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jazzified, Not classicalized
[Not jazzified, Not classicalized, just music.]
이태원의 후미진 뒷골목, 벽 한 면이 온통 뿔 달린 악마의 그림이 그려진 좁은 커피집이 있다. 퉁명스럽게 내어주는 커피가 퍽 훌륭하여 곧잘 들르는 그곳은 천장이며 계산대 옆이며, 찻잔 옆이며 시디가 헝클어져 있는데, 그 큐레이팅이 우아하다. 유명해 사모은 것이 아닌, 개인의 취향으로 첩첩히 애정과 세월에 걸쳐 모인 것들임이 명확하다. 이를테면, 한국인에게는 아는 사람만 아는 거장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라이브 음원들이나, 글렌 굴드의 바흐 골드베르그 바리에이션 1955년, 1982년 앨범이랄까. 백미는 그 옆, 나란히 놓인 재즈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이 연주 한 바흐 골드베르그 바리에이션, 평균율, 쇼스타코비치 전주곡 따위.
이쯤 되면 이 커피집주인, 진짜배기다.
악마가 마구 볶았을 것 같은 비주얼이지만, 마셔보면 세심한 고려의 로스팅으로 꽤 정교한 커피를 마시며, 글렌 굴드와 키스 자렛의 앨범을 바라보고 있자니 클래식은 무어고 재즈는 무얼까 생각하게 된다.
[클래식인가 재즈인가]
2012년 1월, 베를린의 한 국제 대회가 생각났다. DAAD(독일 정부 학술교류처) Prize 수상자를 가리는 결선 무대,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와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한국의 피아니스트인 내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나는 각기 다른 세 시대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자리에서 현대 작품으로 터키 출신 작곡가인 파질 사이의 [파가니니 변주곡]을 연주했는데, 심사과정에서 긴 논쟁이 벌어졌다. 재즈의 리듬과 즉흥연주와 같은 음향효과를 작곡한 파질 사이의 작품을 클래식 음악으로 인정해야 하느냐의 마찰이 일어난 것. 약 한 시간의 논쟁 끝, 나는 파질 사이의 곡은 클래식 작품으로 인정받았고, 나는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는 무엇으로 지어야 하는가. 더 나아간다면, 꼭 지어야 하는가의 질문을 할 수 있다. 재즈의 핵심적 특성은 즉흥성에 기반한다. 그렇다면 모든 음이 변형 없는 완전한 형태로 기보 된 것이 클래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의 여지없이 확연한 재즈의 음향과 분위기가 온건한 형식으로 놓치는 음 없이 기보 되어 있는 작품이라면, 이것은 클래식인가, 재즈인가. 그 답은 그 작품의 작곡가만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이 작품은 재즈입니까, 클래식입니까. 그리고 이 애매한 우문에 파질 사이는 현답을 준다.
‘나는 오늘의 삶에서 파생된 내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전통음악, 전자음악, 재즈 등 모든 도구를 이용하여 표현할 뿐이다’
[재즈의 뿌리는 클래식으로부터]
이런 설이 있다. 즉흥연주가 일반적이던 바로크 시대, 바흐는 왜 그리도 급진적이라고 할 만큼의 지적으로 설계된 완성된 골조의 음악을 기보 하게 되었는지. J.S.Bach는 1723년부터 1750년까지 독일의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토마스 교회에 재직했다. 당시 라이프치히에는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자가 많지 않았다. 때문에 악보에 모든 즉흥 연주로 대체될 부분까지 연주자를 위하여 기보해주었다는 것. 그의 Cromatic Fantasy 같은 곡에서 그의 즉흥적 소울을 충만히 느낄 수 있다.
이어 피아니스트들끼리 수다 떨듯 언급하는 베토벤의 재즈 소울.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의 2악장은 그의 이전 시대 클래식 음악에서 흔치 않은 리듬이 가득하다. 잠깐 예를 들자면, 대중음악을 듣거나, 재즈를 들을 때 클래식 음악가가 주위에 있다면 살펴보라. 아마 모두가 엇박에 리듬을 타고 있을 때 정박에 몸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정박이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에 베토벤은 첫박을 약박으로 만들고, 64분 음표까지 쪼개어 의도적으로 정박을 피해 가는 등의 파격적인 리듬 배치를 시도했다.
프레데릭 쇼팽으로 가보자. 쇼팽의 악보는 재즈의 리얼 북을 연상시킨다. 리얼 북은 멜로디 라인과 코드 진행만 명기되어 있는 악보를 일컫는다. 그의 음악에서 왼손의 화음에 펼쳐놓은 오른손의 카덴차적이며 즉흥적인 오나먼트들, 그리고 이 화음에 너무나 자주 침입하는 감 7화음, 증 7화음 등 돌파적 음렬은 협화음의 확장 혹은 돌파로 느껴진다. 클라라 슈만의 어머니는 쇼팽의 음악이 불량한 정서를 끌어낸다 하여 듣지도 연주하지도 못하게 했다고 하지 않는가. 쇼팽의 음악은 당시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는 클래식인가 새로운 음악인가의 논점을 던졌다. 그에 담긴 폴란드 민족적 그리움이나 철학적 의미를 제쳐두고도 쇼팽의 음악은 그 재료적 측면에서 이미 자율성의 온건한 기록으로 읽힌다.
마치 시간의 판이 반으로 접혀 이 끝과 저 끝이 맞닿아 통할 것만 같이, 형식미와 자유 미의 대척점에 서있을 듯한 바흐와 키스 자렛, 모차르트와 칙 코리아, 쇼팽과 빌 에반스는 얼마나 멋들어지게 통하는가.
어쩌면,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클래식과 재즈는 재현성과 일회성을 제하고는 전혀 다름이 아닐 수 있다.
[누구도 아닌 음악가]
N.Kapustin, G.Gershwin, E.Wild, D.Shostakovich, I.Stravinsky, M.A. Hamelin, P.Hindemith, H.Villa-Lobos, C.Guastavino, A.Piazzolla, W.Bolcom, Chick Corea, Keith Jarrett, Herbie Hancock, Fazil Say, Arcadi Volodos...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음악가들이다. 잠깐, 그들은 넘나들고 있는가?
클래식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걷는 이들이다. 잠깐, 그들은 파격을 걷는가?
재즈에서 클래식 연주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이들이다. 잠깐, 그들은 정통성까지 취하려고 하는가?
[창작이라는 것은 본래 왼쪽에서 뛰는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라고 신형철은 말한다.
그들은 이런저런 고답적인 좌우 논리가 아닌, 양자역학적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지난 7월 83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 N.Kapustin은 재즈풍에 매료된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시절부터 일생에 걸쳐 총 161개의 곡을 썼으며, 전설적 재지스트 오스카 피터슨에게 영감을 받아 재즈적 화성과 리듬을 재료로 하여 클래식의 기보법으로 작품을 남겼다. 이 중 괄목할 특이점은 그의 20개의 피아노 소나타이다. 그는 재즈의 재료를 클래식의 대표적인 고전적 양식인 소나타에 담아냈다. 이를 반인반신이라 할지, 켄타루스라 할지, 재즈라 할지, 클래식이라 할지, 아니, 그냥 음악이라 해야겠지.
나는 그것을 미국을 보는 일종의 음악적 만화경으로 들었다. … 우리의 블루스, 우리의 대도시적 광기가 서려 있는.”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에 관해
G.Gershwin은 정형적인 클래식 음악가와는 다른 직업적 길을 걸었다. 브로드웨이 송라이터로 대성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대중적이고 친숙하며, 감정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넓은 길을 택했다. 재즈적 소재는 그의 주요 도구였으며 다만, 그는 그의 머릿속 음악을 재현 가능한 형태로 기록해두기 위한 방법으로 클래식의 기보법을 택했다. 이는 재현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그의 만화경을 있는 그대로 완성도 높게 보존하는 현명한 방식이었다.
A.Piazzolla
[리베르 탱고],[사계],[망각],[아디오스 노니노]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피아졸라의 음악적 영감의 근원이 베토벤, 바르톡, 스트라빈스키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참으로 정확한 뿌리이다. 마치 삼단논법에 의거한 인과관계와 같이, 피아졸라의 구성력에서는 베토벤이, 그의 민족적 향취에서는 바르톡의 민족 음악을 근간으로 한 멜로디 라인이, 피아졸라의 종착점과 같은 탱고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탱고가 도출된다.
남미 항구로 고향을 떠나 온 아르헨티나 이주민과 노동자들의 애환이 시리게 묻어나는 그의 탱고, 그 기저에 클래식의 형식과 영감이 얽히고설켜, 방종이 아닌 날개 편 자유를 느끼게 함은 피아졸라의 실로 기막힌 레시피다.
커피 잔을 내려놓고 둘러보니 천장 어귀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시디들이 보인다.
D.Shostakovich, I.Stravinsky,P.Hindemith의 재즈 모음곡, 탱고 등이 수록된 앨범들. 나름대로 전통 클래식 음악가들의 재즈적 작품을 분류했다. 먼지가 쌓인 것을 보니 자주 찾지는 않나 보다. 하지만 이 커피집주인, 취향 한 번 확실하다. 자주 오게 되겠군. 다음번에 이 집에 올 때에는 얼 와일드의 에튀드 앨범을 하나 선물해야겠네. 아믈랭의 4월의 파리는 있으려나, 중얼거리며 커피집을 나온다.
Not jazzified, Not classicalized, just music.
휘발될 찰나의 아름다움을 악보로 잡아두고, 지성의 견고한 직조로 촘촘히 연출된 즉흥성을 맛깔 진 재즈의 화성과 리듬으로 버무린, 이 맛있는 음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어디로도 갈 수 있고, 쓸데없이 가오도 없어 뭐든 입고 벗을 수 있는,
그냥 존재, 그냥 음악.
세상이 어지럽다. 다들 치열하다. 내 육신이 이 곳에서 싸운다면, 내 영혼은 가끔 여행도 보내줘야지. 훨훨 날아라 내 영혼, 틀과 경계와 구분의 세상 위에서 훨훨 나는 음악을 들려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