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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Dec 10. 2020

피칸 파이를 굽는 날

엄마에게 해드리고 싶은 피칸파이


재작년, 엄마의 환갑을 늦게나마 챙기기 위해 한국에 방문하여 엄마와 소소하게 시간들을 보내곤 했습니다. 아가 손 마냥 조막한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예쁜 찻잔과 달콤한 디저트로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곳들을 모시고 가봅니다. 제가 주방에서 일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단것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평소에 천 원짜리 한 장도 아까워하는 우리 엄마. 그래서 더 제가 하는 일이 힘든 일이 아니라 기분 좋아지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맛있고 예쁜 디저트가 가득한 멋진 장소들을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인터넷 블로그나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저의 마음의 한켠에는 엄마가 ' 낭비다.' '너무 달다. 나는 별로다.'라고 하시면 '좀 마음에 상처 일 것 같다' 싶었는데,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해드릴 수 있는 것들을 엄마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엄마와 예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장소는 좋은 음악과 따뜻한 웃음과 다정하고 나지막한 대화들이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모이면 그렇듯 엄마와 저는 셀카도 찍고, 한껏 마음이 부푼 소녀 같은 엄마의 모습을 작은 동영상으로도 담아봅니다.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시는지 알았으면, 진작  모시고 올걸'. '나는 엄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 엄마는 뭐를 정말 좋아하시지?'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칸파이도 꼭 찍어야 해!

이런 엄마에게도 사소한 사치이자, 좋아하시는 디저트가 있는데 바로 '피칸 파이'입니다. 고소하고 바삭바삭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이 피칸 파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가게에서 아주 가끔 큰 맘먹고 주문하십니다. 디저트 만드는 일을 하는 제가 먹기에도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맛있고 좋은 재료를 쓰는 게 느껴지지만, 엄마에겐 늘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어서 남동생이 군대에서 제대한 날이나, 제가 몇 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 이 피칸 파이를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엄마가 좋아하는 치자꽃을 새벽 꽃시장에 사 와서 꽃병에 꽂아두었습니다. 오랜만에 우리 엄마표 아침상 사진을 찍어보려고 하는데 엄마가 말합니다. "특히, 이 피칸 파이도 꼭 찍어야 해!"

그래서인지, 일하면서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도 드실만한 레시피를 발견하거나, 보자마자 예뻐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탄성이 나오는 디저트들은 따로 사진이나 메모, 스케치를 해두곤 합니다.



몇 해 전, 북미 아티스트와 관련된 VIP 행사를 위해서 버번위스키 향을 입힌 메이플 시럽을 사용하여 만든 피칸파이를 디저트로 준비했었습니다. 이 레시피로 피칸 파이를 만들면, 주방에서 일하던 다른 셰프들이 디저트 섹션으로 와서 끄트머리 남은 거라도 없냐고 물어볼 정도로 맛있었던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행사가 끝나고도 가끔 이 피칸파이가 생각날 때가 있어서, 집에서 몇 번 레시피를 고쳐서 만들어 보곤 합니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엄마께 꼭 이 피칸 파이를 맛보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보기도 합니다.



오븐 트레이에 넣은 피칸을 나무 주걱으로 뒤적뒤적하면서 골고루 구워줍니다. 고소하게 피칸이 구워지는 냄새가 집안에 퍼지는 동안, 타르트지와 피칸 파이 속을 채우기 위해서 달콤한 메이플 시럽과 바닐라빈, 오렌지 향 리큐어(트리플 섹)등을 꺼내어 본격적으로 피칸 파이를 만들 준비를 합니다. 보통 피칸 파이는 하루 전에 파이지와 필링, 그리고 잘 구워져 식힌 피칸을 넉넉하게 준비해주고, 다음날 커피 한잔을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피칸 파이를 굽기 시작합니다. 온 집안에 달콤한 향이 퍼지면서 봉긋하게 올라오면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파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잘 구워진 파이를 식힘 망에 올려 실온에서 식히는 동안, 메이플 시럽을 두 번 정도 얇게 발라줍니다. 반짝반짝한 피칸이 가득가득 꽉 찬 파이의 '아는 그 맛있는 맛'이 벌써 느껴져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저희 집 고랑이는 벌써 본인 커피를 내린다고 옆에 와서는 '오늘도 맛있게 되었나 확인해보는 거야.' 하면서 살짝 온기가 남은 피칸 파이를 야곰야곰 먹어봅니다.



고랑이와 함께, 갓 내린 커피에 피칸 파이 한 조각을 나누어 먹는데 잔디를 깎으러 나온 옆집 할머니와 잡초를 뽑는 앞집 할아버지가 창문 사이로 보입니다.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다가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피칸 파이를 가지고 나와서 웃으며 내밀어 봅니다.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늘 피칸 파이는 더 맛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는 엄마와 함께 이 피칸파이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봅니다.


음식은 마음이고, 사랑이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p01NRjt247I


엄마와 저의 달콤한 데이트하는 모습을 친구가 찍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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