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아침|몰입의 희열과 공허감|행운과 노력

나의 일상 여행기. (63)

by Chris
그림: 도시 위에서(1914~1918), 마르크 샤갈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더위가 방문을 넘어 집 안에까지 이르는 계절이 왔다. 몇 년간 에어컨이 있는 방에서 살다가 선풍기조차 없는 방에서 살아보니 앞으로 더위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아무래도 선풍기라도 당장 주문해야겠다. 생각해보니, 매번 아침에 알람도 울리기 전에 깨는 까닭이 더위 탓은 아닌가 싶었다. 또한, 매번 여름보다 겨울이 더 싫었는데, 어쩌면 그 까닭이 에어컨 있는 집에서 근 7년가량 관리자로 지내면서 전기세 걱정 없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여름은 최악의 더위가 올 수도 있다고 하던데, 이로써 싫어하는 계절이 여름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주말의 아침은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날이었다. 이날도 아침부터 일어나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일주일 동안 충실히 아침을 보낸 보상으로 조금 늦장을 부리는 게 싫지 않았다. 주말은 주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내게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많은 이들은 평일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주말에는 대개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서둘러 본 기억이 언제인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먼저 주말에 약속을 잡자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좀처럼 없었다. 그 때문에 주간과 주말이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기타 복습을 위한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가는 게 전부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매달 혼자라도 궁궐이며 미술관이며 돌아다녔다. 작품을 보면서 혼자 생각하는 것이 좋았고 똑같은 건물을 보면서도 전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어느 시절부터는 그것조차 잘하지 않는다. 점점 게을러지고 있는 것인지, 책 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 건지, 혹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일는지도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 년 동안 주말에 진행했던 독서 모임의 탓이 큰 것 같았다. 2주에 한 번 주말마다 진행하는 독서 모임을 하고부터는 모임을 위해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늘었으며 이를 위해 주말을 반납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충실한 모임이 되고자 수많은 책에서 발췌하고 질문을 만드느라 토요일 전체를 쓰고도 모자라 날을 새곤 했었다. 그렇게 매번 녹초가 된 상태에서 주말을 보냈기 때문에 어디를 나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가 보상을 해주는 일도 아니었고 스트레스도 꽤 있었지만, 책과 책 사이를 항해하는 일은 혼자서 미술관을 가는 것보다 약속을 정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 이상으로 재미가 있었다. 몰입에 따른 지적인 희열감과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몰입’의 저자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은 행복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스트레스나 고통을 준다고도 하는데, 딱 그거였다.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서 이렇게 하나 싶다가도 그것 하나를 몰입해서 끝내고 나면 그 성취감이 이루 말할 것 없이 좋았다. 또한, 그 자료를 토대로 모임을 잘 진행하여 참여자들이 만족감을 안고 갈 때 느끼는 희열감 역시 행복이라면 행복이었다.

그런 풍요로운 독서 모임을 동아리 쪽으로 넘기고 한동안 주말에 공허감마저 느낀 까닭은 그 때문일 것이다. 뭔가 열정적으로 하고 난 뒤 더는 할 일이 없을 때 느끼는 공허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할 일이 그것밖에 없듯 살다가 누군가에게 넘겨줬을 때에는 이미 주말을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게 습관이 된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약속을 만들거나 홀로 미술관이나 고궁을 간다는 게 어색해진 것은 아닐까? 혹은 그저 게으름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주말을 생각하면, 나를 찾아주는 이들, 내가 하지 않아도 약속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는 점이 감사하다. 이들 덕분에 주말이 풍요로워지고 사람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며 나 이외에도 많은 친구가 있는 이들에게 주말마다 약속을 잡아주길 바랄 수 없으며, 나 역시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난 왜 다시 전처럼 독서 모임을 하지 않는가? 심지어 그것을 이따금 바라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그전처럼 하기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아서이다. 수많은 열정을 가지고 무료봉사를 하듯 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며, 다른 많은 일로 하루를 채우는 지금으로서는 시간을 할애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건 엄청나게 기쁜 몰입감과 함께 찾아온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사실 시간이야 낼 수 있고 개인의 지적 성장을 생각하면 무료봉사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대충하는 것은 싫은 내 성격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분명히 앞으로 할 모임에도 적용될 터였다. 이상이 바로 내가 모임을 미뤄두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주말은 외로우며 외로움은 조금이라도 주말의 아침을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아침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정오쯤에 학교 라운지로 가서 책을 읽다가 1시가 조금 안 되었을 때 상윤이와 점심을 함께했다. 전날 저녁을 그가 샀기에 이번에는 내가 사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일요일에 있을 시험감독에 대한 급여가 어제저녁에 나와서 살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부대찌개를 먹고 다시 라운지로 갔다. 충분히 잠을 잤다고 생각했지만, 졸음이 가시지를 않았다. 커피를 연거푸 2잔이나 마셨지만, 머리가 멍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가루 커피 말고 드립 커피에 에스프레소를 섞은 강력한 레드아이가 당겼다. 그 커피를 마시면 이따금 머리가 '핑'하는 느낌과 동시에 얹혔던 속의 무언가가 내려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 느낌을 한동안 글을 쓸 따 자판 위에 둔 손가락만을 두고 온몸이 붕 뜨는 느낌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과거에 나만을 글을 쓰기로 다짐했을 때에 이런 기분이 한몫했었고 이번에도 그 느낌이 발단이 되어 다시 글을 쓴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나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감이었다. 타인에 대한 우월감이 아니라 그저 환희와 기쁨이었다. 특히 붕 뜨는 기분은 다시금 느껴보고 싶은 기분이며 그것을 맛보려고 어쩌면 계속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며 간질 상태에서의 도스토옙스키적 환희였다. 그 느낌을 위해 내 모든 것을 걸고 싶을 만한 그런 기분이었다. 여하튼 멍한 졸음의 상태로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최악이었다.




저녁이 되고 길 위에 올라서서 예전에 공부했던 영어 패턴을 다시 복습했다. 가물거리는 것들도 한번 쭉 읽어보면, 무리 없이 다시 입으로 말할 수 있었다. '올해는 단연코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리라.' 이를 위해서는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지금의 나를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 구체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수많은 재능은 어릴 때 융통성 없이 꾸준히 하던 노력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처음 들었던 것인지, 교과서나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초등학교 어느 시절에 그 말에 한껏 고무되어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마 공부를 조금 하는 것 빼고는 그다지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뭔가를 이뤄낸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나도 그처럼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생각들은 점점 흐려지고 또한 의심하기도 하여 뭐하나 탁월하게 성취한 것은 없으나, 그나마 수많은 장점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더불어 어쩌면 이것이 아마도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내 마음에 심어준 진짜 이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따금 나는 내가 운이 있는 사람일까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험이나 평가에서 행운이나 요행이 있었던 적은 그다지 없었다. 때로는 그게 정말 아쉬웠던 적도 있었다. ‘저 친구는 저렇게 쉽게 얻는 데 나는 노력을 해야 간신히 얻을 수 있구나!’ 그러나 지금은 내게 그런 행운을 주지 않은 게 행운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바로 행운이 없었기에 노력하여 얻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세상을 사랑하라. 그게 비록 당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노력으로 넘은 담 위에 더 큰 담이 있을지라도….’ 누군가가 나를 두고 말할 때, 특정한 재능을 가진 인간이라는 말보다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말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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