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눈을 뜨니 방에 햇살이 어제와 같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놀라 두리번거리면서 휴대폰을 찾다가 5시 50분을 가리키는 시계에 안도하며 한숨을 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요즈음 늦게 자든 일찍 자든지 간에 꼭 이 시간이면 한번씩 깨는 버릇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다시 잘 수 있어서 좋았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의 부족한 잠이 더 부족해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더구나 그 시간에는 개운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그 시간 이후 진짜 일어나야 할 시간에는 피곤함이 남아 1분이라도 더 자려고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매번 6시 50분과 55분 사이에 일어나 바로 옷만 갈아입고 가방을 메고 바로 학교까지 질주하곤 했다. 매번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그럴 것이라고 예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예언이 틀리고 나는 상윤의 메시지 알림과 동시에 깨어났다. 상윤의 메시지가 먼저인지, 눈이 떠진 게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거의 동시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용수철이 튀듯 상체를 들어 올리고 급하게 휴대폰을 찾았다. 7시 1분이었다. 알람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지난날 동생 집에서 자던 일요일 아침에 모든 알람을 꺼 놓은 게 생각났다. 그때 이후 알람을 설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저 6시 50분 정도면 알람이 당연히 울렸겠거니 생각하고 어떤 위화감도 없이 눈을 떴고 매번 그렇듯 가방을 메고 부리나케 달려갔던 것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알람을 다시 설정하고 상윤에게는 이따가 커피숍에서 보자고 말하고 나서 어차피 늦은 거, 조금 더 졸린 잠을 보충하기로 했다.
간만의 늦잠으로 원기가 보충되는 듯했다. 마치 게임에서처럼 줄어들었던 체력이 잠깐의 잠으로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이 기분이 너무나 좋았으나 더 늦으면 영어 모임 준비를 못 할 것 같았다. 일어나 제대로 씻지도 않고 대충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피로가 회복되었다는 느낌 말고는 부리나케 튀어 나가던 아침 7시와 다를 바 없는 10시였다. 몸이 회복되었다는 느낌은 좋았으나 3시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생각에 동시에 아쉬움이 남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늦더라도 나왔더라면 독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충분한 잠이란 있을까? 대체로 8시간 정도의 수면이 적당하고 유전자에 따라 5시간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나폴레옹이나 이명박도 그런 타고난 사람이라 매일 5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앞의 나폴레옹은 감옥에 갇힌 이후에는 긴 잠을 잤다고 전해지지만, 어쨌거나 잠을 덜 자고도 피곤함을 몰랐다던 이들의 대명사로서 오래전에는 많은 젊은이에게 잠조차도 극복할 수 있으며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을 심어준 이들이다. 내 경우에는 그런 유전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수면량은 충분히 적응 가능한 것으로 본다. 물론 자신을 실험해본 적은 없지만, 이전에 5시 기상 모임을 6개월간 할 때 보통 취침 시간이 12시 전후였던 것을 생각하면 적당히 익숙해지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게 끝나고 나서는 다시 흐트러져 7시간 혹은 그 이상도 잤던 거 같다.)
내 경험 속에서 수면 시간을 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깨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이다. 과거 아침 운동모임을 할 때는 코치로서 늦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었으며 5시 기상 모임 때에도 모임장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과 다른 사람에게 좀 더 자신을 좀 더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아침 8시 독서 모임이나 지금은 벌금제도와 책임 의식이 있었다. 이를 통해 보면 공통으로 있는 것은 책임감이며 이것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도와주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졸음을 딛고 깨어 있던 그 시간은 내게 수많은 것들을 이루고 이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독서 모임, 운동모임, 영어 공부 그 외에도 그 시간에만 할 수 있었던 수많은 크고 작은 모임과 값진 토론들이 내게 무엇을 주었던가? 아침의 정적을 깨우고 의지를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통의 목표를 도모할 때 얻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체력뿐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감이었으며 탁월함을 만드는 습관이었다.
모임을 하던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직감적으로 아버지의 환불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법대로 하자던 업체의 사장인 것을 알았다. 모임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어서 끊었지만, 이내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렸다. 하는 수 없이 모임 참여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는 공정위로부터 공문을 받고 전화를 드린다고 했다. 대뜸 인천이냐고 묻더니 자기 사무실로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렇게까지 온 시점에서 환불이 필요한거지, 서로 얼굴 볼 일이 필요한 건 아닌듯싶어 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모임 때문에 오후에 연락을 준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들어가서 모임을 진행했지만, 영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계속 이따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정신 차리고 모임을 끝내니, 점심때가 되었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1시까지 다음 모임을 위한 자료를 정리하고 더불어 무엇을 말할지 생각도 정리했다. 이상하게 몸이 살짝 떨렸다. 그에 맞춰 심장의 박동수도 증가했다. 법대로 하자며 역정을 내던 그를 생각하거나 아버지가 몇 달간 전전긍긍하면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가장 힘들어하던 시기가 바로 그 제품을 잘못 구매했던 시기라는 것을 알았기에, 청약 철회 기간인 일주일 안에 연락했음에도 그가 받아주지 않자 어떻게든 손해를 보고서라도 돈을 회수해보고자 사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눈물마저 날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사건 경위를 간단히 살피자면 이렇다. 아버지는 지난 1월 즈음에 인터넷 중고 판매 법인으로부터 180만 원짜리 물건을 구매했다. 그러나 이내 그 제품이 자신의 용도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환불을 요청하지만, 업체는 어디 중고 물품이 환불이 있느냐며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관련 법 지식을 모르는 아버지는 돈이 급해 130만 원에 환불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100만 원까지 환불을 요청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정위 신고하겠다고 하였으나 그쪽에서는 도리어 법대로 하자고 했고 그러는 와중에 아들인 내가 그 소식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전자상거래에 따른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신상품이든 중고물품에 상관없이 일주일 안에 청약 철회를 요청하면 환불을 받아줘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아버지도, 상대 업체로 알고 있지 않았으며 나는 이 부분을 들어 상대 업체에 환불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제안에 거부했고 법적 효력이 없는 「전자 상거래 자율 분쟁위」를 통해 130만 원에 합의를 보려고 했으나 마찬가지로 거부하여, 「공정거래 위원회(이하 공정위)」로 제소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고 「한국소비자원 자율분쟁조정위(이하 분쟁위)」로 내려 보내기를 요청하는 전화가 공정위로부터 왔다. 이유는 그쪽에서 적극적으로 조정에 응할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나는 못 미더웠지만 수락하고 그로부터 삼주 정도가 지나 해당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사정을 소상히 밝히고 우리 쪽에서 원하는 것은 '법대로'라고 말했다. 즉 원금 180만 원에 청약 철회 거부에 따른 법정 보관 이자 15%, 그리고 배송비는 우리 쪽에서 부담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이틀이 지나고 당사자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사태가 이렇게까지 온 것은 여러 차례 협상하려고 했으나 파기된 것과 그쪽으로부터 받은 모욕적인 언행 때문이며, '법대로' 하자고 말했으니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그쪽에서는 아버지께서 소재와 장갑도 구매하기를 원해서 제품과 함께 보냈고 상차 비용이 있다고 주장하며 160만 원에 자기가 찾아가는 걸로 하자고 했다. 나는 아버지는 오로지 제품 가액이 180만 원인 줄 알고 있었고 쇳가루 한 포대는 서비스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또다시 논쟁이 일 것 같아 우선 그에게 아버지께 연락해보았느냐고 물었다.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아버지께 사과부터 하시고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라고 말했다. 그러고선 바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그간의 통화 내용을 말씀드리고 우리 쪽에서는 민사소송까지도 각오하고 자료 다 준비해 놨으니 아버지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시라 말씀드렸다. 더불어 아버지께 내가 생각하는 보상과 그쪽에서 바라는 보상에 대해 말하고 또한 직접 찾으러 가길 원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원치 않으시는 듯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전화를 끊자, 잠시 후에 다시 업체 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떻게 되었는지 물으니, 아버지가 결정을 내게 맡겼다고 했다. 아버지로부터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느냐고 물었더니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 저는 원칙대로 하겠습니다. 단, 제품가 180만 원에 보관에 따른 연이자 15%, 배송비는 우리가 부담하는 것 중에 연이자 15%를 안 받는 대신 찾아오지 않는 조건으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자기 제품 찾으러 가는데 왜 안 되느냐며 항변했으나, 요즘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만나느냐며, 아버지도 저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다시 한번 15% 이자는 대신 받지 않겠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는 분을 삭이다가 결국 알았다고, 늦어도 화요일까지 입금해주기로 했다.
이 일은 아버지는 년 초부터 고생을 했고 내가 알고 나서도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분쟁위 조정이 최대 180일까지라고 했고 그것조차 법적 효력이 없으니 만약 민사소송까지 고려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한편으로는 민사 소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법률적 지식의 중요성과 더불어 분쟁을 조정하기까지의 조정 절차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마무리가 더 스트레스를 없앨 좋은 기회이기는 하나, 앞으로도 있을지 모를 민사 소송에 대하여 그 법률적 절차를 배우고 그 기간이 대략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지를 모르게 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당하게 일을 하는 우리 분식점 이모들이 혹 나중에 법률적 분쟁을 겪게 될 경우, 단순히 지금처럼 상식적이며 말만 해주고 그저 남 일처럼 대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맡아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송으로 이길 확률이 못해도 80% 이상일 것이기 때문에 해볼 만했다. 시간이 갈수록 해결이 아직 안 된 데에 따른 조바심도 있었지만 동시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대비하고 있었고 아버지도 다행히 급한 불을 끈 상태라 비교적 해당 일을 처리하는데 전적으로 내게 맡긴 채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여하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 화요일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끝나고 아버지께 합의된 사항을 다시 말씀드리고 이어서 분쟁위 측에도 협의 과정에 대해 알렸다. 분쟁위는 추후 입금 여부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으며 나는 알았다고 말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꽤 지지부진하던 과정을 생각해보면, 왜 사람들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말하는지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의 경우 이렇게 긴(심지어 소송까지 가지 않았음에도) 기간을 버텨내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소송에 따른 승패의 불확실함과 패배할 경우의 위험을 생각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그전에 큰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합의를 보는 것이다.
거의 반년에 걸친 분쟁 과정에 참여하면서 배운 것은 분쟁에 합리적으로 대응하고 시간 낭비를 막으려면 관련 법률적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점과 절차나 관련 기관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점, 분쟁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증거가 될만한 것은 미리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몇 번의 합의 과정을 거쳐도 해결이 안 되면 다른 수단을 취하기보다 바로 분쟁을 조정할 조정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한, 조정과 더불어 공정위를 제외한 조정 기관은 법적 강제성이 없으므로 민사의 가능성을 두고 대한 법률구조공단의 자문을 얻어두는 것이 좋다. 끝으로 충분한 물증을 확보하고 있다면 비교적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좋다. 물증이 명확하고 합리적이라면 윽박지르거나 힘을 쓰지 않아도 국가의 여러 기관이 비록 과도한 민원량으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지켜보고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법은 분명히 가깝지는 않더라도 멀지도 않다. 그리고 가깝게 느끼려면 그 지식이나 정보를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