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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nist Garam Cho Mar 17. 2020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고    어디에나 속했던 남자

[ Charles-Camille Saint-Saens ]

마음이 급하다.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알아보다니! 마음을 온통 혼미케 하는 진동이 아니고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나름대로 도도하게 살아왔건만, 야심 차게 연 2020년의 첫날 이 사람의 음악 앞에 녹아내렸다. 도도 함이고 무엇이고 다 던져버리고 어깨를 들썩이다가 무릎 장단을 치다가, 황홀경에 빠져 눈물을 흘리다가, 호기심에 벌떡 일어나’ 방금 무슨 소리야?!‘하며 호들갑을 떨다가, 거실을 뛰어다니며 지휘를 하다가, 하루 종일 이 남자의 음악을 듣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그의 음악을 만날 생각에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서 소중한 이불을 박차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마음의 우주에 자주 찾아갈 좋아하는 행성이 하나 더 생겼다. 아니다. 아예 그의 행성으로 이주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그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야겠지만 조금 더 독자님들의 약을 올려보자면, 나의 마음을 뺏은 그는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 시인이자 극작가, 천문학자이며 고고학자이고 또 철학자였다.

 이 다 빈치(Da Vinchi)적 천재가 태어난 곳은 1832년 프랑스요, 음악적 기반은 게르만의 것에 뿌리를 두었으나, 그 삶과 음악적 결과물로 보자면 그의 영혼이 속한 곡은 ‘문명과 자연’ 그 자체라 할 법한 사람, 고향 파리에서는 한 때 ‘독일 주의자'로, 독일에서는 ‘프랑스 극우 국수주의자’의 오해를 받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고 어디에나 속했던 사람.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사람 중 그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지만, 그의 특별함과 진가는 다소 과소평가된, 그런 애매한 위치에 있는 이 남자. 그는 가벼워지기를 두려워하지 았으며 현학과 허영을 털어 낸 ’ 시각적'음악을 만들었다. 지적인 기만을 염두에 두지조차 않음으로써 생명력이 깃든 진정한 고매함을 얻은 남자, 이 남자가 허영을 발로 무심하게 툭 차서 치워 버린 덕분에 나는 2020년의 시작을 카타르시스로, 설렘으로 열었다. 



 [샤를 까미유 생상스]

이 멋진 턱수염을 지닌 사나이가 바로 그다. 샤를 까미유 생상스. 


음악 시간에 배운 ‘동물의 사육제'가 바로 그의 작품이며, 김연아가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기한 ’ 죽음의 무도' 배경음악이 그의 것이다. 

https://youtu.be/7jEe7vzS0Sg



음악계에서는 그를 흔히 이렇게 평한다. 

‘그는 드뷔시와 라벨 등 1900년대 초반 프랑스 예술사를 지배한 인상주의를 완강히 거부했고,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의 새로운 음악 사조를 혐오하고, 인생 후반부터 독일 음악을 거부했으며 그의 음악은 재조합으로 이루어진 조합품이다'.


이는 어딘가를 가리키는 생상스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손가락 자체를 응시한 해석이다. 평은 제쳐 놓고 그의 음악을 들어보자. 

가장 먼저 머릿속을 강타하는 생각은 그는 ’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보고 느낀 것들이 넘쳐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열띤 얼굴로, 노쇄해가는 유한한 육신을 아쉬워하면서 부지런하게, 시간을 빼곡히 채워 이야기를 토해내는 그런 류의 입담꾼. 입담 좋고 재미난 경험 많은 다정한 할아버지 옆에서 옛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그 이야기 속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흡입력을 지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시공간이 바뀌고 음악의 마법으로 일궈진 세계 속에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것들을 색향미촉오-모든 감각으로 여실히 느끼고 경험하는 기분이 든다. 한 마디로 너무 재밌다! 영화가 따로 없다! 음악으로 하는 VR 체험이랄까, 귀로 읽는 소설이랄까.


https://youtu.be/iSmxBNFnvkM



그의 작품 목록만 읽어보아도 이미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 ’ 헤라클레스의 젊은 시절',‘알제리 모음곡',’ 리스본의 밤',‘결혼 케이크’,‘아프리카',’ 이집트',‘소 서정시',’ 페르시아의 밤',‘프로메테우스의 결혼식’,‘페르시아인의 노래',’ 죽음의 무도' 등. 
 

제목에서 어떠한 심상이 느껴지는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그가 주목한 것들, 그의 관심사가 드러나지 않는가? 그의 관심사를 담기 위한 형태의 얼개로 그는 때로 ‘협주곡',’ 교향곡',’ 모음곡' 등 당대까지 내려오던 전통적인 형식을 택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만의 흥미로운 플롯과 정확한 청각적 묘사로 새로운 회화주의를 그 속에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피아노 협주곡 5번‘이집트’]


벌써 며칠 째 까미유 생상스의 곡을 듣고 있다. 신선한 발상과 개운한 완성도가 조화로운 곡들이 많은데, 그중 피아노 협주곡 5번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주는 멋진 곡이다. 생상스는 겨울이면 폐병에 걸릴 것을 우려하여 따뜻한 남쪽 나라에 자주 머물렀다. 1896년 겨울도 다르지 않았다. 예순을 갓 넘긴 그는 이집트 나일강 중류의 고대도시 룩소르에 나일강의 뱃사공으로부터 ‘누비아의 사랑노래'를 듣고, 이에  영감을 받아 작곡에 착수한다. 그의 오보에 협주곡의 첫머리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아침을 연상시키는 청아함으로 이 곡은 시작된다. 유려한 피아니스트답게 그는 피아노의 전 기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다양한 색채의 아르페지오나 스케일, 리듬 등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신기할 만큼 이국적이다.


https://youtu.be/1IEYtta_ZsI



 나일 강의 물줄기의 굽이침,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사막 바람을 맞으며 옷 줄기를 흩날리며 걷는 여인들, 그 귀에서 반짝이는 금빛 섞인 장신구들, 강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와 개구리 우는 소리, 낯선 언어들이 들려온다. 이집트의 현대 화가 와일 샤키가 목격한 바와 같이 ’ 지하에 묻힌 보물을 찾으려 땅을 파고, 연금술과 영적 행위를 통해 선대의 비밀을 찾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음악 안에 돌아다니는 듯하고  피라미드와 같이 마법적이고 몽환적인 물체가 눈 앞에 현현하는 곳, 바로 이집트가 음악으로 환원되었다.

 백미는 2악장이다. 괴상해 보이는 리듬의 배열은 묘하게 당시 동양의 신비로움과 서양의 고지식함이 뒤섞인 흥을 자아낸다. 중간 즈음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리의 악기가 나올 것이다. 낯선 형태의 자일로 폰이나, 이집트의 전통 악기 이리라 예상하고 악보를 뒤적여보니, 그 소리는 피아노의 것. 이 부분이다. 





생상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오리엔탈적 5 음계의 멜로디 세 개에 악상의 균형을 mf와 pp로 배분함으로써 피아노로 전후무후한 색채를 만들어냈다. 화성과 다성음악, 교향곡적 바운더리를 모두 한시에 표현하는 피아노의 장점을 정점까지 끌어올려 ‘착시적 효과음'을 만들어낸다. 


까미유는 이 한 마디만으로 ’위대한 생상스'라 불릴 자격이 있다.


 상상과 창조가 작곡가의 운명에 부여된 소명이니. 그리고 이 소명을 지키기 위해, 그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바그너를 비롯한 독일 작곡가들을 저서를 통해 비판한 바 있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바그너리안들로부터 탄압을 받은 바마저 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포효에 가까운 창작을 해가면서 ‘문명'을 음악으로 그리고, ’ 인류'를 담아낸다.
 



 
[탐사해야 할 미지의 명곡들]


소실되지 않았음에도, 작곡가가 알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굴되지 못한 미지의 명곡들이 은하수의 숱한 별과 같이 있다. 

동시대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이렇게 말했다.

 ‘수세기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의 비밀을 우연히 알아냈을 때의 심정보다 더 아름다운 감정이 있을까? 그러한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된다면 그거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명예다.’


 모르는 인물의 비밀을 알아내듯, 유물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설레어하는 고고학자처럼 그렇게 새로운 곡 듣기를 주저하지 말고 탐사를 떠나자. 여생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커다란 빙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고 오늘은 샤를 까미유 생상스를 탐사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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