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야고보. 안드레아 만테냐.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 현재는 소실됨.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다음날 오후에 이르러서야 전날을 회상하며 기록을 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과 바로 지금의 생각을 결합하는 즐거운 방법이기는 하나 때로는 바로 전날임에도 골똘히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 또한, 어제의 경험 당시 바로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이 바래지기도 한다. 더구나 오늘처럼 오후의 나른함이 온몸을 휘감아, 샷을 추가한 커피로써도 어쩔 수 없을 때면 사소한 행동이나 경험은 의미를 담지 못하고 표면만을 그저 훑는 일이 될 뿐이다. 한 줄의 문장이 어떤 의미조차 담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은 샘이 되지 못하고 단지 어디 화장실에나 존재하는 변기가 될 뿐이었다. 삶의 기록이 그저 그런 변기가 되느냐, 삶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어제의 수많은 경험에 의미를 담을 수 있느냐에 따라 달려 있었다. 특별하게 느꼈던 경험에도 그 의미를 담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면 그저 흘러가 버리고 더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나이가 들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그렇게 느끼는 일조차 드물며, 그러한 느낌마저도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루를 긴 맥락 속에서 차근차근 더듬어가지 않으면, 머리가 새하얘져서 '어? 내가 어제 무엇을 했더라?'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일주일 가운데 오로지 주말의 일부 시간만이 특별한 시간이 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주말 동안 했던 여행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는 것만이 특별한 것이 되고 하루의 일상을 보내거나 일을 하는 것 따위는 그 연속된 시간을 통으로 지워버려도 상관없는 기억에서 편집할 영역이 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은 잠이 든 시간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따금 아침 7시부터 글을 쓰는 까닭은 전날을 회상하는 데 조금 더 수월할까 싶어서이다. 물론 피곤함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라 충분한 생각을 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지만, 전날의 현상을 오후보다는 명확히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후에는 잠깐의 춘곤증을 커피로 달래고 나면 전날의 경험에 대한 생각은 비교적 충분히 할 수 있으나 현상이 가물가물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침의 기억부터 차근차근 헤집고 그에 대한 생각을 의미를 담아 꽤 길게 기술하다 보면 정작 오후나 저녁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오히려 적지 못하는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하루의 중요한 일은 그 자체는 사소한 것이었음에도 깊게 생각한 일이 되고 꽤 특별하게 겪은 일은 그 느낌이나 생각을 적지 못해 그저 그런 일이 되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는 사소한 일이 큰 의미가 되고 특별한 일이 작은 의미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어쩌면 평범한 내 하루를 비범하게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내 삶이 특별한가?'라고 누군가 물었다면, 과거의 나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삶인데 특별할 게 무엇이 있느냐고 했을 것이다. 특별이라는 것의 의미를 어제와 다른 어떤 독특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특별하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제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고 그 사소한 현상으로부터 과거로 시간여행마저 떠나는 데 그걸 특별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특별하다 하겠는가? 특별한 경험 속에서 특별한 의미만을 만들어야 특별한 것인가? 일상의 경험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도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어제와 다른 나의 아침은 당신의 낮이나 밤보다도 아름답다.
그 아침을 다시 상윤이와 시작하며 그는 전공을 위한 책을 보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해결해야 할 하루의 일을 빨리 시작하여 빨리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날의 피곤함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내 눈을 감고야 말았다. 이렇게 잠드는 것보다 방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는 게 더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피곤하더라도 7시까지 등교하자!'라는 자신과의 약속만큼은 깨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피곤해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다짐만큼은 깨뜨리지 말자, 한번 깨지기 시작하면 두 번은 더 쉬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득 어린 시절 배가 아파도 몸에서 열이 나도 학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융통성이라곤 없었던 애늙은이였던 것 같다. 이런 탓에 선생님들로부터 이쁨도 받았으나 동시에 선생님들로부터 융통성을 좀 더 기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때 난 원칙을 지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으냐라며 반문했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한 번 있는데, 그것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외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에 돌아가셨다. 그때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더는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로서는 학교를 빠지지 않고 다니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에는 주말에도 수업이 있어서 할머니의 병문안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학생은 그래야만 하는 거로 생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파도 학생은 학교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만약 내가 외국으로 공부하러 갔을 때 아버지가 아프거나 돌아가셔도 그곳에서 공부를 마치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토록 나를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였는데도 나는 장례식장에 가는 것을 망설였다. 심지어 아버지, 어머니마저 원망스럽게도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저 나로서는 수업을 빠질 수 없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삼일장을 치른 마지막 날 아침, 아버지는 전화로 오늘 할머니를 땅에 묻는다고 하셨다. 그때마저도 내 의사를 존중하듯 쓴소리 한번 안 하고 아버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공중전화를 끊고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다가 교실로 발길을 돌렸다. 교실까지 돌아오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뭔가 내 안에서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교실에 들어와 책상에 앉을 무렵에서야, 나는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내 새끼."라며 그토록 안타까워하시던 할머니의 푸근한 몸이 떠올랐다. 항암 치료로 온몸이 말라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으로 누워 나를 힘들게 올려다보시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불현듯 멍한 상태가 걷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달려갔다. '할머니, 할머니. 미안해. 왜 이제야 할머니한테 가서…. 나를 그토록 사랑해줬는데 내가 왜 이랬을까? 왜 할머니는 내가 이렇게 해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할머니, 미안해. 내가 미안해.'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날 이 공간에서 절대 보내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를 보내주지 않아도 억지로 나갈 각오를 하며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저, 선생님…."
교무실 한쪽에서 업무를 보고 계신 그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보러 가야 한다고 입을 여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함께 터져 나왔다. 할머니를 보러 가야 한다고,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보러 가야 한다고 울먹이면서 간신히 그에게 말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빨리 얼른 보러 가라고 내게 말했다. 왜 그가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그녀와 함께했던 수많은 날의 기억만 떠올랐고 나는 그저 미안하다며,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너무 늦게 찾아와 그저 할머니의 초상화만을 볼 수밖에 없던 내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아직도 죄책감으로밖에 남지 않은 그날의 기억이다. 나의 융통성 없음이 만든 가장 후회스러운 기억이며 가장 울고 싶은 기억이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원칙은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 배운 것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비교적 잘 구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원칙주의를 강조하기보다는 중요하며 의미가 되는 일을 강조하게 되었다랄까? 원칙이 중요한 까닭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며 원칙에는 반하나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의 의미 또는 명분이 무엇인지를 고려하게 되었다. 내게 이 아침의 의미는 삶을 충실히 만들어주는 도구이며, 지키는 것이 언제나 그렇지 않은 것보다 좋은 결과를 주는 일이었다. 또한, 마음의 평온을 줄 수 있었다. 아침의 여유와 할 일과 사람을 통해서. 그래서 피곤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것이 좋다.
오전 영어 모임마저 끝나고 쉴 틈 없이 바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이틀에 한 번, 30분 미만으로 하는 운동이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추후 생각해볼 일이었으나 지금의 운동 방법이 좋아서 다른 운동 프로그램을 짠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인터벌 훈련으로 짤 것 같았다. 문득 이것을 지현이 누나나 다른 여자에게 가르쳐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희찬 씨처럼 의지를 갖고 따라만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프로그램일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짧은 시간에 끝내는 운동이라 시간 할애 측면에서 부담이 없고 한번 할 때 폭발적으로 체력을 사용하는 터라 운동을 제대로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까지 합쳐 고작 30분 정도 하는 운동이기에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터였다. 누나에게 한번 제안해볼까 싶었지만, 지방이 많은 상태에서는 무리가 갈 수도 있을 터라 누나가 살을 빼고 충분히 체력을 기르면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누나는 요즘 피티를 받는다고 했는데, 잘하고 있을까? 하는 김에 독하게 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느 경지에 이르는 경험을 하면 다시 살이 찌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건, 전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 번의 경험은 '할 수 있을까?'에서 '할 수 있다.'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변화였다. 이는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서 확신을 주는 것이며 자기 확신은 어떤 일을 탁월하게까지 만들어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할 때 한 번은 독하게 한계까지 최선을 다해 끌어올려 봐야 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다른 분야를 도전할 때도 작용한다. 여기에서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적용된다.
오후에는 상윤이와 함께 월천 라운지로 갔다. 그제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서도 글이 수박 겉핥기 같은 느낌이 들었고 더불어 진심이 담기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철학적 생각이랍시고 쓴 글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피곤한 탓인지 깊게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사변적이며 장황한 말들만 늘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스스로 화가 났다. 그저 지적인 척하는 글처럼 느껴졌다. 그런 글을 쓰면서, 만테냐의 작품 가운데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야고보라는 그림이 있는데, 문득 그 그림이 떠올랐다. 야고보가 그림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외곽에 있으며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그림이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거라곤 정교하게 그려진 개선문과도 같은 거대한 문의 형상이다. 보면서 그 정교함에 감탄할만한 그림이지만 그 그림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저 그 건물에 매료되는 느낌이 든다. 영화로 말하자면,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초기 장면이나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2’라는 게임에서 거대한 건물이 나오고 그 아래로 사람들의 전경을 보여주듯, 도입부에서 거대한 배경이 나오고 카메라가 아래로 이동하고 다음 컷으로 인물을 보여줄 법한 그림이었다. 즉, 좋게 이야기하자면 이야기보다 배경에 집중하게 되는 그림이며, 영화가 아니므로 건물에 담긴 정교함이나 그에 따른 지식에 관심이 갈법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나쁘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그림 실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듯한 그림이기도 했다.
인물을 중심에 두기보다 외곽에 비치한 것은 파격이라고 말할 수 있고 로마 시대의 권력을 그 거대하며 정교한 건물의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다른 그림처럼 정형화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현대적 감각마저 느낄 수 있지만, 야고보의 이야기라는 서사적 측면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그 미장센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은 의심은 피할 수 없다. 혹은 시대가 종교 시대여서 그럴 수는 있겠으나, 자기처럼 야고보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내 글이 마치 그의 그림의 나쁜 측면처럼 지식을 자랑하는 것 같이 느꼈기에 짜증스러움이 난 것이다. 더욱이 저 만테냐의 그림은 비판을 할 수 있을지언정 그림 자체의 정교함이나 예술성에 비난하기는 어렵지만, 내 생각은 엉성하기 짝이 없어 비판뿐 아니라 비난마저 받을 생각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충분히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은 찜찜함이 들었다. 그럼에도,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인 것 같았다. 궤변일지라도 생각을 더 날카롭게 깎기 위한 초벌 작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히 만테냐도 그 그림을 그릴 때 밑 작업을 했을 것이다. '이 역시 내가 앞으로 그릴 커다란 생각의 밑 작업이 되리라.'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문득 과거 독서 모임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누군가 말하면 자유롭게 토론 모임이 되던 어느 때가 있었다. 때로는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토론인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적 희열과 더불어 서로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게 있다면 지금 생각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과거처럼 열정적으로 모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내 시간을 그만큼 충분히 할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이제는 쉽게 토론 모임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또한,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하루 시간의 1/4 혹 그 이상을 할애하는 글쓰기는 다른 일들은 모두 밀어 두고 오로지 이것에 몰입하게 한다. 이처럼 글쓰기를 대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동시에 무언가를 시도하기를 어렵게도 했다. 나는 지금은 글쓰기와 생각하기에 온 힘을 쏟고 싶으며 당분간은 계속 그렇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