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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nist Garam Cho May 18. 2020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J. S. Bach: Chaconne from Partita No.2





그러니까, 요즈음은 한 음악이 맴돈다.  1347년 전 대륙을 휩쓸며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도, 2020년 현재의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넘어지듯 쏟아지는 죽음 앞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경건해지고, 또 누군가는 신을 부정하며 평생토록 입은 경건을 옷을 벗어던지게 되었다. 제아무리 나에게 미상의, 미지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혹, 죽음 뒤의 세계가 우리가 알지못하는 차원의 유토피아라 할지라도, 3차원 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은, 여전히 슬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대중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 불리는 음악이 있다. 

바흐는 일곱 아이의 엄마, 지극히 사랑했던 아내를 잃은 1720년에 이 곡을 완성했다.    

 

에런 코플런드는 ‘위대한 예술 작품일수록 거듭 듣고 또 들을 때마다 그 의미도 새롭게 다가온다’로 했다. 물론 같은 곡을 들어도 감상자가 열이면, 열 모두가 느끼는 음악의 심상은 제 각각인 법이고, 그것이 음악듣는 쏠쏠한 재미이지만, 가끔 열 명이 들어도 동일한 것을 느끼고, 매 번 새로운 의미를 찾지 않아도,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의미소의 가치만으로 충분히 위대한 작품도 존재한다.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라단조 BWV1004의 마지막 곡, 샤콘느. 


 ‘세상에서 가장 슬픈’이라는 진부한 클리셰를 적확한 진리로 둔갑시켜, 태초부터 자기 자리였던 양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존재하는 샤콘느는,

 슬픔의 왕답게 슬픔의 다양한 층위를 담고 있다.  





J. S. Bach: Chaconne from Partita No 2 in d minor, BWV1004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샤콘느 연주 중 일부 

 그는 부제, 각주, 가사를 더하지 않았다.

 이 장대한 슬픔이 ‘무엇’에 관한 슬픔인지 상상케 된다. 바흐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후 아내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장의사에게 ‘아내에게 물어보시오’라는 말을 했단다. 아내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 다하지 못한 말과 운명에 대한 애석함이 뒤얽힌 슬픔이 이 곡의 목적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슬픔을 덕지덕지 묻히고 곡을 써내려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슬픔의 주체를 단서로 음악에 남겨놓았다.

 그의 칸타타나 아리오조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주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하소서’‘예수가 죽음의 쇠사슬에 매여있다’ 의 멜로디가 차용된 바에 비추어 볼 때 이 곡이 가리키는 방향은 선명해진다. 인간의 형상을 한 신의 어깨에 얹힌 인류의 죄, 그것을 짊어지고 내딛는 발걸음의 무게, 천박한 권위주의는 간데 없는 소명을 다하는 신의 자처한 초라함, ‘엘리엘리 사박다니’에 담긴 신조차 사무치는 단절, 그리고 끝내 느껴지는 죄에 대한 일갈과 다이루었음의 영광.  

듣는 이는 신의 고통에서 출발하여 최종적으로 겸허히 인간과 죄, 생과 사에 다다르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의 도구, 음악의 구성은 단순하다. 총 257마디의 샤콘느는 8마디로 이루어진 주제가 32번 반복된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자신의 4번 교향곡 4악장에 8마디의 주제를 32번 반복함으로 바흐의 샤콘느를 오마쥬한다. 


J.Brahm: Etude No. 5 for the Left Hand ,
After J.S. Bach Violin Chaconne in D minor


  1878년, 클라라 슈만은 연주자 데뷔 50주년을 맞았으나 오른손에 이상징후를 느껴 연주를 한동안 중단하게 된다. 그녀와 일평생 영감을 주고받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요하네스 브람스는 그녀를 위하여 왼손을 위한 곡을 편곡한다.  평생 흠모해 온 여인에게 바치는 곡으로 가장 흠모하는 작 

품을 택한다. 

‘On one stave, for a small instrument, the man writes a whole world of the deepest thoughts and most powerful feelings. If I imagined that I could have created or conceived the piece, I am quite certain that the excess of excitement and earth shattering experience would have driven me out of mind.
그는 작은 악기를 위하여 한 개의 음표로, 심오한 사고와 가장 강한 느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오. 내가 그 작품을 만들 수 있었거나, 구상하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다면, 나는 지나친 흥분과 천지가 진동하는 경험으로 정신을 잃었을 것이오.’
-요하네스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에게 보낸 서신 중-

그리고 완성된 편곡보를 클라라에게 보내며 서신에 덧붙인다. 

‘원곡의 감동을 확실히 유지하는 방법은 왼손으로만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오. ‘  



https://youtu.be/z1KW_yWR1T4

필자의 베를린에서의 왼손을 위한 샤콘느 라이브 연주 


 바흐의 샤콘느는 작곡가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편곡의 요소를 띄고 있다. 

멜로디만 들어도 촘촘하게 떠오르는 화성감과 그 육중한 비애에 존엄의 한 발을 얹어 편승하고 싶은 욕구가 후대 작곡가들에게 근질거렸을테다. 혁신적으로 드라마틱한 이 잘 짜여진 멜로디의 플롯에 명료한 영상미를 더하고 싶었을테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지만, 브람스는 날 것 그대로를 이미 더할 것 없는 완전체로 해석했다. 완벽함은 더이상 뺄 것이 없을 때라고 하던가,  고유하고 빼고 더할 것 없이 그렇게 바흐의 샤콘느는 브람스의 손에서 피아노의 곡으로 그대로 옮겨졌다.실로 ‘본질’을  중시하던 고지식하고 엔틱한 클라라와 브람스다운 선택이다. 편곡 과정에서 무언가를 과도하게 가감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피아노의 청명한 소리로 연주되는 바이올린 원곡의 샤콘느는 또 다른 색채로 슬픔을 노래한다. 


그리고 여기 정반대의 방법으로 바흐의 음악에 경의를 표현한 이가 있다. 



F.Busoni: Chaconne in D minor


 바흐 사후, 약 100년이 흐르고, 이탈리아에서 작곡가 페루초 부조니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후대에 ‘바흐-부조니’라고 착각될만큼 바흐의 많은 곡을 편곡했다. 당대 흐름이었던 후기 낭만의 바그너를 중심으로 하는 표제음악을 지양하고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을 지향했던 그는 이전 시대 대가들에 대한 연주로서 편곡 작업이 그가 맡은 과업이라고 여겼다.


https://youtu.be/tnIRFT477G8

미켈란젤리의 명연주로 손꼽히는 1955 바르샤바에서의 페루초 부조니 샤콘느 연주.



 바흐의 ‘샤콘느’를 그 멜로디와 곡 전체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위아래로 화성과 꾸밈음들을 두텁게, 매우 두텁고 다채롭게 쌓아올리고 내렸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뒤따를 바흐의 샤콘느의 본질을 흐렸다는 평을 뒤로하고, 그는 이 또한 필요한 작업이라 확신하고 바흐의 샤콘느가 꾹꾹 눌러담고 걷어 낸 찌끄러기들, 혀끝까지 당도했다가 이내 삼켜버리는 목구멍 뒤의 말들을 끌어모아 악보에 다 꺼내놓은 듯, 그렇게 미니멀리즘 샤콘느를 맥시멀리즘 샤콘느로 재탄생시켰다.

 이 아슬아슬한 시도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또 한 곡의 명곡이 되었다. 

얼룩으로 보일 수 있는 더해진 노이즈들이 형언하기 힘든 카타르시스를 폭발적으로 끌어냈다. 때로는 고상함을 던지고 하고싶은 말을 마음껏 소리치고 감정을 꺼내놓고 싶은 것이 인간인 법. 까맣고 흰 원작 소설과 화면으로 보는 영화화된 소설을 보는 이유가 다르듯, 원대한 작품들은 돌려보고 더해보고 확대해보며 재탄생되고 재향유된다. 페루초 부조니의 손에서 바흐가 말한 숭고함은 큰 소리로 더 많은 이들에게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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