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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28. 2019

나의 독서 모임 이야기.

1. 독서 모임을 접하다.

사진: Photo by �� Claudio Schwarz | @purzlbaum on Unsplash


※  독서 모임의 진정한 가치는 모임 안에서 어떠한 가치 있는 생각들이 오고 갔느냐일 것입니다. 그러나 곡식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토양을 만들고 성장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듯, 독서 모임 그 자체도 바로 그러한 지적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중요한 토양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독서 모임 가이드」에서 언급한 여러 형태의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느꼈던 생각이나 경험들을 중심으로 적은 글입니다. 이러한 글을 쓴 까닭은 독서 모임을 새롭게 만드는 분에게는 여러 모임의 형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함에 있으며, 독서 모임 진행하거나 참여하고 계신 분은 자신과 같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공감을 하고 저처럼 자신의 독서 모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의도는 이러한 몇 년간의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가치 있는 사고를 위한 독서 모임」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이나 느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좋은 독서 모임을 만드는 방법보다도 좋은 독서 모임이 되기 위해 어떤 사고를 했는지를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독서뿐 아니라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이야기는 연재 중에 계속 수정되며 추가될 수 있습니다.)


2부 이야기 -「독서 모임을 만들다.」https://brunch.co.kr/@wringkle/122




독서 모임을 접하다.     

  처음 독서 모임을 접하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 어느 날,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서 독서 모임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서이다.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는 생각보다 혼자 읽고 그에 관한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했었다. 독서라는 지적인 행위는 오로지 혼자서 하는 운동과 같은 것으로만 생각했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지적인 성장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뿐 아니라 학과 공부와 취업 준비에 따른 여러 활동으로 인하여 독서와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연히 보게 된 모임의 글은 취업 준비로 바쁜 생활을 보내다 지쳐갈 무렵, 눈에 들어왔고 곧바로 용기를 내어 연락했다. 연락하게 된 까닭 중 하나는 모임의 선정도서가 눈에 띄어서이기도 했다. 그때 모임에서 선정한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었다. 그 무렵 이 책을 포함하여 알랭 드 보통의 이런저런 책을 읽고 공감하는 게 많았는데, 책에 관한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책 이야기를 할 만한 친구들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바로 글 아래에 적혀있던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저녁에 보자는 연락이 왔다.

  나중에 독서 모임을 만들고 비단 독서 모임뿐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이 오고 가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은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연애나 티비 방송이나 다른 사람 이야기뿐이라고,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들 다수가 지적인 대화에 관한 갈증이 있었다. 물론 술자리 모임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교활동을 위해서는 일종의 술자리 대화도 필요한 법이다. 여하튼 나 역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나 사랑에 관한 지적인 대화를 해보고 싶었기에 바로 연락을 했고 평일 오후에 인근 커피숍에서 보기로 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독서 모임을 간 날, 커피숍으로 들어가니 한자리는 연인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다른 한자리에는 낯익은 책과 프린트물을 앞에 둔 한 남자분이 앉아 계셨다. 다소 조용한 분위기에 지적인 대화를 하기에는 적당한 분위기였다. 그와 인사를 하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우리 학교 사람은 아니었으나 근처에서 공익 근무를 하는 중에 독서 모임이 하고 싶어서 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글을 올려달라 부탁했다고 했다. 모임은 한 명이 더 연락을 주셨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가 어렵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둘이서 하는 거 괜찮죠?" 나는 그의 말에 괜찮다고 했다. 두 명이면 어떻고 세 명이면 또 어떠랴 싶었다. 진지한 대화에는 오히려 두 명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독서 모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참여자의 저조로 진행자와 참여자를 포함하여 두 명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면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데 조금은 난감해지기도 한다. 독서 모임뿐만 아니라 모든 모임이 그럴 텐데, 참여자의 성향을 잘 알고 대화가 막힘없이 진행된다면 무리가 없겠지만, 매번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거나 진행하는 실력이 있다면 둘이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각자의 발언권이 많아지게 됨에 따라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도 많아진다. 나 역시 이후에 독서 모임을 만들고 나서 초기에는 두 명이 한 적이 있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참여하기로 한 사람들이 갑자기 이탈하여 그렇게 될 땐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이미 약 10년 전의 이야기인지라 모임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을 둘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원래부터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었던지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발제가 미리 준비된 상황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때 느낀 것은 질문의 힘이었는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상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좋은 질문을 만들기만 해도 모임은 자동으로 좋은 대화의 장이 되었다.

  독서 모임을 진행하게 되면서도 좋은 질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좋은 질문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은 질문을 만들면 능동적으로 답변을 끌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독서 모임 자체가 대체로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책 읽는 습관을 기르고 더불어 토론을 통해 가치 있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토론을 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내게 좋은 질문은 첫째 자신의 경험을 끌어낼 수 있는 질문이며, 둘째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상기를 돕는 질문이고, 끝으로 이를 통해 어떤 통찰을 하게 되는 질문이다. 처음부터 답변자가 통찰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질문을 만들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경험이나 생각을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질문을 만드는 원칙이었고 상기를 위해서 독서 모임에 선정도서만을 두고서 질문을 만들기보다는 선정도서의 내용이나 생각에 어울리는 다른 책이나 신문 기사 혹은 여러 분야의 자료를 수집하여 함께 볼 수 있도록 발췌를 하자는 게 두 번째 원칙이었다. 세 번째 원칙은 '진행자의 발언권을 죽이고 쉬운 질문으로 들어가서 점점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으로 나아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였다. 스스로 깨닫는 데에는 누군가 답을 해주기보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좋았다.

  이 모임에서 그는 발제를 서너 개 정도 준비를 했고 대화는 약 두 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다. 나 역시 평소에는 글로만 적어두었던 생각을 타인에게 펼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이때 지적인 토론이 주는 희열감을 느낀 듯한데, 그때에는 이러한 신선한 자극이 내 삶의 방향을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지는 몰랐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그는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고 나 역시 그의 신분을 고려하여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한 까닭도 있지 않았나 싶다. 그는 거의 듣는 처지에 있었고 나는 계속 내 나름의 '사랑'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했었다. 향후 몇 년간 모임을 하면서 지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간혹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이 주도해서 말을 하게 될 때였다.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면 좋은데, 한 사람만 말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이에 압도되어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지 못하게 될 때,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상당했었다. 모임의 진행자는 한 사람이 모임을 주도해 나가는 것을 막고 여러 사람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처음에는 불특정 다수에게 발제를 건네다가도 모임을 하는 중에는 지명하여 질문을 던지거나 쉬운 질문으로 바꾸어 질문하는 요령을 깨우쳐야 한다. 가장 쉬운 질문의 앞서서 질문의 원칙에서도 말한 바가 있듯, 자신의 경험을 통해 책의 내용이나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하튼 이때에는 이런 점을 생각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고 모임도 단둘이서 하는 대화였던지라 그저 편하게 수다를 떨 듯 이야기했다.

  그렇게 독서 모임을 한 번 나가고 나서 한동안 취업 준비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며 모임에 관한 생각을 잊고 지냈다. 물론 그런 모임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대체로 그런 모임을 진행하는 곳이 멀리 있어서 참여 결정을 내리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독서 모임의 기회를 다시 얻게 된 것은 취업에 실패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에 찾아왔다.

  그 시기는 어느 날 문득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 우연히 본 질문 하나가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인생에 열정을 갖고 무언가를 해본 적이 언제입니까?”라는 식의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소개서를 많이 쓰다 보면 단골처럼 나오는 질문 중 하나였는데, 어느 날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서, 문득 이 질문이 떠올라, 내 인생에 가장 진지하게 열정을 가지고 임했던 적이 언제인지 곰곰이 생각했었다. 번뜩 떠오르는 것은 바로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종종 글을 써서 중소 규모 대회에서 상도 타보곤 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작가의 삶이라는 게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그쪽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집안이 어려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경영학과로 돌려 진학을 했기에, 대학 시절 이후 글을 쓰는 것은 대체로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이따금 서평을 작성하는 게 전부였다.

  다시 글을 쓰는 훈련을 하게 된 것은 당시 학교 게시판은 상호 비방이 없는 비교적 상식적인 토론의 장이었는데, 그곳에서 크게는 사회에 관한, 작게는 학생 사회나 자신의 인생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였다. 다양한 글을 쓰고 그 글에 대한 다양한 비평이나 토론의 글이 올라오면서 여러 자료를 찾고 다시 반박하는 글을 쓰는 등의 노력을 자연스럽게 해 왔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교지에 글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어 글을 쓰고 호평을 받게 되었다. 처음으로 공식적인 매체에서 내 글이 인정을 받게 된 것이었다. 더 좋았던 것은 그 글을 쓰고 나서 원고료로 받은 돈이었다. 마치 스무 살 시절 처음으로 막노동을 한 이후에 받았던 그 떨림을 그 돈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실로 신기한 감정이었다. 글을 쓰고 그 글이 다수의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돈까지 받는다는 것은 어떤 감동마저 주었다.

  나의 다른 글에도 이 느낌을 적은 바가 있지만, 그때에는 글을 쓰면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중력의 영향을 무시하듯이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고 오로지 나의 손가락만이 자판과 이어져 있었다. 머릿속 생각이 신경을 타고 손가락으로, 다시 그 손가락은 자판을 두드려 활자화된 화면으로 이어졌다. 마치 샤갈의 그림에서 신랑과 신부가 하늘을 날듯, 그렇게 글을 두드리면 붕 떠오르는 느낌이 이 이외에는 다른 것들은 무가치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고 온종일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행복감을 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내 인생에 가장 열정을 갖고 무언가를 했던 적이! 그때엔 글을 쓰는 것을 실로 즐겼다. 그 글이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도록 쉽고 알아듣게 쓰려고 노력했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으며 오류나 맥락상 매끄럽지 않은 데가 있는지, 끊임없이 고치며 쓰면서도 너무 즐거웠다. 때로는 한두 페이지의 글 때문에 날을 새어 보기도 하고, 단어, 문장 하나를 어떻게 쓰면 더 좋을까 고민하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그렇게 고심을 하여 글을 올리면 많은 이들이 좋아해 주었고 그 점에 나도 행복해하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길을 걸으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마흔이 될 무렵에 작가로서 세계적인 무대에 서서 자신의 인생에 관하여 강연을 하는 나를 상상했다. 그때 실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가 문제였다. 그렇게 해서 꿈을 꾸게 된 것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다음 날부터 취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글쓰기에 전념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것이 필요했고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해서는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에 관련된 서적이 아니라, 고전이나 그에 따른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관련 책들을 계속 찾아봤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혼자서는 이 책을 읽기가 쉽지 않겠다 싶을 때 떠오른 것이 바로 예전에 한 번 참여해봤던 독서 모임이었다. 주변의 모임을 찾아봤지만, 멀거나 진행하는 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불현듯 ‘멀리 있는 독서 모임을 힘들게 찾아가기보다, 내가 읽고 싶은 책, 가치 있다고 여기는 책들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중요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자고 다짐한 이후에 지적 사고를 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기 시작하면서, 독서 모임은 인생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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