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나에게는 그림자가 없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느 날 자고 일어났을 때부터 그림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어느 주말이었을 것이다. 깜깜한 반지하의 방에서는 느끼지 못하다가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밖으로 나왔을 때 이상한 것을 느꼈다. 높은 빌딩도,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도,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신의 그림자를 작게, 때로는 길게 드리우고 있는데 나의 발끝에는 또 다른 내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림자가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아연실색했고 주변에도 혹시 그런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보다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림자가 사라졌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문득 그림자는 오늘 내 곁은 떠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내 곁은 떠나 있던 것을 이제야 발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누가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며 뒤를 돌아보겠는가! 특히나 다 큰 성인은 어릴 때처럼 타인의 그림자를 밟고 노는 행위를 하진 않지 않는가?
문득 어린 시절에 그림자밟기 놀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림자를 밟으면 죽는 거라는 말에 나와 친구는 경쟁하듯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웃어 대던 기억이었다. 서로의 그림자가 밟힐세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던 시절에는 그림자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걸을 때도 아버지의 그림자를 보면 아버지보다 더 큰 아버지를 보는 듯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까지도 친구들과의 그림자밟기 놀이는 계속되었다. 나이를 먹고 첫사랑을 알게 된 때에는 석양에 비친 기다란 그녀와 나의 그림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했다. 석양에 비친 사랑하는 이의 그림자는 그녀의 붉은 얼굴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입술에 키스할 때, 길고 긴 그림자가 나의 그림자와 섞여서 하나가 되는 것은 어떠한 에로티시즘보다도 격렬하고 매혹적이었다. 정말 그 시절 우리의 그림자는 존재의 증명이었고 또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이후, 어느 때부턴가 그림자를 볼 틈이 없어졌다. 우리는 우리의 그림자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더 앞섰고 대학 시절 이후, 사회에 발을 디딜 무렵에는 그림자는 어떠한 의미도 되지 못했다. 마치 공기처럼 존재해도 인식조차 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림자에 생명이 있다면 난 그에게 지독한 권태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지만, 그 감정이 진정된 이후에는 왜인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명이 없는 존재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는 것이 맞는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좀 더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형태가 변형되고 가공되어 나오는 모든 무생물들, 생명을 부여받진 못했지만 저마다의 장소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부수어 인간에게 맞도록 가공해 내는 것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미안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웃음이 나다니……’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림자만 없을 뿐 일상의 패턴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과거와 똑같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동료들과 쉬는 시간에 커피 한잔하고 일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녹초가 되는 것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그림자가 사라진 것에 대해 동료들이 알아차릴 때, 그것에 관한 관심과 질문이 귀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어느 순간 꿈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번듯한 직장에 저축해 놓은 것도 꽤 되었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을 만한 위치에 와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뭐. 그렇게 안 살려면 돈 벌어서 월급쟁이 탈출하는 수밖에 없잖아. 돈 벌어서 나중에 난 복권 방이나 하나 차리려고, 자리만 좋으면 꽤 많이 번다더라!’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 동수는 웃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미래의 꿈이 복권 방 사장이라는 말에 서로 웃어넘기면서 술잔을 주고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도 알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절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아직 누구에게도 그림자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은 이유는 말해도 어떠한 해결책이 없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어쩌면 하루 푹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한숨 자고 나면 그림자가 돌아올까……’
처음에 그림자를 잃어버렸을 때는 놀라움, 다음에는 미안함, 그리고 다시 걱정이 들었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사라진 그림자에 관한 신화는 세계 어느 곳이나 있었다. 어떤 문화에서는 죽은 자를 의미했고 또 여느 문화에서는 마녀와 같이 취급을 해서 죽였다고 했다. 결국, 둘 다 죽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또는 완전한 존재 유일무이한 존재 역시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은 아니니 죽은 자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섬뜩했다.
“이보게 당신, 그대를 붙잡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붙잡고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늘 그 길거리에서 종말이 다가오고 있고 모두 회개하라고 부르짖던 사람이었다. 길을 지나며 마주쳐도 한 번도 날 잡지 않던 사람인데 그날따라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 들어 손을 뿌리치고 갔는데 번뜩하니 생각이 났다. 그날 나를 붙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무언가 내 몸 상태를 알고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그를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그날따라 어디에도 신을 믿으라는 둥, 회개하라는 둥의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순식간에 모두가 사라진 것이다. 순식간이었을까? 아니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인식하지 못했지만 사소한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지나쳐 온 것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느끼기 시작했다.
어떠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어제까지 즐기면서 갔던 호프집이 그다음 날 문을 닫고 다른 가게로 바뀌는 것처럼 흔한 일이었다. 자주 가던 곳이었다면 약간 아쉬울 뿐이었고 그 아쉬움마저 이내 다른 새로운 것들이 들어와 채워주었다. 하루에도 내 주위의 몇십, 몇백의 것들이 사라지고 새롭게 등장했다. 그 변화의 속도가 때로는 너무나도 빠른 탓에 어지러울 정도였다. 어제의 번화가가 오늘은 황량해지기도 하고 오늘까지 즐기면서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내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치 사회는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바뀌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도 쉽게 적응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내가 살아온 시골 동네나 우리 집 뒷동산조차도 변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이미 변화가 두려워 생기를 잃어버린 노인의 모습 같았기에 나는 어떻게든 도시로 나오려고 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변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몰랐다. 사실 괜찮은 것은 둘째치고 그 변화에 반응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다. 변화를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한 나머지 변화에 대해 무뎌졌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회에 아무 쓸모 짝도 없을 거라 생각하던 이들조차 주변에 보이지 않게 되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서글픔마저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정말 내 그림자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라도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한순간 생각했던 나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난 그렇게 그림자의 상실을 깨달으며 며칠간 계속 조바심이 나 있었다. 그림자는 떠났지만, 그것은 내게 마음의 짐을 주고 간 것이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마치 어린 시절에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던 장난감을 잃어버리고 느끼던 기분이었거나 혹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강아지가 어느 날 가출하여 영영 돌아오지 못했던 때 느끼던,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그 기분이었다. 결국, 둘 다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똑같은 장난감을 사주었지만, 그것은 결코 잃어버린 장난감을 대체할 수 없었다. 결국, 새로운 장난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잃어버렸다.
강아지를 잃어버린 이후에는 새로운 동물을 사는 것을 포기했다.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난 뒤 며칠간 고열에 시달렸다. 강아지를 잃어버린 자리에 마음의 짐이 들어와 내게 부작용을 일으킨 것인지 혹은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강아지 이름을 불렀다는 것과 내가 강아지와 관련된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꿈에서 강아지가 나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내가 강아지를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쫓아다녔다. 하지만 내가 잡을라치면 강아지는 어느새 내 앞에서 멀어졌다. 우리 가족은 집 주변 방방곡곡에 사진을 붙였고 사례금을 걸었다. 하지만 꿈에서조차도 다시 강아지를 볼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난 크게 아픈 적도 없었고 감기나 고열은 단 한 번도 없이 건강하게 지금까지 자랐다. 그런데 어제 밤새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고열이 났다. 그리고 꿈에서 어린 시절 잃어버린 강아지가 보였다.
강아지는 뛰지 않았다. 나를 보고 웃거나 짖지도 않았다. 다만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 뿐이었다. 강아지는 내가 자란 만큼이나 거대해져 있었다. 꿈이 늘 그렇듯 나는 한눈에 그 성인 남자만 한 강아지가 어린 시절의 내가 그토록 찾았던 동물임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이 들어 강아지를 껴안아 보고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강아지는 돌연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더 다가가야 할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나는 그에게 달려들었고 다시는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껴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해진 강아지는 내 목을 깨물었다. 검붉은 피가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윽고 다리를 지나 바닥에는 온통 피로 가득했다. 그리고 피는 점점 사람의 형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피의 얼룩은 점점 더 검게 변해 그림자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피를 쏟아가며 죽어가고 있는데 그 피로 새로운 그림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이 풀리자 그저 목이 물려 있는 상태에서 그림자를 응시했다. 꿈이어서 그랬을까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 그림자는 나의 형태를 점차 완전히 갖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강아지는 물고 있던 나를 놓았고 바닥에 누운 상태로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부디 나를 찾아줘.”
그림자가 말했다. 그리고 거대하진 강아지를 타고 하늘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흐릿해진 의식으로 그들을 따라 기어갔지만 하늘의 계단은 사라져 갔다. 잠에서 깨어나자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일어나려고 했을 때 조금은 현기증이 있었지만 이내 고열이 가라앉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이 다 나았음을 느끼자마자 시장기를 느꼈다. 시간을 보니 12시간 이상 누워 있었다. 샤워하면서도 간단하게 요리를 하면서도 그림자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부디 나를 찾아줘.’
꿈에서 등장한 그림자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림자는 간절한 목소리로 꼭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어려 있었다. 그 목소리에는 자신이 숨고 싶어 숨어 버린 것이 아닌 간절함이 있었다. 문득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려 지옥까지 갔다던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결국, 고개를 돌린 탓에 비극으로 끝나 버린 오르페우스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를 찾아야 할 것인가? 그림자를 찾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그림자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다면 굳이 구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할 만큼 나는 그림자가 간절한가?’
그러나 그런 생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이었다. 어떠한 정보도 없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혹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아주세요!’라고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강아지를 찾을 때처럼 사례금을 걸을 수도 없었다. 무작정 물어봤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혹은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잡혀가서 실험 대상으로 쓰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찾는 일은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나의 그림자를 찾는 일이니 누구에게도 맡길 수도 없었다. 은밀하게 나와 같은 일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혹은 주술적으로 찾아낼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시급했다. 초자연적 현상이었기에 과학적 방법은 소용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림자가 없어진다는 것은 분명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분명 현대의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대개는 거짓말이거나 환상 일부라고 하지만 그중에는 정말 신기한 일들이 간혹 일어난다. 증명하려고 하지만 증명할 수 없는 일. 나도 분명 그런 것이었다. 증명할 수 없는 문제. 언젠가는 과학으로도 풀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과학이 나의 그림자 상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없었다.
‘이보게 당신, 그대를 붙잡아……’
그 사람이다. 어떻게든 그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분명 그자는 무엇인가 알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들은 우연의 일치라는 말을 빌려 동시적 사건들을 설명하지만 사실 그 일들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의 그 말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로부터 무언가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게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세상에 익숙해진 나는 그러한 주위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를 찾아야만 했다. 그는 나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문제를 알고 있었다면 분명 해결할 방법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실마리가 열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