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누적된 피곤 때문인지 11시 넘어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친 뒤 호스텔 라운지에 앉아 다이어리에 오늘의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으로 계획 없이 여행을 시작하고 말리라 다짐했음에도 무계획 앞에서 속절없이 방황하고 만 것이다. 벽장 한편에서 발견한 한국어로 된 호주 가이드북이 보자 반가운 마음에 어서 집어 들어 26일부터 30일까지의 여행 일정을 적어갔다. 사실은 계획이라기보다도, 가능하면 모든 곳을 다 가보고 말리라는 버킷리스트에 가까웠지만. 모두 적고 보니 가야 할 곳들이 족히 17곳이나 되었고 이 모든 일정을 단 며칠 만에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못 가면 말지 뭐’라는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챙겨나갔다.
35번 트램 안
멜버른의 첫인상은 영국과 비슷했다. 음산한 날씨와 호주의 유럽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도시의 이국적인 풍경이 영국을 떠올리게 했다. 멜버른 시티는 무료 트램 한 바퀴면 시내를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좁았는데, 트램 안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시드니보다는 다소 현대화된 유럽과도 비슷했다. 실제로 유럽에 사는 친구에게 이 말을 전하였을 때, 친구는 멜버른과 유럽은 전혀 다르다며 펄쩍 뛰었지만 시드니에서만 반년을 지낸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멜버른은 시드니보다는 고전적이며, 유럽보다는 현대적이었다. 어쩌면 ‘현대적인 유럽’이라는 내가 내린 별명에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초 계획으로는 페러데이선 스퀘어를 시작으로 야라강 북쪽의 반을 모두 돌아볼 심산이었지만 트램을 정반대로 타는 바람에 얼떨결에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부터 찾게 되었다. 유럽배낭여행에서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도서관을 가지 않은 것을 그로부터 두고두고 후회하였고, 호주에서만큼은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하여 기회가 될 때마다 도서관을 방문하고 싶었다. NSW 주립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역시 그리스 신전과도 같은 위용을 뽐냈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나는 도서관하면 현대적인 빌딩이 절로 떠오르기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도서관 외간을 빙 돌아보았다.
도서관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서점이었다. 책을 빌리는 곳과 파는 곳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은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읽지도 못하는 영문서적 한가운데에서 나는 책들과 굿즈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이윽고 도서관 내부로 진입하였다.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은 NSW 주립 도서관보다도 전반적으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강했고, 열람실을 제외한 나머지 층들은 대부분 전시실로 이용되었다. 호주의 주립 도서관들은 도서관보다도 도서관과 박물관을 합쳐놓은 것에 가까웠고, 그 덕에 열람실을 제외한 층들을 대부분 전시관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애초에 설립되었을 당시부터 그러한 목적을 띄고 설립된 것은 아닐까. 층마다 전시 주제가 제각기 달랐고, 5층부터 한층 한층 내려와 모든 전시회를 둘러본 후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나는 한국의 사서라고 소개하며 열람실에 계신 사서선생님께 이곳 역시 NSW 주립 도서관처럼 소장 도서가 전부 참고도서인지를 여쭤보았다.
그곳 사서선생님의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호주 대부분의 주립 도서관들은 참고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소설 등의 일반도서들은 그 외 시티에 위치한 도서관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로 보였다. 한국도서관들은 시·도 도서관이 하위기관의 도서관들을 중앙에서 관리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이색도서관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동일한 운영구조를 띄며 운영된다. 그에 반해 호주의 도서관은 주립 도서관이 그 주의 문헌 유산들을 모두 관리하고 보존하는 하나의 박물관에 가깝다. 그러한 이유로 주립 도서관에서의 소장 도서들은 소설 및 비소설 등의 일반자료가 아닌 사전이나 연감 등의 참고도서들로 구성되는 것이다.
La trobe Reading Room
그곳 사서선생님의 설명을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놓칠세라 단어 하나하나 주의 깊게 들은 뒤 팸플릿에 나와 있는 열람실로 향했다.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홍보 팸플릿에서도 소개되어 있는 ‘La trobe Reading Room’은 아치형 형태의 돔 밑에서 웅장하게 펼쳐지는 열람실로써, 도서관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자 이곳의 도서관들이 갖고 있는 거대한 박물관의 이미지와도 부합하는 장엄하고도 거대한 곳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의 풍경을 한 번에 담고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으며, 나 역시도 그곳에서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하고 10번 이상은 돌아보며 눈으로 그 풍경들을 죄다 담고자 노력하였다. 이런 거대한 도서관들을 볼 때마다, 어릴 적 보았던 미녀와 야수의 서재가 절로 떠오른다. 그때 야수의 서재를 보고 감탄하였던 벨의 마음이 지금의 나와 같을까 하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광경은 어떠할까 궁금했던 나는 밑으로 내려와 열람석 하나에 자리를 잡고 지금 이 감정이 사그라들기 전 다이어리에 꼬박꼬박 내 감상들을 모두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감상의 마지막 단락에서 나는 ‘이런 곳을 매일 드나들 수 있다면 고된 노동자로 살아도 행복할 것 같다.’라는 문장을 적었다. 그때 내 눈에 비친 거대한 서가들은 도서관을 지키는 신성한 석상과도 같아 보였다. 그 위용의 압도되어 주위를 돌아보자 문화가 주는 삶의 만족도가 10%에 해당한다면, 그 10%를 위하여 나머지 90%를 인내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그때의 나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때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 멜버른 도서관을 다녀온 뒤 줄곧 들었던 생각은 그토록 넓은 주의 모든 문헌 유산을 담당하고, 거대하고도 웅장한 도서관이 잘 굴러가도록 운영하고 이끄는 사람들은 사서들이며 이는 한국의 사서들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당시엔 한국에서의 직업이 사서였다고 말할 때마다 10명 중 8명의 한국인들은 ‘사서요? 책 빌려주는 사람?’이란 말로 대답했다. 그때마다 나는 사서는 쏟아져 나오는 책과 정보 속에서 그 한가운데에 표류하지 않도록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자, 선두에 서는 사람들이라는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에게 했던 것 같다.
대중의 인식이 변화될 수 있도록 단순히 책을 대출해주는 사람이 아닌, 보이지 않은 곳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란 인식이 심어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독서프로그램과 실적에 압박을 넣을 것이 아니라 도서관 운영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그에 따른 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나 역시 쉽게 대안을 내놓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며 이러한 점들은 사서 집단 내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인 만큼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느낀 감상들과 이러한 답답한 심경 등을 당시 함께 살았던 친구들에게 토로하자, 한 친구가 내게 자신의 직업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말을 들을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를 스스로 생각해보자니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돈벌이의 수단으로 일을 대했던 순간이 꽤 많았고, 직업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도 있을 만큼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그만두면 끝인 노동이라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여행 도중 도서관을 마주칠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어갈 나의 직업을 떠올리며 종종 자유를 잃었다.
그 후로 다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나는 재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 앞에서 지독한 우울을 겪어야 했고, 누군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해야지만 휴직대체직 자리가 생기는 암담한 취업시장 앞에서 한 달을 방황해야만 했다. 그렇게 사서와는 전혀 무관한 사무직자리에 채용원서를 넣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육지원청 구인구직란을 매일같이 들낙거렸다. 천운으로 1년간의 계약직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후 마지막이라 볼 수 있는 교육공무직원 공채면접시험에 합격하여 삶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는 빼도 박도 할 수 없도록 결혼비용에 해당하는 몇 천만 원의 학비를 교육대학원에 쏟아부으며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현직으로 다시 돌아와 보니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변하고 있었고, 삶의 안정과 커리어의 안정은 별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나의 직업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 나는 당당히 애증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사랑이라기엔 이해관계가 너무 얽혀있는 데다가 권태감마저 있지만 애정을 잃지는 않은. 좋아한다고만 말하기에는 때때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는 그런 애정과 권피함 그 중간 어디 즈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