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일편단심 민들레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모습.
도도하게 손짓 하나에 사람들을 이리 저리 움직이는 모습.
사랑에 빠진 소녀와 권력을 휘두르는 여왕의 양면성은 한 여자에게서 찾기 어렵지만, 그 어려운 걸 여다경이 보여준다.
여다경은 본인의 영역을 놀라울 정도로 잘 확보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자신의 적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매우 우아하게, 잔인하면서도 매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드러냄으로써 짓밟는다. 그 덕분에 여다경은 드라마의 중반부까지 지선우를 압도할 수 있었다.
자기 통제력, 문제 해결 능력 ... 그리고 진심.
뒷목을 잡으면서도 감탄했던 장면이 있다. 지선우 편에서 언급한 홈파티 장면이다.
잘 생각해보자. 이 상황이, 지선우에게도 불편한 자리였겠지만, 여다경이라고 편했을까? 충분히 둘이 머리채 잡고 싸우고 난장판이 될 수 있을만한 상황이었다. 전 상간녀(현재 부인)과 전 부인과의 만남이라니.
하지만 여다경은 자신을 상간녀가 아니라 승리자의 입장에 놓고 상황을 풀어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한 상황을 알면서도 회피하거나, 그저 그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외면하거나, 막상 그 상황에 마주하면 당황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무너진다.
하지만 여다경은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이 돌려줄 반응 역시도 스스로 선택한다.
굉장히 감정적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을 하기까지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여다경은 이 능력을 갖춘 여자였다.
자신의 파티에 난입한 전처를 우악스럽게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말을 걸고, 여우회에 들어오려는 지선우에게 한 표를 던져준다. 이로써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고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지선우보다 높은 서열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여유는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것이기에.
쌍년이지만 난년이다
자신의 입지를 유리한 위치에 놓는 행동은 준영이에 대한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선빵필승.
그녀는 이태오가 망설이면서 아들 준영이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먼저 준영이 이야기를 꺼내고 초대함으로써 이태오가 신세진 상황이 되도록 만들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마음의 빚을 하나 지워 놓은 셈이다.
마찬가지로 보통 이혼한 전 부인의 아들에게 먼저 편하고 살갑게 다가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편해하지 않는 것만 해도 마음 넓다 소리를 듣기엔 충분하다. 하지만 여다경은 준영이에 대한 관점을 바꿔버린다. ‘남편이 전 부인과 낳은 아들’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대함으로써 이태오와 준영이의 마음을 다 얻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니까, 나에게 역시 중요하다.
간단한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시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적다.
또한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와닿도록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적을 것이다.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여다경은 준영이를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준영이가 자기 아빠랑 바람 피워서 가정을 파탄 낸 사람의 말에 홀랑 넘어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여다경이 처음 손을 내밀었던 것은 진심이었다. 지선우와 준영이가 2년동안 표면적인 평화 안에서 서로 겉돌았다면, 여다경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준영이에게 최소한의 믿음과 안정감을 준 것이다.
여다경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안다. 좋은 집안에서 많은 자원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결핍과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파악해서 채워주는 것은 여다경의 능력이다. 결국 지선우는 아들 문제를 여다경이 해결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껄끄러운 관계인 고예림에게, 전처의 자식인 준영이에게,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지선우에게 먼저 말을 하고 행동을 취하는 건 늘 여다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상황을 자신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여다경은 자신의 삶, 사랑, 남자에게 확신이 있다.
여다경의 선택들을 잘 살펴보면, 결코 부잣집 아가씨로 마냥 곱게 자란 사람이 내리지 못할 법한 선택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부남을 선택하고 그 아들을 품으려 하고, 결국 모든 일을 겪고 얻어냈던 남자를 버리는 것까지.
그녀의 모든 선택은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부터 비롯된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에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관계, 감정에 충실한다.
많은 것을 잃었다. 주변의 평판, 자기 커리어, 안락한 집. 무엇 하나 아깝지 않은 것이 없는데도 그녀는 자기가 놓친 것들 때문에 후회하고 망설이지 않는다. 곱게 자란 아가씨가 자존심 세울 법도 한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주저없이 그 자존심을 내다 버린다. 신뢰와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여다경이 의심하고 흔들렸던 건, 이태오가 지선우의 사진을 찍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자신의 확신을 이태오가 흔들버린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불륜녀가 뭐 그리 당당하고 뻔뻔하게 얼굴 쳐들고 다니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라도 여다경이 이태오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고, 그렇기에 관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빛났다.
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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