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5~26 / 호주의 유럽에 가다

멜버른, City Tour (1)

by 사서 유

예상과는 다르게 도서관에서 무려 4시간이나 지체한 나는, 뒤늦게나마 시티를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과 다르게 날씨는 맑게 개어있었고, 그 덕에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멜버른 시티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20분을 걸어 처음 도착한 곳은 차이나타운이었는데, 시드니 차이나타운에 꽤 익숙해진 터라 아쉽게도 큰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 차이나타운을 가로질러가는 마차만이 조금의 감흥을 주었을 뿐이었다.

China Town
Parliament House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차이나타운에서 빠져나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으로 가는 도중 작은 공원을 하나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몇몇 아이들이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 안에서 한창 뛰어놀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어느 나라를 가던 물이 뿜어져 나오는 공원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참 사랑스럽다. 아이들의 행복한 비명이 화창한 날씨와 어우러져 그곳의 풍경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었다. 이윽고 대성당에 도착한 나는 길 건너에 위치한 성당의 위용을 카메라 한 폭에 다 담고자 노력하다가, 곧 무리라는 것을 깨닫곤 성당 안을 구경하기 위해 서둘러 내부로 들어갔다. 유럽여행기에서도 줄기차게 이야기한 바 있지만 종교 건물이 주는 엄숙함은 무교인 나 역시도 저절로 침묵하게 만든다. 그곳이 절이건, 성당이건 간에.


그렇게 성당을 빠져나와 페러데이션 스퀘어로 향하는 길목에서 길을 헤매어 한창을 방황해야만 했다. 멜버른의 무료 트램 정류장이 정확히 어디인지 몰라서 같은 곳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것도 모자라 제 맘대로 움직이는 GPS 덕에 헤매는 시간은 더욱 길어져만 갔다. 해변가를 갈 때마다 내 위치가 바다 한가운데에 표시된 것을 보고는 코웃음 쳤었는데, 막상 여행 도중에 핸드폰이 말을 듣지 않자 꽤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날은 어느덧 저물어갔고, 여전히 날씨는 후덥지근하였으며 ‘거기가 거기 같은데’를 남발하며 수없이 길을 헤매던 끝에 이윽고 플렌더스역에 당도할 수 있었다.

페더레이션 스퀘어
St Paul's Cathedral
Flinders Street Railway Station

멜버른을 ‘호주의 유럽’이라 부르는 것을 제법 들었는데 아마도 그러한 이미지를 더욱 심어주는 것은 도시 곳곳의 유럽풍 건물과 더불어 플렌더스역일 것이다. 멜버른은 대체로 시드니보다는 고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도시였는데, 그중 플렌더스역은 그 자체만으로도 멜버른을 대표하는 하나의 심벌과도 같았다. (실제로 시드니 기념품 숍에서는 오페라하우스 스노우볼을 판매하듯이 멜버른에서는 플렌더스역 스노우볼을 판매하고 있었다.) 다소 날씨가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플렌더스 역을 사진에 담는 것만으로도 내가 멜버른에 왔다는 것을 한껏 체감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무심히 역을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처럼 몇몇 관광객들이 길 건너 신호등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플렌더스역 옆에는 페러데이션 광장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아드만사의 전시회가 여는 것을 간판을 통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달이 치즈 맛이라는 환상을 심어준 윌레스와 그로밋 시리즈. 그 시리즈를 만든 제작사의 전시회를 볼 수 있다는 감격에 한껏 들떠 ACMI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어대었다. 여행 일정이 빠듯할지라도 이 전시회는 꼭 보겠다는 마음으로 팸플릿을 고이 가방에 접어 넣었고, 며칠 후 나는 그 전시회에서 반나절 이상을 머무를 수 있었다.


당시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터라 페러데이션 광장은 성탄절에 어울리는 조형물들로 한껏 꾸며져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는 한국과는 다르게 장마철이 연상되는 여름날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것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서 미쳐 치우지 못한 조형물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커다란 트리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내심 혼자 여행 온 것이 실감이 나면서,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잠시 느낀 외로움 속에서도 홀로 꼬박 9시간을 넘게 돌아다닌 나는 숙소로 돌아와 홀로 라운지에 앉아 주변인들에게 밀린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주위 사서 선생님들에게 내가 오늘 본 멜버른 도서관에 대해 열띤 감상을 보낸 뒤, 멜버른에 살았던 친구 D와 내가 다녀온 명소들에 대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어떤 형태로든 그날의 감상을 남기러 애썼다. 그렇게 설레고 바빴던 여행의 첫날이 쉽게 휘발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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