀었다. 쿡 선장의 집은 멜버른에서 살았던 도연이를 비롯하여 호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까지 그곳이 대체 어디냐며 물었던 미지의 관광지였다. 가이드북에서 보지 않았다면 있는지도 몰랐을뿐더러,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에서 가이드의 '경치가 이쁘니 시간이 된다면 꼭 둘러보아라'라는 당부가 없었다면 비행기 탑승시간을 앞두고 방문하지는 않을 곳이었다. 


쿡 선장의 집은 호주를 발견한(유럽인에서의 입장에서) 캡틴 쿡의 생가이며, 나의 지인은 그러니까 그 쿡이 그 캡틴 쿡을 말하는 것이냐며 그 사람이 살던 집은 왜 가는 것이냐며 날 놀려대기도 하였다. 그의 말에 글을 통해서나마 답변해보자면 나는 뼛속까지 도시 여행이 체질이 맞는 사람인 데다가 맛집보다는 유적지를 더욱 선호하는 여행객이므로, 굳이 시간을 내어 그곳에 방문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조금 더 여유 있었더라면 쿡 선장의 집 내부를 둘러다 보았을 테지만 공원을 둘러보는 대에도 꽤나 오래 걸렸고 아쉬운 마음에 기념품 숍에 들러 선장 옷을 입은 테디베어를 보고 구매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다 이내 포기하였다. 사실 쿡 선장은 미국의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대륙을 발견했다는 업적을 세웠지만 그 가운데 원주민을 박해한 것에 대하여 극명하게 평이 갈리는 인물 중 한 명에 속한다. 그러니까 호주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침략자에 불과한 것이다.



뉴질랜드로 출발하기 얼마 전에 읽었던 유발 하라니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에서 언급한 내용도 상기되었다.

···

“쿡은 자신이 ‘발견한’ 수많은 섬과 육지에 대해 영국의 소유권을 주장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호주였다. 쿡의 탐사대는 영국이 남서태평양을 점령하고, 호주, 태즈메이니아, 뉴질랜드를 정복하고, 수백만 명의 유럽인이 새로운 식민지에 정착하며, 그곳의 토착문화를 파괴하고 원주민 대부분을 박멸할 기초를 닦아주었다. 쿡의 탐사로 인해 다음 세기에 호주와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은 가장 비옥한 땅을 유럽 정착민들에게 빼앗겼다. 원주민의 수는 90퍼센트가량 줄었고 생존자들은 인종차별적인 가혹한 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호주 원주민과 뉴질랜드 마오리족에게 쿡의 탐사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시작이었다.”


출처 : 코리안 스피릿(http://www.ikoreanspirit.com)




여행은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 자부하던 나였지만 이러한 사실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기념품샵에서 선장 옷을 입은 테디베어에 반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시드니에서 고작 1년을 살다 간 단기 체류자였기에 호주에서 어떤 역사교육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부디 쿡 선장의 업적 이면에 대하여 교육되고 있기를 희망해본다. 그가 위대한 탐험가일지라도 자국이 식민지 지배로 고통받은 역사가 있는 나로서는 선뜻 우러러볼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역사와 별개로 피츠로이 가든과 쿡 선장의 집만을 놓고 본다면 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쿡 선장의 집 주변으로 보이는 풍경만 보노라면 숲 속의 작은 오두막이란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쿡 선장의 집 (Captain Cook's Cottage)

멜버른 여행은 어느 누구와도 여행을 공유하지 않은 온전한 나만의 여행이었다. 스무 살의 미국 여행부터 시작하여 스물다섯 살에 떠난 유럽여행,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떠났던 퀸즐랜드 여행에서 꽤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그 들과 일정 부분 동행하였지만 멜버른에서만큼은 그 누구와도 엮이지 않은 채 나 홀로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호주 워홀을 결심하던 당시에 나는 시드니보다는 호주의 유럽이라 불리는 멜버른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혹여 비자를 연장하게 된다면 반드시 멜버른에서 체류해야지라며 마음먹었을 정도로 이 도시에 대한 관심이 꽤나 깊은 편이었고, 가급적이면 멜버른의 모든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싶었다. 실제로 도연이는 나에게 시드니보다 멜버른이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며 말했다.


나의 워홀은 멜버른 여행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행을 다녀온 후의 호주에서의 삶은 크게 변화하였다. 여행 시기에 맞추어 이사 온 방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고 오지잡을 구해보겠다고 레주메를 뽑아 직접 발로 뛰어보는 구직활동에도 임하였다. 주 40시간을 주겠다던 카페에서 영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도 당하고 이내 사기에 가까운 쉬프트를 받아보기도 했으며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국인 매니저에게 트라이얼을 받아보고 오로지 면접을 영어로만 보는 쾌거도 이루었다. 비록 그 이후로 돈이 고작 통장에 천 불밖에 없던지라 방세를 감당하기 위하여 일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의 두 달이 불행하여 무리하게 세컨드 비자를 사는 대신 여행 후 귀국을 택했다. 그러니까 이스트 레이크스에서의 안정적이었던 반년과는 다르게 여행 후 반년은 우울과 경험을 동시에 얻은 것이다.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먼저 배낭여행 경험이 있던 친구는 내게 말했다. 유럽여행으로 인하여 내 삶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녀의 말대로 내 인생은 배낭여행 이후로 크게 변화된 것은 없었지만 그 여행을 계기로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감행하게 되었다. 더불어 나에게 여행은 여행일 뿐이라고 말한 그녀 역시 그녀가 꿈꾸던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으며, 유럽여행을 경험한 또 다른 친구 역시 나와 같은 시점에 캐나다로 워홀을 떠났다. 그리고 이번 멜버른 여행 역시 나에게 있어 많은 변화를 시사했다. 오고 싶었지만 적응하기가 무서워 머물 엄두조차 못 내던 도시로 여행을 와서는, 내가 진정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도전하게 만들었던 계기. 그렇게 삶이 변화되지 않을 거라 치부하던 여행은 종종 무엇이든 간에 우리를 결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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