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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nist Garam Cho Oct 10. 2019

피아니스트의 추억; 베를린

[Pianist 조가람의 Classic Essay]

베를린 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 정경



베를린 국립 음대. 유수의 음악가들이 쏟아지는, 그야말로 별천지인 그곳에서 연습을 하고 있노라면 옆 방에서 압도적인 연주가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에 행여 기가 죽을까 싶어, 승부욕 많고 동시에 엄살 많은 나는 괜히 혼자 큰 소리로 화려하게 연주하며 혼자만의 경쟁을 해보는 것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 주어지지 않는 학기 중의 귀한 연습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나면, 음악은 곧잘 팽팽한 긴장과 긴박함 속에 흘러가도록 길들여졌다. 특히 연주가 많아 몇 주 간격으로 독주회나 국제 콩쿨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 때면 음악은 더욱이 투우사의 노래처럼, 게바라의 노래처럼 투쟁과 속도감, 힘으로 가득 차 버려서 전투를 하는 것인지, 예술을 하는 것인지 자문하곤 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중에는 스치는 꽃을 바라볼 수 없는 법이다.


Berlin Konzerthaus에서의 필자의 연주


 

 위로부터 주어진 예술가로서 할 일이 있는지, 예술가가 아닌 검투사로 정신없이 살다 보면 신의 계시처럼 주어지는 회기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백석의 응앙응앙 우는 당나귀 같은 울림을 알게 된다든지, 그런 그를 사랑한 80세 노인의 60년 전 사랑이야기를 읽는다든지, 물감 살 돈이 없어 동생의 돈으로 물감을 사며 가슴을 치는 화가의 편지를 읽게 된다든지, 섬세히 칼로 깎은 연필로 생각을 빼곡히 채운 교수님의 낡은 악보를 발견한다든지, 날이 좋은 날에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좋은 가곡 같은 것 따위였다. 평소 곰이라 불리는 넉살 좋던 눈썹이 짙은 친구가 슈베르트의 드라이슈트케 2번을 연주하고 난 후 무대에서 고개를 돌리고 훔친 눈물이라든지, 뚝심 있게 콩쿨 같은 것에 이지 않으며 자기 길을 가는 친구의 더운 여름날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의 2악장 연주에 흐르는 순정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나를 흔들었다.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나는 그 순간들을 모아놓고 한산한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산한 9월의 음대 로비


딱 이맘때였다. 별스럽게 지난 사람이 다 떠오르는 가을. 별 것도 아닌 일들에 생경히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날씨. 색향미촉, 모든 감각의 돌기가 유난스레 부지런한 계절 말이다.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을 가운데 두고 한 편에는 학교가, 다른 편에는  베를린 돔이 있었다. 베를린 국립음대는 10월에 개강을 했는데, 해서, 9월은 전 세계 각지로 고향을 방문하러 간 학생들 덕에 평소 늘 붐비던 학교 연습실은 쓸쓸하리만치 한산했다. 거대한 마구간으로 쓰였던 텅 빈 학교에서 연습을 하고 있노라면 잊힌 거대한 옛 성에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네가 된 기분이었다. 아침 9시 즈음 학교 옆 도서관에서 싸구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물 한 병과 과일 샐러드, 퍽퍽한 빵 몇 조각을 사들고 학교에 들어가서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고 생각을 하고, 들어보고, 곱씹어보는 그런 "시절"이라 느껴질 법한 몇 시간을 보냈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웅크리고 앉아 한 음 한 음을 더듬어가며 연습을 했다. 몇 시간을 소리를 조각해가는 그런 하루를 보내다가  해질 무렵 학교를 나와 다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다리를 터벅터벅 걸어 강을 건넜다. 그리고 지난 나의 전투에 대해 참회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본질을 잃은 예술가, 음악을 팔아보려 장사꾼으로 달려온 시간을 회개했다.



유서깊은 Berlin Konzerthaus와 베를린 국립 음대 "한스 아이슬러"


 음악을 가지고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 평균치가 높게 나와야 한다는 것인데, 결국은 콩쿨의 우승을 위해서라면 스포츠 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 실수를 없애고, 가장 평균적인 속도감과 흠잡을 곳 없는 기계적 테크닉으로 무장해 호불호로 갈리지 않을, 모두의 호를 끌어낼 중간치에 가장 근접한 평을 얻는 것이 평균 점수로 환산되는 콩쿨의 핵심 전략이다. 음악이 전문적 교육의 범주에 들어선 지 140여 년, 콩쿨은 음악인들의 전문 연주자로서의 삶을 위한 등용문이 되었고, 어느새 음악音樂은 음학이 되었다.  그리고 야생마처럼 살아오던 나도 예외 없이 국제 콩쿨 앞에서 음학의 중심에 서서 본성의 자연스러운 불균형을 깎아가며 평균치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나를 잃지 말자. 생긴 대로 하자"를 되뇌지 않으면 타고난 승부욕 때문이라도 성공한 평균치가 되어버리고 말터. 승부욕의 화살을 ”생긴 대로 “의 과녁으로 돌려놓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베를린 돔 너머 온갖 색으로 물드는 하늘을 보며 강을 건너면서, 그간  모은 도토리를 하나씩 꺼내 조물거렸다. 이를테면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내고 싶다는 식이었다. ”언젠가 분명 슈베르트 연주에서 풀피리 소리인지, 대금소리인지, 그런 바람소리를 들었었는데 “라고 중얼거리면서.




 두드려 울리는 악기, 내려가고 올라오는 것이 전부인 악기 같지만 바람 소리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한 번 잘 두드려보고, 피아노의 영혼이라는 페달을 요래조래 잘 밟아보면 퍽 다양한 색채를 만들 수 있단 말이지. 하기야 0과 1로 온갖 마술을 다 부릴 수 있는 컴퓨터도 있는데, 피아노는 흑과 백, 오름과 내림이 있고 영혼도 세 개나 있지 않은가. 아마 자주와 노랑, 청록을 비율별로 섞으면 세상의 모든 색광을 만들 수 있다지. 피아노는 배 부른 셈이다. 소프트 페달을 밟은 채로 댐퍼 페달을 반쯤 밟아 끊길 듯 안 끊길 듯, 손가락은 휘지 않을 만큼, 징검다리가 될 만큼의 고정력은 가지고 손끝으로 살포시 건반을 누르면, 달무리가 번진 정도의 명도의 소리가 나지 않을까. 이때 배의 중심은 아래로 두고 몸은 가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정도의 느릿한 움직임으로 여유 있게 내버려 두면 대나무 숲의 바람 소리가 나지 않을까.  


빛과 반사로 어우러져 붉고 검푸르고 노란, 돔 건너의 하늘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길거리 기타리스트의 바흐 토카타를 들으며 슈프레 강가에 앉아 따뜻함과 서늘함 경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싸구려 커피도 꽤 향미가 있었다. 그렇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조합하여 실재와 현상과 착시를 일으켜 분위기를 블렌딩 하는 거지. 바람과 하늘이 싸구려 커피도 맛있게 만드는데, 하물며 내 조약 한 손으로 작은 착시라도 만들어야지. 그게 내가 음악에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정직이지. 그런 것이었다.

음악을 공부한다는 것은.  


베를린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에서 바라본 슈프레강과 베를리너 돔


슈프레강가 산책 중에는 언제든 멋진 기타 연주와 마주칠 수 있다.



돌아보자면 음악을 배운 적이 없다. 이력만 살펴보자면 예중, 예고, 서울대, 베를린 국립음대 석박사의 정석의 음악 교육 코스를 밟은 듯 하지만, 어릴 적 나는 수업을 거부했다. 명목 상 일 년에 몇 번, 레슨실에 드나들었다. 그 누구도 내 음악에 손댈 수 없어, 라는 고집으로 직접 곡을 고르고 악상을 설정하고, 느끼는 대로 연주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나의 이력에는 2등이 가득하고, 1등은 없다.
 

 그 누구도 내게 이렇게 손을 쓰고 팔꿈치에 힘을 풀어서 치는 거야, 이런 부분에서는 이렇게 해야만 해, 따위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 한국에서 받은 교육 중 내가 흡수한 단 두 번의 가르침이라면 초등학생 때 한 시간 내내 슈베르트 즉흥곡 3번의 첫 두 마디만 반복해서 치며 그 소리가 아니야 다시. 그 소리가 아니야. 다시를 외치시던 선생님 덕분에 깨달은 “소리에 색깔이 있구나 “ 했던 유레카의 순간. 그리고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 대학생 언니가 이야기해 준 손등은 둥글게 정도랄까. 계란을 쥐고서 책을 읽던 기억이 난다.

 그마저도 나는 제멋대로 해석했다. 아 둥글게 하라는 건 진짜 둥글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마음껏 움직일 정도의 축을 손등에 세우라는 거구나. 그럼 꼭 둥글 필요는 없네. 하며 나만의 주법을 찾는 여정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주법은 곡에 따라 바뀌어서, 아직도 허리를, 손과 팔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며 원하는 음악을 끌어내기 위한 잘 어울리는 자세와 소리를 찾아간다. 새로운 곡을 익히는 것은 매 번 새로운 세상의 새 지도가 주어지는 것과 같으니.




그래서 내 연습은 두서없고 난잡한 에디슨의 실험실이다. 주법에 정도가 없다는 것이 나의 주법이다.

이태리, 프랑스, 러시아, 일본, 중국, 스페인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을 수업해온 결과 더욱 확신을 갖게 된 것. 피아노를 치는 방법에 정해진 정도는 없다.


 손목은 어떠해야 하며, 릴랙스는 매 순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야 하며, 이 음에서 저 음을 연결할 때에 손의 각도는 어떠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강박과 규율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케바케라 하던가. 기술의 방법은 각 부분을 이루는 구성음 간의 관계와 음악적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기에 몇 가지의 공식을 세우고 일반화할 수 없는 노릇이다.

테크닉은 음악이 목적될 때 결국 이룩하게 되어있고, 탐험의 여정을 거쳐 가장 적합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정복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세운 나의 음악 접근 방식을 확신한다. 내면에서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하는지. 퍽 재밌다. 평생 이렇게 뒤적이고 뛰어들고 튕겨져 나오는, 잦은 거절과 작은 성공들의 이 탐험을 하다 인생이 꽉 차도 아쉬울 것 없다는 자신이다.

예술은 가능한 차선이 아니라 불가능한 최선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던가.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고, 당신을 문득 멈추게 하고 얼굴 붉히게 하는 새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고, 평생 기별 없을 사랑에 나타샤는 생을 바치고, 마음 몰라주는 아들에게 이중섭은 복숭아를 그리고, 나와 같은 작은 음악가는 양의 털로 감싼 망치로 쇠줄을 두드려 소리로 시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런 음악가는 때 묻은 구두나 다듬어지지 않은 검정 머리카락 같은 것은 괘념치 않고, 하지만 음악에 맏이의 도리가 섞이고, 음악에 먹고사는 일이 개입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아침 9시, 한층 서늘한 바람에 가디건을 걸치고 싸구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피아노 앞으로 돌아간다.

 





*신형철[느낌의 공동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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