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덕이라면 한번쯤 러시아월드컵의 성지 루쥐니키로?
아르바트에서 루쥐니키 오는 동안 지하철 잘못타서 14호선을 타게 되었는데 이건 무료환승이 안되어서 한번 더 표를 끊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알고보니 14호선은 모스크바 지하철 운영구간이 아니라, 러시아철도청 운영구간.
어쨌든 이런 불상사 방지를 위해, 그냥 1일권 끊어서 5번 이상만 전철타면 이득이니 무조건 1일권 사는 게 좋습니다.
1일권, 3일권의 경우, 개찰구 들어갈 때마다 몇시까지 유효하다는 게 뜨니 (첫사용부터 24시간 or 72시간) 그 시간 내에 사용하기만 하면 어디든 무제한으로 갈 수 있어서 뭔가 돈을 버는 듯한 느낌입니다. 게다가 시내에서는 촘촘한 역 간겨으로 인해서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무적의 패스같은 느낌이예요.
(모스크바는 산이 없어서 지하철 안닿는 곳이라면 거의 참새언덕이 유일한 듯)
루쥐니키 경기장은 월드컵 개막전, 폐막전이 있었던 곳이기에 아들이 한번쯤 실물을 보고 싶어해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닥 세밀하게 준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가서 대략 주변보고 케이블카 타고 참새언덕 올라가면 더 재미있을 것 같군'
하는 맘으로 경기장으로 Go!
처음에는 루쥐니키 경기장 주변만 걷고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경기장 울타리 안쪽에서도 산책하기에 어찌저찌 사람들 동선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따라가 보니 레닌동상을 보고 오른쪽으로 짐검사 후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거기를 찾아 걸어 들어갔어요.
레닌 동상 앞에서 사진 하나 남겨주고, 다시 경기장 바로 외벽에 붙어있는 출입구를 따라 왼쪽으로 산책시작. 그러다가 실제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는 엄마와 아기가 보이길래 따라 들어가 보았어요.
예상했던 대로, 경기장 경비 아저씨가 우리에게 여기는 들어오면 안된다고 말씀하더군요. 하지만 포기하기는 애매해서 경기장에 어떻게 들어가냐고 물어봤더니, 3A번 입구로 가면 엑스쿠르시야 프로그램 (해설사 견학 프로그램) 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참 친절한 분이네"
감사해 하면서 그쪽으로 한번 가보았습니다.
긴가민가 하며 케이블카가 바라보이는 쪽 입구로 가니 역시 개방된 문이 있고 들어가볼 수 있었어요.
"오, 빙고!!"
거기 일하시는 분께 엑스쿠르시야 (해설사 견학투어) 에 대해서 물어보니 오늘 일정은 이미 마감되었다고 하셨어요.
사실 시간도 없었고 엄청난 기대를 하고 온것도 아니므로 첨에는 그냥 사진찍고 가려고 했어요. 아쉬운 마음에 기념사진 찍고 케이블카 따러 갈려고 했는데, 조금 이따가 젊은 남자분이 나오더니 영어로 더듬더듬
"해설프로그램 참석하고 싶습니까"
"오, 그럼요. 혹시 지금 표를 살 수 있을까요?"
"아, 지금꺼는 마감됐으니, 사이트 들어가서 내일꺼 결제하고 보여주면 지금 5시에 넣어줄께요."
오예, 쌩유베리머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루쥐니키 닷 알유 사이트 들어가서 카드결제하고 확인서 보여주니 명단에 올려 주었습니다.
"감사감사, 스파씨바 발쇼예" ^^
경기장 해설투어는 인당 900루블. 30분 기다려서 약 20명 정도되는 팀이 모였어요. 물론 러시아어 온리지만, 저와 와이프는 온갖 단어실력 꺼내서 열심히 들으려 노력했고, 아들은 통역기 돌려가면서 성심성의껏 진행에 방해 안되게 따라 다녔습니다.
우리는 2018 월드컵을 진행했던 경기장을 보는 게 목적이었으니 해설이야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설사가 너무 명확한 발음으로 말해줘서 70프로 이상은 알아들은 듯 합니다. 경기장 VIP 실도 가보고, 직접 경기장도 밟아보고, 이것저것 한시간 넘겨서 70분 정도 진행되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뒷걸음 치다가 얻어걸린 해설프로그램이 우리 모두에게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첨으로 국제규격 축구장 잔디를 밟아본 게 러시아 모스크바 라니...
게다가 좀 전에 경기장 들어가던 엄마와 아들을 따라서 들어갔다가 경비아저씨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모자가 바로 오늘 5시 프로그램의 해설사인 엄마였고, 아들은 엄마따라 직장에 온 5살 정도되는 꼬마였던 것. 보통 인연이 아니었답니다.
그렇게 흥미로웠던 루쥐니키 스타디움 투어를 마치고 모스크바 강을 건널 수 있는 케이블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루쥐니키 경기장에서 케이블카 가는 길은 25년 6월 현재 공사중. 그러고 보면 관광지 지나면서 모스크바 및 뻬쩨르 시내 곳곳이 공사중인 게 보입니다.
구세주그리스도 성당의 한켠도 공사중이었고, 콜로멘스코예 성당도, 상트의 피의사원 도 공사중, 이삭성당도 공사중, 레닌그라드 기차역을 비롯해서 모스크바 곳곳에 있는 사무실 및 아파트 공사 중이었어요.
특히 시내에 있는 옛 공장지대를 재개발 해서 아파트로 바꾸는 모습이 상당히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실험적인 아파트였는데 4-5층 높이로 필로티를 높게 세우고, 하부는 공원으로 상부만 아파트로 올리는 인상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어요.
겉모습만 보면 전쟁중인 나라여서 자원 공출하고, 절약하면서 어렵게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자원 부국답게 전쟁은 전쟁이고, 경제발전은 보통의 개도국 못지않게 열심인 듯한 모습이었어요.
어쨌든 그런 공사로 인해서 케이블카 가는 길도 공사중. 루쥐니키에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직접 가려고 공사장 아저씨들께 물어보니 통과 불가라고 하더군요. 한시간 전에 누군가 통과하는 걸 봐서 시도해 봤는데 말빨이 안먹혀서 그러는 듯.
수영장 건물 쪽으로 빙 돌아서 케이블카를 타러 갔습니다. 케이블카 는 의외로 저렴해서 인당 200루블.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다른 입장료보다 저렴해서 당황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스크바 방문하는 모든 분들께 '루쥐니키 - 모스크바강 횡단 - 참새언덕' 케이블카는 꼭 타보실 것을 권해 드려요. 정말 이렇게 저렴한 케이블카는 러시아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찾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남산케이블카 편도 15000원 대비 200루블 약 3400원이면 완전 이득입니다. ㅎㅎ)
케이블카 타고 너무 편하게 참새언덕 도착. 그곳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모스크바시내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는 대여섯 번 올라와 본 것 같은데 올 때마다 만족도가 있는 장소였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정복 전에 올라온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전쟁과 평화' 소설 속에 등장하기도 해요. 아마 나폴레옹도 여기에 서서 흐뭇하게 '이제 저 모스크바는 내일이면 나의 것이 되겠군.' 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저는 여기에 서서 '우리 가족과 함께 여기 서서 모스크바를 내려다보게 되다니 이런 기적같은 일이~' 라고 생각하면서 흐뭇해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스크바가 파노라마 처럼 펼쳐져 보이고, 언덕 위라서 시원하고, 사람들도 북적이면서, 또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좋았어요.
앞쪽으로 보이는 모스크바 강과 루쥐니키 경기장을 향해서 사진을 찍고, 저 멀리 보이는 고층건물들이 모스크바시티 라는 곳이라고 가족들에게 약간의 설명 추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전망대에서 시내방향이 아닌 반대쪽 모스크바 국립대 엠게우 МГУ / Moscow State University 방향으로 걸어가서 사진을 찍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그쪽으로 걸어가면 모스크바 국립대 출신의 훌륭한 세계적인 명사들의 흉상이 양옆으로 서있는 통로를 지나서 웅장한 스탈린양식 앞까지 접근할 수 있어서 사진 남기기는 매우 좋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차시간 때문에 스킵.
시내방향만 보고 사진 남기고, 빠르게 상트가는 기차를 위해 택시를 불렀습니다.
* 쓸데없는 지식 참고) 참새언덕은 예전에 레닌언덕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소련 시대의 러시아어 교재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했던 지명이기도 합니다. 지금 제가 영어로도 sparrows hills 라고 번역되기에 참새언덕 으로 명명하기는 했지만, 그 이름일 정확힌 번역인 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이것저것 찾아본 바 '참새의'언덕 이 아니라, '보로비예프'(라는 귀족이 살았던 동네)의 언덕 이 더 정확한데, 우연히 그 성씨가 참새와 같은 어근을 가져서 이런 특이한 작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한번 던져 봅니다. 다만 그 판단은 러시아어에 정통한 학자가 아니면 명확하게 내리기는 쉽지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