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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Sep 09. 2020

귀여운 배꼽미녀,마들렌

늘 함께 나눌 때 행복한 디저트

혹시 '삼순이'를 아시나요?

혹시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2005년에 방영된 드라마를 아시나요? 당차고 멋진 파티셰 '김삼순'이라는 여주인공과, 풋풋한 현진헌 역의 현빈 씨,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다니엘 헨리 씨와 가녀리고 예쁜 정려원 씨가 나온 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를 방영할 당시에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갔던 저와 학교 친구들은 수학여행 내내, '현빈 씨나 다니엘 헨리 씨를 지나가다라도 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드라마가 유명했기 때문에, 모두들 한국에서 낯선 '파티셰'라는 직업을 설명할 때, 저는 '삼순이 직업이요.'이라고 하면 의외로 사람들이 '아하~'하며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종종 이 드라마를 써먹곤 했습니다. 꽤 오래전에 봤던 이 드라마에서 제가 좋아하는 순간은 바로 삼순이가 이 대사를 하며 '마들렌'을 먹는 장면입니다. 

삼순이와 삼식이(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MBC)
삼순: 주인공이 이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먹으면서 과거를 회상을 해. 근데 그 주인공이 마들렌을 어떻게 표현했냐면... 통통하게 생긴, 관능적이고 이 풍성한 주름을 지닌... 그가 말하길 '섹시쿠키'라고 했어... 지금쯤이면 그 두 사람,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겠지?

헨리와 삼순이가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동안, 홍차와 함께 마들렌을 나누는 대화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많은 감정이 떠다닙니다. 그렇게 삼순이가 '섹시쿠키'라고 소개했던 마들렌. 마들렌은 조가비 모양의 버터와 레몬향이 참 좋은 작은 케이크 같은 프랑스 과자입니다.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부드러운, 작은 파운드케이크 조각 같은 맛이 나서 우유나 홍차와 함께 먹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풍부한 맛이 배가 됩니다. 


황금빛이 도는 갈색의 조개껍질 모양을 가진 마들렌은 예쁜 모양만큼이나 친숙한 맛이기 때문에 더 쉽게 손이 가는 디저트입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한국에 갔을 때 참 고급스럽게 포장된 마들렌을 보고는 조금 놀랐라기도, 또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마들렌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이미지를 공개합니다.


조가비 모양의 예쁜 마들렌. 
마들렌의 유래

이 마들렌은 17세기 혹은 18세기에 처음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의 장인인 폴란드 왕 Stanislas Leszczyński의 파티셰였던 마들렌이라는 소녀가 자신의 할머니의 레시피로 이 케이크를 만들어 만들어 그 이름을 땄다는 설도 있고,  루이 15세가 로렌 지방을 방문하여 이 마들렌을 먹어보고 무척 좋아하여 그의 왕비인 Maria Leszczyńska가 베르사유 궁정으로 들여왔다는 이야기도, 또 스페인에서는 마들렌이라는 이름의 순례자가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에 이 작은 케이크를 구워 로렌 지방을 지날 때 순례자들과 나누었다는 등등 (조가비 모양은 순례자를 상징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종종 이 조가비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유래가 이 마들렌을 따라다니지만, 어느 누구나 그저 가볍고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디저트입니다.


저는 종종 레몬과 꿀을 더 듬뿍 넣어서, 혹은 얼그레이 티백을 잘라 넣기도 하면서 한번 만들면 잔뜩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합니다. 특히, 날이 제법 쌀쌀해질 때쯤 친구들이 집 정원에서 키운 향 좋은 레몬을 한 봉지 가득 건네 줄 때면 레몬 마들렌과 레몬청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며 보내주곤 합니다. 아주 작게 한입 모양으로도 만들고, 길쭉한 조개껍질 모양으로도, 또 크고 오동통한 조가비 모양으로도 마들렌을 만들다 보면 왠지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참 행복합니다.

또, 바로바로 굽고 식혀서 포장을 할 때면 이 마들렌 향 때문인지, 또는 이 마들렌을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의 반가운 미소 때문인지 만드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곤 해요. 큰 조가비 모양도, 작은 조개 모양의 마들렌도 같은 반죽을 사용하지만 참 식감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늘 이렇게 여러 틀을 사용해서 한가득 구워놓고 만들면서 하나씩 집어먹는 재미도 이 마들렌의 행복 중 하나입니다.

친구네 집 정원에서 딴 레몬과 선물 받은 그린티를 잔뜩 넣은 마들렌. 너무 색을 내지 않고 조금 촉촉하게 만들었어요.
배꼽 미녀 마들렌

이 귀엽고 오동통한 마들렌은 잘 구워졌나를 볼 때는 많은 분들이 아시듯이 요 '배꼽'을 꼭 봐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이 '마들렌이 잘 구워졌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할 때, '마들렌은 배꼽 미녀야. 배꼽이 귀엽고 뽈록하게 올라오면 잘 구워진 거야'라고 말해줍니다. 워낙 인터넷에 '마들렌 배꼽 잘 나오는 방법' 같은 팁들이 많지만 베이킹에 있어서 늘 기본은 간단해요. 


'계량을 정확히 하고, 가루류는 체를 꼭 쳐서 준비해주고, 레시피의 순서를 무시하지 않으면 돼요. 오븐 예열을 꼭 하고 시작하고, 오븐을 계속 잘 체크해주세요'. 업장에서 이 마들렌을 만들 때, 전날 반죽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음날 마들렌 틀에 버터칠을 꼼꼼하게 해 준 뒤 구워서 잘 식혀서 포장을 합니다. (전날 만들어서 두면 좀 더 반죽이 안정화가 돼서 배꼽이 예쁘게 나옵니다) 그리고 보통 케이크나 과자, 빵 등은 잘 구우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구워진 제품을 잘 식혀주는 것' 까지가 바로 레시피의 완성이랍니다.


귀여운 배꼽 미녀 마들렌

자 이제 이렇게 만들어진 배꼽 미녀 마들렌을 삼순이가 소개했던 1920년대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 대목과 함께 읽어봅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역자 김희영)

저도 홍차에 이 예쁜 조가비 모양의 오동통한 마들렌을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어린 시절 잊고 지내던 그 시간을,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기쁨이고, 특별한 일일까요. 마들렌을 한 입을 제가 좋아하는 레이디 그레이 홍차와 마시며, 제가 좋아하는 이 책의 다른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There are perhaps no days of our childhood we lived so fully as those we left without having then, those we spent with a favorite book"
아마도, 우리의 유년시절에서 가장 충실하게 산 날은 우리가 쓸데없이 소일했다고 믿던 그런 날일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보낸 그런 날-"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참조>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저 (역자 김희영, 민음사)

마들렌 유래: https://en.wikipedia.org/wiki/Madeleine_(cake)

마들렌이 등장하는 '내 이름은 김삼순' 7화 : https://www.youtube.com/watch?v=F_O7tEf2lqU

'내 이름은 김삼순' 작가 지수현 씨의 인터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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