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려면|간직할 만한 추억을 위하여.

나의 일상 여행기. (64)

by Chris
그림: 강희안(姜希顔 1419-1464)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오늘은 시험 감독이 있는 날이다. 담당 선생님께서 고맙게도 집 근처 학교로 배정을 해주셨고 그 덕에 다른 날보다 조금 더 게으름을 피웠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7시에는 일어나 씻고 준비를 했야만 했다. 이 일을 한 것도 어느덧 7~8년 정도가 되었다. 내 주변의 사람도, 사물도 그리고 일들도 이렇듯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특히 아기였던 친구의 애들이 커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는 것을 보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주변에는 바뀌는 게 많았으나 자신과 더불어 이 시험 감독에 따른 아르바이트 비용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 일 없는 일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오후 1시 안에 끝나는 일이고 최저 시급보다도 높은 급여이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또한, 이 일의 좋은 점은 수험생들이 교실에서 시험을 볼 때 조용한 복도에 남아서 대기하는 일이라 어렵지 않았으며, 조용히만 하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에 나로선 최저 시급으로라도 할 법한 일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복도 중앙에 앉아 조용히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이런 일이 내게 많이 주어졌으면 싶었다. '경비를 할까? 아니면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까?'라고 생각을 한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 때문이었다. 돈을 많이 받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자기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장정일의 ‘독서일기’였던가? 그 책에서 그가 어릴 적에 공무원을 하고 싶어 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공무원은 비교적 정시 퇴근에 안정적이라 나머지 시간에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작가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성공해서 공무원은 그 이후로 생각도 안 했겠지만, 나로서도 지금에서 생각하면 '어릴 적에 그렇게 해야 했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지금의 삶 자체가 후회스럽지는 않다. 비록 가진 것은 없고 간신히 밥 먹고 커피 한잔 먹을 수 있는 수입밖에는 없지만, 일에 따른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책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용은 이런 나더러 자기 합리화라고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인간은 자기를 합리화를 하며 살아간다. 나쁘게 말하면 지금 상황에 대한 합리화이겠지만, 좋게 말하면 안분지족적 삶이다. 이 삶의 좋은 점은 우선 다른 일에 스트레스받을 게 별로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내 시간을 팔 필요도 별로 없고 거의 모든 시간을 나를 위해 산다. 나를 위해 산다고 해서 빈둥거리거나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삶의 의미가 될 만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지금 하는 일들을 규칙적으로 하고자 시간을 적절히 분배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나더러 직장인보다 더 바쁜 것 같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다. 돈을 받지 않는 것뿐이며, 약속이 있을 때 남들보다는 수월하게 일정을 조정할 수는 있지만, 규칙적으로 하는 것들이 내 하루를 채워나감에 따라 내 삶은 의미가 있는 일들로 가득 채워가기 때문에 바쁘다면 제법 바쁘게 산다. 물론, 이 나이에 이런다는 것은 나로서도 이따금 ‘나의 게으름을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부모 역시 늙어가고 나 역시 늙을 텐데, 이렇게 계속 살다가 앞날의 문제들을 대비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싶은 것도 있었고 여자가 없는 채로 사는 것도 문제였다. 돈이 있어야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더군다나 내 나이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용은 나더러 '네가 여자를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안 만나는 거야.'라고 하나, 과연 그럴까? 내가 여자를 안 만난 이유는 크게 관심이 없던 게 첫 번째지만, 금전적인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지난번 글에 적기도 했지만, 여자를 만나면 책임감이 생기고 그 책임감이 돈을 벌 동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까닭은 누구를 부양해야 할 의무도 돈이 나갈 일도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 돈을 벌어야만 할 동기가 생기는 셈이니, 분명 돈을 벌려고 노력할 것이었다.

'어쩌면 일하는 게 두려운 것은 아닐까?' 간혹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그런 생각도 든다. 일을 오랫동안 하지 않고 지금의 일상이 익숙해짐에 따라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일을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거기에는 아마 히키코모리적인 생각도 있을 것이다.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점점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집에서 그저 게임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그 히키코모리의 심경에는 미래와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 역시 어쩌면 처음에는 꿈을 안고 시작을 했겠지만, 점차 생각하기를 멈추고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싶다.



꿈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돈은 있어야 한다. 많은 돈을 필요치 않더라도 돈을 벌어야만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이러한 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아쿠타카와 수상작 중에는 '편의점 인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무라타 사카와는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녀의 이러한 삶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기도 했으나 글을 쓰는 데 소중한 재료가 되기도 했다.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글을 써야만 하는 나로서도 요즈음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관심이 가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요는, 돈을 벌고 글을 쓰기 위함이었으며, 경험상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마냥 편하기만 한 것보다는 불편한 자극들이 필요하다랄까? 또한, 삶의 폭넓은 경험이 글을 쓰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이야기의 소재로서 자신의 경험만큼 더할 나위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요즈음 절실히 느낀다. 하루하루 삶의 생각들을 적어나가면서 구체적인 경험과 추상적 생각들이 만나 한 편의 글이 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나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이 과정들이 행복하기만 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어쩌면 나에게 이러한 경험의 자극들을 제공하지 않을까? 또한, 어떤 소설의 원동력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돈을 버는 게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경험과 생각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게 목적이라면 무라타 사야카처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것은 그 양쪽을 모두 가질 기회일 수도 있었다.
어떤 소설이 꼭 좋은 소설이라고 꼭 집어 말하기에는 어려우나, 어떤 재료와 어떤 레시피를 쓰든 먹어보면 맛있고 없고를 판단할 수 있듯이 소설도 그러하다. 잘 쓰인 글은 글에서 향이 나고 읽을 맛이 있다. 글의 맛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글에서도 혹은 자신의 스타일을 살린 글에서도 날 수 있으나 음식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요리사가 더 높게 쳐주듯, 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글이 더 높은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음식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한 많은 경험과 숙련이 필요하듯, 좋은 소설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와 관련된 경험을 하거나 숙련이 필요하다. 삶을 다루는 소설은 삶의 경험이 좋은 재료가 된다. 한 인간이 모든 경험을 할 수 없으니 타인의 경험을 받아 적는 것도 좋은 재료이겠지만, 자신의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설의 재료가 된다. 그러한 구체적인 재료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조리하고 간을 맞추고 알맞게 장식을 더하면 좋은 소설이 된다. 수많은 해보지 못한 아르바이트들은 바로 그러한 소설의 경험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경험은 묘사에 있어서 구체성을 제공한다. 구체성은 소설을 생기 있고 정감이 넘치게 한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가 그 소설 안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구체성은 현실성을 제공하고 소설 안에서 이야기와 잘 조합하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지금의 이 7, 8년 이상 한 시험 감독 아르바이트가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과 같이 작품의 소재로서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 내가 이 아르바이트로부터 찾아야 할 의미인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1시가 되자 현주와 현주 동생, 그리고 태우를 오랜만에 만나 마라탕 집으로 갔다. 처음 먹어보는 마라탕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골라 먹는 게 귀찮아 태우더러 알아서 골라 달라고 하고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일단 뷔페식으로 골라서 계산하는 게 참신하기는 했으나 그리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조리하는 게 아니라 골라서 계산만 하면, 주방에서 알아서 조리해주는 식이었다.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이를 물어보니 현주도 어느덧 29살이었다. 이 친구를 21살 즈음에 알았으니 시험 감독이나 매한가지로 8년, 아니 그 이상을 만난 것이다. 나이가 들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여기서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우스갯소리로 요즘에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끼는 게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너희들, 또 하나는 세월의 주름, 그리고 마지막은 머리카락이라고 했다. 요즈음 흰머리도 흰머리지만 머리가 빠지는 양이 부쩍 늘었다. 변해가는 것이 당연함에도 전에 없는 씁쓸함이 느껴지는 까닭은 그 전보다 이러한 것들이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교류하던 이들이 눈에 띄게 이곳을 떠나고, 눈에 띄게 친구의 자녀들이 성장하고, 눈에 띄게 흰머리가 늘었고 주름이 생겨감에 따라 느끼는 서러움이 있었다. 이러한 서러움은 의식하지 않고 있던 세월과 나이를 더욱 눈에 띄게 했다. 내가 보내려 한 것도 아닌데, 이것들은 나보다 더 빨리 떠나버리고 있었다. 소중한 것들도 떠나갔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도 그렇게 되고 있었다.

정신을 잃는 것 혹은 치매를 앓는 것은 아마 어쩌면 그렇게 소중한 것들이 다 자기 곁을 떠나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떠나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 자신을 구성하는 기억을 모두 떠나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단계인,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는 모든 것을 떠나보낸 마지막 단계이며 육신보다 먼저, 영혼 혹은 정신을 어디론가 떠나보낸 상태이다. 거기에는 영혼으로부터 비롯하는 슬픔의 감정마저 없다. 영혼과 함께 남아 있는 감정마저 떠나보낸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은 변했어도 옛날에 함께 했던 많은 기억은 아직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기억의 소중한 부분에서 끄집어 올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억마저 떠나보내지 않으려면 이처럼 상기(想起)를 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하는 까닭은 그 사람을 만나는 데에 있다가 보다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 하여, 붙잡아두려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한 기억이 의미를 담아 숙성할 때, 소중한 추억이 될 터였다.

현주는 예전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쉬다가 요즘에는 요가 강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수업을 듣는 줄만 알았는데, 강사까지 한다니 대견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추진력이 부럽기도 했다. 나 자신은 수많은 실력을 키우면서 이게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법한 실력일까 하는 생각만 하고 더는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본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더욱 누군가를 가르쳐 돈을 번다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물론 영어는 참가비를 받는 이상으로 충실히 가르치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언제나 자신은 운영자일 뿐이지 선생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까닭은 모임을 진행하는 목적이 남의 실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나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실력 향상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운동도, 영어도 그렇게 실력을 발전시켜왔다. 물론 모임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 매일 꽤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으나,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다는 게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내 실력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해야 하며, 그 가치 역시 자기 자신이 정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돈을 제대로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가격 설정이 아무래도 어려웠다. 그것을 '누군가가 대신해주겠지, 혹은 알아주겠지….' 생각을 해도 그건 자기 자신이 실력에 따른 비용을 책정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가치가 어떻든 싸게 하는 게 참여자에게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내 가치를 높여서 불러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단언컨대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실력은 돈으로 환산할 때, 지금의 가치보다 훨씬 높다. 더불어 참여자들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그들이 알아주고 알아서 웃돈을 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결국, 이는 내가 풀어야 할 문제이다.



밥을 다 먹을 때 즈음, 정민이가 동아리 회의가 끝났다고 하길래 커피숍으로 오라고 한 뒤, 우리도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어떻게 사는지, 태우 딸은 잘 크는지, 근황은 어떤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아리에서 나눴다는 회의도 잠시 들었는데, 이미 내 손을 떠난 시점이고 이번 학기에는 어떤 것도 도와준 게 없어서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 친구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토양은 '가치 있는 생각의 공유'라는 신조 아래에서 독서를 기반으로 한 모임의 기쁨과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단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친목이 아니라, 동아리의 목적에 들어맞으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모임, 그 가치와 가치를 구체화한 모임의 전통을 그다음에 올 친구들에게까지 알려 줄 수 있는 모임으로 만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꼰대처럼 누구를 가르치고 이렇게 강요하기보다 여러 가치 있는 모임을 통해 어떤 향기가 그들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바랐다. 주어진 현실, 과거의 선배들이 만들어 두었던 토대 위에서 그대로 안주하기보다는 계속 무언가를 시도하고 노력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어려운 일임은 물론 안다. 더군다나 학과 공부에 시달리다 보면 그저 쉬고 싶겠지. 그러나 고생하며 일궈놓은 동아리를 그저 쉼터로만 활용하는 것은 적어도 나와 내 다음 친구들이 추구했던 가치관에는 절대 맞지 않았다. 과거의 프로그램을 없애기보다 어떻게든 가꾸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려는 노력이 전통을 만들고 가치를 만든다. 혹 전통이 없는 토대에서 무언가 새롭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조차 없으면 지금은 편할지 모르나, 그다음은 없다.

이러한 모임을 만들기까지 해왔던 수많은 노력을 다시 쌓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년간, 아마도 시험 감독을 해왔던 기간만큼의 노력으로 쌓아온 것을 다시 열정을 쏟아 또 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미 오래전에 넘겨주고 떠나온 모임을 다시 왈가왈부하며 간섭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미 외인 이었으며, 동아리의 미래에 관한 판단은 그 안에 있는 이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이러한 모임을 설령 다시 하게 된다면, 모임의 불씨를 계속 유지해야 할 까닭을 그 무엇보다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충분히 그 가치를 느끼고 수련할 수 있도록 도와, 그들 역시 모임을 만들어가는 리더로 성장케 하고 싶다. 성장하는 이들이 많아야 모임도, 나아가 사회도 성장한다. 비록 그 과정은 서로 힘들지 몰라도 모임에 애정을 느끼는 것은 그러한 동고동락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 이 모임이 '나를 생각하는구나!', '이 모임과 모임 안에 존재하는 이들이 소중하구나!', '이 모임의 목적은 분명하구나!'를 느끼게 해야 한다. 아무 곳에 가서도 있을 법한 모임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가 되는 모임, 어느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기 때문에 기쁜 모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좀 더 알려주고 훈련시키고 싶다. 동아리로서 '친목 정도도 잘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그 안의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어쩔 수 없이 위로하기 위한 말일뿐, 발전하는 모임으로서는 좋은 것은 아니다. 목적을 잃어버린 모임, 처음의 가치관을 잃어버린 모임은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노력하기 전까지는 위태롭다. 모임의 리더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한다.



현주는 5시에 다른 약속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글을 써야 할 시간이 필요해서 4시쯤 일어났다. 집에 가서 빨래를 돌리고 방을 조금 정리한 뒤, 다시 집을 나섰다. 월천 라운지에 도착하여 글을 썼다. 7시가 되어 길 위에서 영어 공부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대용과 통화를 했다. 사소한 이야기들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상으로만 통화할 때, 매번 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는 서로 할 말을 생각해내려고 노력한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모임도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충분한 노력이 있고 나서야 그저 흘려버릴 기억이 아니라 간직할만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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