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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nist Garam Cho Oct 21. 2020

예술가들의 예술가, Frederic Chopin

Pianist 조가람의 Classic Essay

https://youtu.be/IUsCZdWqt5g



 [쇼팽의 계절]

냉면이 아닌 칼국수가 당기자, ‘아, 쇼팽 들어야지.’ 싶다. 단연 쇼팽의 계절이다.  봄은 콘체르토나 바흐가, 여름은 드 파야나 알베니즈, 거쉰, 가을은 브람스, 쇼팽, 슈만,, 겨울이면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 베토벤이다. ‘무’의 극점 같았던 독일의 서늘한 잿빛 가을에 비하면 한국의 가을은 ‘아름다움’의 극점 같은 풍요가 넘치니 이곳의 풍요에 쇼팽이 어떨까 잠시 망설이지만, 서늘한 바람에 스치는 쓸쓸함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같으니, 부유하고 표류하고 방랑하는 상념의 계절임은 같으니,

그러니까 역시, 가을에는 쇼팽이다.

[  ▲Pencil drawing of the composer F.Chopin by George Sand,1841]


[파리의 예술계가 진동했다]

 클라라 슈만의 어머니는 클라라가 쇼팽을 듣고 연주하기를 금했다. 쇼팽의 음악은 경건하지 못하고, 비정형적이며,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톤의 교육관과 중세의 경건의 피를 수혈받은 클라라의 어머니와 같은 지성인에게 쇼팽의 음악은 아마도 매우 무엄한 것이었을 테다. 음악은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 하나의 초월적인 세계이며 완벽한 이상이고, 음악은 쾌를 위함이 아닌 온전한 균형과 질서의 이데아의 도구였기에 그 목적은 응당 도덕적 함양을 향해야 했다. 하지만 쇼팽의 음악은 쾌와 미만이 목적인양, 지극히 아름답다. 교육의 여하와 상관없이 모두가 아름다움을 느꼈다. 이 보편적 아름다움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당시 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고, 그의 아름다움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이들 또한 많았다.



[  ▲쇼팽이 연주했던 플레옐 홀 , Edouard Renard,1855]
많은 청중들의 갈채도 이 천재에 대한 우리들의 환희를 표현하는 데에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적 감정 속에 예술 형식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었다. 혁신적인 예술의 새로운 전개에 의한 연주에 대하여 우리는 도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란츠 리스트 (쇼팽의 음악과 사랑 중)

남부러울 것 없이 천상의 미모와 연주력으로 사교계를 주름잡던 프란츠 리스트도 쇼팽에 찬사를 보냈다. 반면 당시에 저명한 평론가였던 페티스의 평을 살펴보자.

‘ 청중은 한결같이 이 곡(Piano Concerto No.2 , Op.21)에 놀랐다. 가락에는 넋이 있었고, 피큐레이션이 매우 풍부하며 모든 것이 독창적이었으나, 조바꿈의 과잉이나 악절의 접속에는 질서가 없었다. 매우 즉흥적이다. 이러한 결함은 그가 아직 젊기 때문이며, 나이를 먹으며 사라질 성질이다. ‘


 쇼팽의 신선한 등장에 음악계는  시끌벅적한 토의가 한창이었다. 낯선 것 앞에 민중을 흔들리고, 짙은 직관은 초인을 알아보고, 범속한 본성은 혼란스러운 법.

 그의 화성적, 선율적, 구조적 새로움은 완전한 개혁, 도발과 파격이라는 페티스의 평과는 달리 바흐-모차르트-베토벤의 뒤를 잇는 음악의 순차적 수순에 따른 확장성에 가깝다. 음악의 선조들의 지성을 품고 인류가 당도해야  영역으로 시야각을 넓히며   내디뎠다. 파격적으로 보이는 행보 기저에는 화성의 새로운 루트를 찾아내는 영리한 지성 그리고 지난할 정도로 철저한 리듬적 골격이 심겨있다. 당시 평론가들의 즉흥적, 감상적이라는 평과는 달리, 그의 야상곡부터 소나타에 이르기까지의 악보나 그의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가 의외로 얼마나 고지식하게 꼼꼼하고 성실한 성품의 소유자였는지가 명징하다.


‘나는 나의 작품마다 매우 심혈을 기울이고 고민합니다. 환상적인 상상이 떠오르고 그것을 술술 받아 적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게 됩니다. 나는 그럼 바로 실망에 빠져 고민하다가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다음 주제를 받아 적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연결시켜서 전체를 구성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완성에 이르기까지는 공포스러운 괴로움과 설움, 수많은 눈물과 지새우는 밤을 지납니다.’ -쇼팽이 연인이었던 델핀느에게 보낸 편지 [내 친구 쇼팽 중 발췌]

 

 즉흥성으로 보이는 곡들은 철저하게 겹겹의 고뇌와 퇴고를 거쳐 다듬어낸 정교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일지 피아니스트로서 쇼팽을 연구하면, 처음 악보를 마주했을 때 당혹스러운 오른손의 선율의 자유로움은 시간이 갈수록 그 자유 속의 정갈한 개연성으로 이해되어 대체 불가능한 유일하며 논리적인 구성으로 변한다. 계획적 연출력이랄까, 구성력이랄까, 이 마법으로 쇼팽은 온통 세상을 매료시켜 나간다.



[  ▲조르드 상드와 쇼팽, Adolf Kapellus,1917, ‘꽃을 꺾기 위해서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얻기 위해 내 영혼의 상처를 감내한다-조르드 상드’]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예술가 쇼팽]


 리스트의 연인 마리 다구의 살롱에는 예술가나 정치인 등 유명인사들이 자유로이 드나들며 뜨거운 교류가 이뤄졌다.

이 곳에서 쇼팽에게 한껏 반해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붙여 준 시인 중의 시인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하인리히 하이네’다.


‘쇼팽 음악의 감미로움과 영묘한 깊이가 가져다주는 고통과 비슷한 환희 속에 몸을 뉘인다. 쇼팽은 음악의 위대한 시인이며, 역사적 예술가이다. 모차르트, 베토벤과 나란히 호칭되어야 한다. ‘-하인리히 하이네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 또한 마음을 쇼팽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쇼팽을 알지 못하고는 리스트를 평할 수 없다. 헝가리인이 악마라면 이 폴란드인은 천사다.’-오노레 드 발자크


동갑내기였던 쇼팽과 리스트는 비교대상으로 도마에 자주 올랐는데, 대중의 평과 상관없이 리스트는 완전히 쇼팽의 음악에 감화되어 있었다. 쇼팽 생전에는 쇼팽을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대리인을 자처했고 사후에는  ‘Chopin’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불멸의 월계관을 써야 할 이, 쇼팽의 작품은 머나먼 나라들과 아득한 후세까지 전해질 운명이다. 지구 상의 어느 곳에서 살고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들이라면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 연대를 이룰 것이다.’[ 프란츠 리스트의 ‘내 친구 쇼팽’ 중]

 파리의 살롱에는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들라크루아와 같은 예술가들도 함께였다.

‘나는 악한 쾌락을 이용한 유명세와 음악의 순수함을 교묘히 혼합하는 이나, 이치만 따지는 이론 주의자가 아닌, 참다운 음악가를 드디어 만난 것이 기쁘다. 쇼팽은 명확하며 주관이 있고  완전한 양식을 갖추었다. -펠릭스 멘델스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들라크루아 또한 단숨에 쇼팽의 진실성에 매료되었다. ‘키오스 섬에서 자행된 학살의 장면들’이나 ‘사루나다팔루스의 죽음’과 같은 강렬한 정서적 파장을 두려워 않으며 진실을 호도하는 작품을 주로 그렸다. 관능과 잔혹의 현장을 과감하고 진실하게 기록한 화가인 들라크루아가 주문을 받고 초상화를 그리지 않음은 당연했다. 그런 그는 쇼팽을 ‘천재성에 타버린 가장 순수한 영웅’이라 칭했고 그는 진실의 붓으로 쇼팽의 초상화를 기꺼이 그렸다.

[  ▲Eugene Delacroix가 미완성으로 남긴 F.Chopin의 초상화, 원본은 조르드 상드와 함께 있는 그림이었으나 들라크루아의 사후, 경제적 이유로 반으로 찢어져 판매



쇼팽을 마주한 당대 음악가, 화가, 문학가 등 예술가들은 왜 종교처럼 그에게 빠져들었던가.  아마도 답은 그의 진정성에 있으리라. 예술가도 먹고살고, 예술가에게도 사회적 욕망이 존재하건만, 그의 삶은 유독 군내가 끼지 않은 신성에 가까운 예술적 순정, 그 자체였기 때문이리라. 조르드 상드와의 짧은 사랑과 긴 동거 속의 텃텃한 마음을 예술에 쏟고, 비르투오조의 시대에 소리의 결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과장의 시대에 더 이상 뺄 것이 없어 완벽하지만, 결코 모자라지 않은 변화들로 예술의 지경을 확장한 그만의 아름다움, 조국 폴란드의 흙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며 폴란드의 얼과 혼을 예술로 이어가는 한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은 프란츠 리스트의 말대로, 불멸의 멸류관을 썼다.

그 결과 아득히 먼 극동에서 2020년의 우리는, 쇼팽을 듣는다.

[  ▲Death of Chopin by Felix-Joseph Barr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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