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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nist Garam Cho Dec 12. 2019

당신도 겨울이면 삶을 생각하나요.

[Pianist 조가람의 Classic Essay]


-당신도 겨울이면 삶을 생각하나요.

존재의 근원과 의미, 사후(死後) 마저도 유추로 버무린 신앙으로 치환하며 버텨 온 피아니스트는
코끝이 시려오면 성서를 펴듯, “리스트 소나타"를 편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리스트의 소나타”

J.W.v.Goethe 'Faust' & F.Liszt 'Piano Sonata in B Minor, S.178'


괴테가 파우스트로 인기 작가에서 대문호의 반열로 들어섰듯이, 리스트는 이 소나타로  인기에 가리어진 예술가로서의 깊이와 철학적 사유에 대한 논의의 여지를 묵살시키는 방점을 찍었다. 인기와 명예, 부와 권력, 모든 것을 누려 보았으나 여전히 최고의 인식을 향한 갈증을 누리던 리스트가 헤브라이즘(Hebraism)과 헬레니즘(Hellenism)의 고뇌 가운데에서  [파우스트]에 매료되었음은 필연적 운명이었으리라. [파우스트 교향곡]을 스케치하던 동 시기에 그는 자전적 이야기와 같은 [파우스트]를 피아노 곡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곡은 역사적 대곡(大曲)으로 길이 회자된다.  

괴테 생전에 발간된 '파우스트'의 표지


  리스트가 공식적으로는 언급한 바 없으나 ‘클라우디오 아라우’도 해석한 바와 같이 이 곡에서 파우스트적 요소는 매우 명확한 커다란 줄기를 이룬다. 이 ‘역사적 문화재’가 ‘오늘의 예술’이 될 수 있는 열쇠, 재해석을 얹어 리스트 소나타를 펴고 파우스트적 서사를 풀어 나가보려 한다. 수많은 명 연주들이 있다. 블라드미르 호로비츠의 1977년의 전설적 명반이 인간문화재의 농익은 춤이라면, 앙드레 와츠의 1988년 라이브 연주는 자연의 몸짓, 사자 갈기의 휘날림과 같다. 요새 감복하며 듣는 연주는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것. 마치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은 이의 연주 같다.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함께 따라가 보겠는가.

[Krystian Zimmerman]





[세 개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신과 파우스트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다.]

GOD


신의 목소리로 곡이 시작된다. 원작에서 파우스트가 창세기 1장 1절을 “태초에 행위가 계시니라”로 해석한 바와 같이, 신은 궁창의 울림과 같은 두 번의 진동으로 등장해, 세 번째의 진동은 이윽고 “행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베토벤의 운명 모티브와 같은 두드림으로, p의 작은 음향으로 은은하지만 완강히 아우르는 신의 권위로, 우주의 전존재를 휘어 감듯이 울려 퍼진다. 리스트는  첫 등장하는 신의 테마를 fff로 표기하였다가, 후에 p로 시작하여 ppp로 바꾸었다. 그렇지, 신은 때로 홍해를 가름과 같이 거대한 휘몰아침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고요히 늘 존재하며 내밀히 ‘행위'하니 ppp가 더 큰 아우름일지도.

God Motiv


이 탁월한 파우스트적 해석으로 시작된 신의 테마는 이어지는 서사에서 굵직한 절체절명의 상황이면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니, 이 모티브를 기억하고 리스트 소나타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깨달음을 향해 달려가는 외로운 사색가, 파우스트의 여정에 때로 방파제와 같이, 떨기나무의 불꽃과 같이, 위풍당당한 태양과 같이, 또 최초의 여명처럼 은밀히 나타나기도 한다.


FAUST

지상에서는 한 노인이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로서 온갖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지고의 쾌락과 생의 의미, 온전한 만족을 깨닫지 못하고 인식의 한계에 부딪혀 절규한다.

Faust Motiv


몽매의 환멸에서 나뒹구는 파우스트 자아 속의 전쟁은 첩첩이 쌓여가는 크레센도와 격정적 옥타브 부분으로 진행된다. 이를 들은 신은 Grandioso의 경이로운 위엄을 드러낸다. 신은 파우스트의 영혼을 담보로 한 계약을 허락한다. 이제 파우스트는 사탄과 계약으로 최고의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제 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를 외치면, 그의 영혼은 사탄의 것이다.


MEPHISTOPHELES

그리고  이 목소리를 들은 이, 악의 정령, 메피스토펠레스(이하 ‘메피스토’)가 나타난다.

MEPHISTOPHElES MOTIV


세상의 모든 쾌락 중 첫 번째로 파우스트에게 주어진 것은 20대의 젊은 육체와 지극히 평범한 목가적 순수와 순결의 처녀 그레첸과의 사랑이다. 공격적이었던 메피스토의 모티브는 어느새 첫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황홀의 지경으로, “그리움에 애태우며 희망의 이슬을 먹고사는 감미로운 사랑의 괴로움”으로,  꽃잎을 떼며, 그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점치는 마르가레테(그레첸)의 사랑스러움으로 변모한다.


[영화 ‘파우스트’ 중 마르가레테(그레첸)]



이 순결함은 파우스트의 욕망 가운데 그레첸의 가족과 자아의 파멸에 이르는데, 그 과정에서 파우스트는 격렬한 고뇌에 빠져 스스로의 심장을 찢는듯한 자괴감과 메피스토의 조소로 광기에 휩싸인다. 이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서로 집어삼킬듯한 빠른 템포의 16분 음표의 진행과 마르카토의 격한 옥타브, 난무하는 엑센트와 sf로 뒤바뀌어 결국 신의 음성이 fff의 마르카티시모로 심판처럼 등장하게 된다.



ff Pesante의 지시어에서 느껴지는 죄의 씻을 수 없는 무게는 파우스트를 짓누르고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Andante sostenuto의 회한을 거쳐 격랑의 긴 회개의 시간을 보내며 영혼이 끊어질 듯 가는 맥의 ppp의 스케일로 잔잔히 흐르다가 smorzando, 사라지듯이의 지시어 아래에 다시금 원점, 무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때 다시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처럼 들려오는 신의 테마. 신의 개입하에 그들의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흔히 3악장이라 불리는 Allegro energico에 지점에 선다.


메피스토가 선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최고의 인식을 위한 여정의 날개를 접을 수 없다. 불신과 증오가 담긴 자와 동맹하는 패러독스 속에 스타카토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는 “완전의 순간"을 찾는 탐험이 진행된다.



그들의 다음 여정은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다.
절대적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표상되는 헬레나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파우스트는 ‘에로스'도 ‘연민'도 아닌 오로지 ‘미'에 대한 탐닉적 사랑에 빠져든다. 절세미인의 육신을 고매함과 품위로 늘 포장하고 살아가는 이 여인은, 사실은 사랑을 찾는 그레첸과 같은 순정을 지니고 있으나 이는 깊은 곳에 결박되어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천사들과의 대화에서만 드러나는 헬레네의 비밀스러운 여림과 겉모습의 고결하고 숭고한 육신은
앞서 나온 그레첸의 부분의 지시어 ‘Cantando espress-표정을 담아 노래하듯이’에 하나의 지시어가 더 추가됨으로 표현된다. “Senza slentare- 늦춤과 완화를 제(除)하고”.
파우스트는 완성적 미(美)에 대한 소유로도 그 완전함을 느끼지 못한 채 헬레나를 떠난다.


영화'트로이' 중 헬레나


파우스트는 결국 환영 속에서 결론에 달한다. 답은 “인류애"에 있다.


“비록 안전하진 않지만 자유롭게 일하며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수백만 명에게 마련해 주고 싶네.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네. 그러면 순간을 향해 말하리라”


Presto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음악은 Prestissimo로 더욱 빨라진다. 파우스트는 그렇게 절정에 가까워지고, fff의 트레몰로와 옥타브로 폭발적  음향의 고조 속에 최고의 인식에 도달하며 마침내 쏟아낸다.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는 인류애와 자신의 영혼을 맞바꾸고 쓰러진다.



Andante sostenuto. 모든 것이 끝난 듯하다. 백발노인은 마지막 호흡과 같은 노래 속에 소멸되어 간다.  Allegro moderato. 메피스토의 모티브가 인간에 대한 조소와 성취 속에 크레센도로 고조된다. ‘시시하고 공허한 최후의 순간을 붙잡으려 시간 앞에 무릎 꿇고 백발로 모래 속에 나자빠진 가련한’ 파우스트의 영혼을 취하려 한다.



그때  천사들이 파우스트의 불멸의 영혼을 붙잡는다. 저 높은 곳의 G!

“정신세계의 고매한 일원이 악으로부터 구원받았노라.”




이 곡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하몰 소나타"라 불린다. 이 곡에 리스트가 붙인 조성 ”H-Moll(독일어)"- B Minor. G Minor로 시작된 신의 음성은 이 30분간의 긴 서사의 끝에 드디어 B Minor의 완성된 구체적 사랑의 포용으로 들려온다. 그리고 떠오르는 영생의 빛과 같은 화음, 나락으로 떨어지는 메피스토펠레스.



가정해본다. 각 생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면, 역시 그 목적이 완성되는 순간이 있으리라. 사욕의 눈으로 나는, 프란츠 리스트가 이 곡을 쓰기 위하여 존재했다고 감히 말해본다. 괴테와 리스트, 그들은 이 구원의 서사를  창조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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