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거리의 신비와 우수(The Mystery and Melancholy of a Street, 1914),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꿈을 꾸었다. 학교까지 부리나케 뛰었음에도 7시 1분에 도착하여 아쉬워하는 꿈이었다. 잠을 깨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5시 50분이었다. 다시 잠들기 전에 알람을 재차 확인했다. 이게 마치 앞으로 벌어질 예언처럼 느껴져 불안했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오늘이 아니더라도 한 번이라도 일어나면 꿈의 예언이 실행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의 불안을 반영하는 이런 불안한 꿈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단지 추상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구체화한 이미지로서의 꿈은 훨씬 강한 자극을 주며 실제로 벌어질 위험을 대비하도록 한다. 어쩌면 지금껏 우물쭈물하며 살아온 것은 그렇게 강력한 삶의 동기가 될 꿈을 꾸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여태까지 이런 삶을 살게 된다는 비참한 이야기를 이미지화된 꿈으로 보았다면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어릴 때도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자기 예언을 하기는 했으나 그런 파국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거나 대비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가시밭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할 뿐이었다.
미래의 불행을 암시하는 꿈은 미래에 도움이 된다. 사회학자들이 내놓는 미래 전망 리포트가 잘 들어맞지 않는 까닭이 미래를 예언하는 것마저도 현재에 영향을 끼쳐 미래를 바꾸기 때문이듯, 불안한 미래를 전망하는 것조차 자신의 현재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긍정적인 꿈은 자신의 미래에 확신을 주지만 부정적인 꿈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도록 해준다.
여하튼 꿈에서처럼 단 1분 때문에 늦은 것을 아쉬워하는 일은 지금처럼 아침 7시가 다 되어 나가는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면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라 상황을 모면하려고 달려가는 것 말고 차라리 일찍 나가는 등의 근본적인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로선 그럴 의지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만큼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지금 상황에 일찍 자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터디룸에 도착 후 홀로 있는 방 안에서 전자책을 꺼냈다. 졸음이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계속 멍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들이켜도 소용없었다. 그저 찌뿌드드한 느낌이었다. 잠깐 산책 겸 밖으로 나가 1,500원짜리 베이컨 토스트를 샀다. 15년 전쯤도 분명히 저 가격이었다. 그때보다 최저 시급은 거의 2.5배 정도 오른 거 같은데, 토스트 가격은 똑같았고 기본 토스트만 200원 올랐다. 토스트를 먹으면서 대학에 처음 들어와 이것을 맛본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은 잘 먹지 않지만, 그때는 아침에 학교에 나오면 출출한 마음에 친구들과 곧잘 이곳에 와서 토스트를 시켜 먹었다. 길거리에 파는 군것질거리들도 많았는데, 버스 정류장 앞쪽 길로 해서 캠퍼스와 길을 나누는 담이 있었고 그 담 쪽으로 포장마차나 길거리 음식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학교의 라면이 300원이었고 네모난 식판에 팔던 백반이 1,200원이던 시절이다. 물론 그때도 시중에 파는 라면의 가격은 지금과 별 차이 없었지만, 우리 학교에서 파는 라면은 가격이 싸서 전국적으로도 그 명성(?)을 날렸다.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도 다들 이곳을 떠났고 그 많던 포장마차와 먹을거리들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저 자리에서는 지금까지도 토스트를 팔고 있었다. 학교 곳곳의 벚꽃이 만발하고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사다가 마시면서 놀던 시절, 성인식이라고 캠퍼스의 호수에 뛰어들어 놀던 시절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남아 있는 것도 있고 사라진 것도 있다. 남아 있는 것이든 사라진 것이든 그 자리 자리마다 십 년도 더 흐르면서 존재하던 여러 기억이 중첩되어 그곳에 자리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거기에는 다른 기억들이 층을 이루어 위에 덮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꿈에서도 등장하겠지. 이 공간의 내 기억의 궁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일 것이다. 눈을 감으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대체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이며 시기에 따라서도 무엇이 존재했고 또 사라졌는지를 알아챌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조용하고 변화가 없던 내 고향 마을이 그랬고, 지금은 바로 이곳이 내 기억과 추억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차이가 있다면 고향마을은 변화가 없는 조용한 마을이지만, 이곳은 큰 구조 속에서 계속 바뀌어 간다. 건물과 그 간판도, 그 안의 사람도 바뀌어 간다. 변화는 역동적이며 물질적이라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나로서는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이 공간과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의 사고가 진보하고 있는가? 서글프게도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