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anist Garam Cho Aug 17. 2019

악보에 담은 사랑 ; 슈만,브람스,클라라

[ Pianist 조가람의 Classic Essay ]

[로베르트 슈만의 이야기]

                          “Musical symbolism”




 클라라가 클라라 비크이던 시절, 클라라의 아버지를 피해 그녀와 비밀 서신을 주고받던 로베르트 슈만은 자신의 음악 안에 암호를 만든다.





C-B-A-G-F 로 순차적으로 하행하는 이 단순한 모티브는 슈만이 “클라라“의 이름을 부를 때 사용하는데, 가만히 그 음계를 되뇌어보면 ”클라라“라는 소리의 울림이 들리는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로베르트 슈만의 대작 ”사육제“,”Bunte Blaetter“ 등에서 “재회”의 테마로 사용된 이 멜로디는, 클라라 그리고 훗날 요하네스 브람스까지도 사용하게 된다.

모스 부호랄까, 그들만의 사유의 궤적이랄까, 혹자는 음악이 그들만의 고유 언어였다고 하던데, 1836년, 공동 작품을 계획하며 설레어하던 갓 비밀 약혼식을 올린 젊은 연인은 이 테마로 그랜드 소나타를 작곡한다.


 클라라 비크가 테마를 만들고 로베르트 슈만은 그 테마로 변주곡을 작곡한 뒤 악보 앞머리에 “클라라 비크의 테마에 의한 변주곡“이라 적는다. Vladmir Horowitz의 연주가 유명하지만, 느릿해서 그들의 감정 속을 찬찬히 거닐며 스치는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는, 그래서 사유의 산책을 할 수 있는 Gregori Sokolov의 연주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


                        “Variations on a theme
                    by Robert Schumann,Op.20“



  결혼 반대로 인해 일 년이 넘도록 얼굴도 보지 못하는 처지의 연인이었지만 그들은 넘치도록 행복했다. 그들은 공동 작업이라는 아이디어에 한껏 고무되어 아름다운 시를 찾아 번갈아가며 곡조를 붙이고, 함께 멜로디를 이어가는 등 그들만의 사랑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클라라는 일기장에 이렇게 쓴다.

 ”나는 로베르트에게 많은 것을 주지 못하는데도, 그는 늘 활짝 웃으며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나를 대한다. 그는 나의 음악을 사랑하고 우리는 함께 출판하려 한다. 너무나 행복하다. “



  많은 일이 있었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고 수많은 음악과 가곡이 탄생했다. 그리고 1853년 5월, 음악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클라라의 로베르트는 이제 매일 탁자를 강박적으로 두드리고, 문득 자신의 자녀들을 알아보지 못하며, 자주 운다.


그런 그가 옛적에 써놓은 멜로디를 다시 읊조린다. 그리고 그는 다시 운다. 클라라는 비밀 서신의 때로부터 17년 후, 약해진 자신의 천재를 바라본다. 그는 그녀의 우상이었고, 그녀가 도달할 수 없는 세상의 음악을 노래했었다.

 그녀는 전 유럽이 칭송하는 피아니스트였음에도, 그녀는 가닿을 수 없는 그런 음악을 만든 사람, 어쩌면 음악 자체였던 그 사람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알았다.


  1853년 5월 29일 클라라의 일기

 " Bunte Blaetter에 나오는 그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써 보려고 한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너무 오래 작곡을 쉬었다. "


  수년 만에 남편을 위해 펜을 든 그녀는, 몇 번이나 곡이 잘 써지지 않는 고통을 일기장에 토로하면서도 끝내 “로베르트 슈만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완성했다.


  1854년 7월 17일 출판사에 클라라가 보낸 편지

 “남편이 쓴 아름다운 주제로 변주곡을 썼습니다. 남편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이제 제가 그의 일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


  이 곡을 쓰는 일 년 사이 로베르트는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고, 구출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이 멜로디를 만들고 어딘가에서 방랑하는 로베르트의 영혼을 대신해 클라라는 그의 육체가 되어 변주곡을 쓴다.

이를 두고 계승했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될까, 대속이라 하면 적확할까.




  "조각"은 로베르트 슈만과 얼마나 어울리는가. 감정을 조각내고 해체하며 전하여 상충하는 반대 지점의 조각을 당겨 잇는다. 이 고장 나 보이는 흐름이 사실 온당한 논리로만 흘러가지 않는 우리네의 보편적 감정과 접점이 많음을 당신은 부정할 수 있는가.


인간임을 날 것 그대로, 인간 자체를 어떠한 현학적 덧칠도 하지 않고 음악으로 그려낸, 음악 자체였던 인간, 로베르트 슈만.


 로베르트였다면 응당 그리 풀어냈을, 그러한 방식으로 클라라는 그의 멜로디를 풀어나간다.
 
  감정의 파편이 만나 이루는 그의 원초적 흐름을 온전히 투사하고, 손끝으로 건드리면 사그라들 것만 같은, 여인보다도 여린 정서의 끈을 조심조심 이어나간다. 그렇게 로베르트를 재현한다. 그를 음악 안에 환영과 착시로라도 살려둔다.





  그녀는 “로베르트 슈만의 테마에 의한 변주곡”이라 이름 붙인 초판본을 붉은 리본으로 묶고 첫 장에

“나의 사랑하는 남편에게, 당신의 오랜 사랑 클라라가 다시 시작하는 작은 시도”

라 쓰고, 흰 리본으로 묶인 다른 한 권에는


 “존경하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요청에 따라, 오랜 벗, 클라라 슈만”이라고 쓴다.

로베르트의 병증이 심해짐에 따라 그녀가 그를 저버리고 브람스와 연정을 나누었다는 흔한 유추와 달리, 클라라는 죽는 날까지 로베르트를 사랑이라, 요하네스를 벗이라 칭했다. 클라라가 로베르트에게 강한 자극이 될 것을 우려한 의사는 면회 불허하는데, 이로 인해 클라라와 로베르트는 2년 반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그의 사망 이틀 전 재회했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이야기]


                       “Variations on a theme
                  by Robert Schumann,Op.20“



 그녀와 달리 요하네스 브람스는 꾸준히 로베르트 슈만을 방문한다.
  자신을 음악 세계에 들여보내 준 은인이자, 개혁적 음악가이자 문학가로 존경하던 자신의 병든 은사의 파국, 그리고 로베르트가 돌아오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생을 위한 발버둥을 치는, 흠모하는 여인을 바라본다. 21살의 청년이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터.


1854년 클라라의 "로베르트 슈만의 테마에 의한 변주곡"이 출판된 그해 여름, 그는 모든 말을 거두고 작곡에 착수한다.

곡의 제목은 “로베르트 슈만의 테마에 의한 변주곡”. 


바스러진 사랑하는 이의 파편을 끌어모아 무릎을 꿇고 조각조각 다시 이어 붙이는, 그 위대하며 가련한 여인의 비애에 자신의 발을 얹는다. 무릎을 꿇고 남은 조각을 줍는다.


 야기된 우울이 피어오르는, 산 육체 안에서 검게 타는 내부의 소멸, 혹은 영존하는 영혼의 방랑.


청년은 그것을 오선지에 옮긴다.

흠모하는 여인의 “로베르트 슈만의 테마에 의한 변주곡”의 테마를 화성까지도 그대로 차용한다.


 세 사람의 읊는 같은 멜로디.


 클라라를 부르는 암호 C-B-A-G-F로 시작되는 이 멜로디에는 로베르트의 흔적이,

클라라의 로베르트에 대한 그리움이,

 브람스의 동경과 애수가 담겨있다.


Johannes Brahms


클라라로 시작한 사색은 생과 사, 영과 육, 현실과 환상의 어디쯤을 오갈 로베르트의 실존을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해설한다. 로베르트의 영혼이 있을 법한 어디론가 쫓아가, 로베르트가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고, 듣는 것을 함께 들으며 보폭을 맞추어 거닌다.


 이상의 세계를 비행하고, 민들레 씨앗이 된 듯, 화성에서 basso continuo를 지우고 멜로디만을 공기 중 부유하도록 흩어놓는다. 다른 생애의 기억을 더듬듯 그리다가, 돌연 현재의 노골적 통증을 토로한다.


 하지만 Humor가 빠지면 결코 로베르트가 아니리라. 울다가도 광대처럼 웃는, 그 기지를 제한다면 그것은 로베르트 슈만의 영혼이 아니리라.
  그래서 요하네스 브람스의 변주곡은 숨죽여 울다가, 광야에서 가슴을 치다가, 불현 나뭇잎 위를 가로지르는 새벽의 요정처럼 장난친다.


  감히 추측건대, 진정 요하네스가 이 곡을 쓴 진정한 목적이 곡의 중간 부분에 등장한다.

요하네스는 클라라 비크의 Op.3의 테마와 슈만의 테마를 절묘하게 엮고 "이곳에서 클라라가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쓴다. 클라라와 로베르트의 만남을 음악 안에서라도 이루어주고 싶은 간절함이었을까, 요하네스의 이 작품을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오작교라 해도 될지.
 
 이 모든 묘사가 결코 과장된 문학적인 메타포가 아님을, 그의 변주곡에 귀 기울여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Daniel Barenboim의 명반이 있으니 당신 또한 꼭, 그 사색의 동반자가 되어보기를 청한다.





무언가로 보이는 유언가. 실체보다 더 커다란, 어쩌면 무한할 음악이라는 그 공간에서 그들은 만남을 꿈꾼다. 대속하고, 계승하고, 존경을 표하고, 사랑을 남기고, 위로를 건넨다.

그 중심에 클라라가 있을지, 로베르트가 있을지, 요하네스가 있을지 모를 세 순수한 영혼들은, 소리의 나무에 난 세 개의 가지였을는지.

플라토닉도, 아가페도, 에로스도, 우정도, 어떤 수식어도 충족되지 않는  그들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해본다.


 클라라에게 로베르트는, 로베르트에게 브람스는,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음악의 이상향이었다.

클라라에게 브람스는 자기 자신의 투영이었고,
브람스에게 슈만은 고마운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로베르트 슈만에게 클라라는,

사랑이었다.

이전 10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고  어디에나 속했던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