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혁 I Brown Mar 18. 2017

어느 봄날의 결혼식 하객

직장인 A의 이야기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오늘도 지하철에는, 백화점에는, 예식장에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A 씨는 그 속에서 홀로 였다.


수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사하고 웃고 안부를 묻는 와중에는 그 사실이 잠시 숨어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직접 예식 순서를 사회자에게 알려줄 수 도 있을 것만 같았다. 막상 정말 축하해주고 싶은 신랑 혹은 신부(때론 둘 다)와는 정작 제대로 대화 몇 번 나누지도 못한 채, 꽉 차 버린 결혼식장 뒤편에 서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아무 의미 없는 캐치업만 나눌 뿐이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벌써 몇 번째 오는 결혼식장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여기 주차권은 어떻게 받아야 하지"라고 두리번거리는 순간, 그는 능숙하게 주차권을 발급해주는 직원이 서있는 곳을 가리켰다. 놀랍지도 않았다. 이 예식장 뷔페에서 가장 맛있는 연어회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으니.

일행이 있고 없음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반가웠어, 다음에 또 보자, 라는 말과 함께 누가 떠나고 난 자리에 남는 순간 원래 이렇게 조용했었나 싶을 정도의 정적이 그를 감싸기 시작할 때면 방금 전까지 목이 아플 정도로 얘기 나누던 것이 현실이었나 싶을 정도로 고독한 물속에 잠기는 듯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다. 선배, 후배 할거 없이 그를 좋아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여서 늘 동료와 친구들을 이끌었고, 센스도 유머감각도 또 돈도 적지 않을 만큼 장착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그였기에 SNS에서도 현실세계에서도 늘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친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해외로, 누군가는 결혼으로,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먼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예전엔 친구들과의 모임이 베이스캠프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 그들은 그들만의 베이스캠프를 따로 차리기 시작했고 그와 만나는 모임은 찰나의 일탈에 불과했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터무니없지만 즐거운 상상도 함께 할 수 없었고, 이제는 너무 욹어먹어서 닳아 없어질듯한 과거 에피소드만이 90년대 추억의 명화처럼 반복해서 술자리에 올라올 뿐이었다. 더 이상의 청춘 드라마는 없었다. 한없는 외로움은 베프와의 술자리후에도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곤 했으니 사실 친구들만으로는 애초에 부족한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물끄러미 옆 테이블의 커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사랑을 피워나가는 봄날의 벚꽃 같은 커플을. 그들의 풋풋함이 부럽기도 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겪게 될 많은 사건들이 눈에 밟혀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사랑에 대한 회의주의자인 건 아니었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다녔던 그였다. 친구들은 그를 로맨티스트라고 불렀다. 그도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낭만파. 누구보다 뜨겁게 누군가를 좋아했었고, 누구보다 그런 사랑 혹은 짝사랑이 끝나면 가슴 아파했었기에. 문제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모두가 변하고 있었지만 그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먹고 무게중심이 무거워지며 사랑과 낭만이라는 들뜬 봄날의 공기보다는 좀 더 현질적인 지면에 안착하게 될 무렵에도 그는 그렇게 되려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살고, 일하는 그였지만 연애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칠 정도로 동화적이고 영화적이었다. 친구들은 겉으로는 달래고 속으로는 혀를 찼지만 그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도 분명 운명적인 상대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든, 소개팅으로 만나든, 만남의 장소나 이유는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만나면 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은 오늘의 주인공 커플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를 약 1분간 얘기 한 뒤, 예식장 직원에 의해 기계적으로 옆 테이블로 이동해 갔다. 그렇게 오늘의 공식적인 결혼식 하객 프로세스는 끝이 났다. 그는 방금 탄생한 새로운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결혼까지 올 수 있었을까. 늘 그것이 궁금했다. 아직까지 그는 만나보지 못했기에, 내 앞에 있는 이 사람과 내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특정한 조건인지, 순간의 결심인지, 그것도 아니면 신 혹은 운명의 장난질인지. 아니, 아마도 결혼할 때가 되었을 때 내 옆에 있는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지. 누구보다 예쁜 사랑을 길게 하다가 갑자기 헤어지거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하는 커플들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낭만을 사랑하는 그에게는 조금은 슬픈, 그런 결론이었지만.


어릴 적 그는 누구보다 빨리 결혼하고 싶어 했다. 삶의 안정, 그것도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무엇보다 달콤한 유혹으로 들렸다. 그래서 그 어린 소년은 누구보다 결혼하기 적당한 인재상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적당한 재력과 적당히 큰 키와 적당히 건강한 신체, 적당한 가정환경 등을 이루기 위해 많이 노력했고 또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가진 것 중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잘만 자신의 짝을 만나 결혼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그에게는 짧은 인연들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거나 부러워하거나 대단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자괴감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멋진 사람이 되었지만 사실 그가 진정 원하는 건 부족한 나와 함께 해줄 반쪽이었다. 2년째 취업준비하느라 눈물 나게 고생 중인, 늘 자신을 존경한다는 후배 녀석에게 술을 사줄 때마다, 후배는 소주 몇 잔에 취해 울먹일듯한 얼굴로 자기 챙겨주는 고마운 여자 친구 사진을 늘 보여주며 말하곤 했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정말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괴로워요."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무너질듯한 얼굴을 후배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원한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특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는 낭만파였고, 세상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멋진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도, 엄청난 부와 명예도 아닌 후배 커플과 같은 애잔한 사랑이었을 테니.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서 이게 진짜 사랑이었다고 자신할 만한 연애가 그에게는 없었다. 불타올랐던 마음들은 모두 짝사랑으로 시작하지도 못한 채 산화되어 버렸었다.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익숙했던 그에게 마음을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당황했다. 아무것도 던져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관심과 애정이 어색했다. 그는 그가 더 사랑하고 애달파야 마음이 편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았을 때 미안했다. 본인의 마음이 열정이 얼마나 큰지 이미 경험해봤기에, 자신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애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괴로워했고, 상대방에게 미안해했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 바뀌지도 못한 채, 함께하기로 기약했던 모든 약속들은 지켜지지 못한 채 달력에서 사라져야 했다.


머리를 휘휘 저었다. 이 무슨 쓸데없는 망상인가. 오랜만에 결혼식에 가는 바람에 간신히 가라앉혀놓은 물컵 속 부유물들이 다시 떠오르듯이 오랫동안 잠가둔 생각들이 떠올랐던 그였다. 벌써 친구들과는 헤어진 지 오래였고 (역시나 오늘도 "연락할게, 또 보자"로 끝났으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카페에 앉아 소위 멍을 때리고 있는 중이었다. 창밖을 걷는 사람들 중엔 두꺼운 패딩은 벗어둔 채,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나무들은 보일 듯 말 듯, 푸르름을 꿈틀거리고 있었고 바람은 예전만큼 매섭게 굴지 않고 있었다. 매번 더워졌다 추워졌다를 반복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 또 천천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저 멀리 카페를 향해 다가오는 여성도 햇살과 어울리는 화사한 색깔의 코트를 입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들어온 뒤 두리번거리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그녀의 발걸음과 비슷한 느낌으로 머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 저 혹시..."

오늘 그의 소개팅 상대였다.


봄이 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금방 가고, 또 여름 가을 뒤에 추운 겨울이 오겠지만, 어쨌든 봄이 오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는 많은 군중 속에서 외로울 예정이지만 계절은 늘 바뀌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그는 그 예정이 한번 어긋나게 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 해결책이 소개팅일지 듀오일지, 아니면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독은 늘 그림자처럼 남아있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와 비슷한 수많은 영혼들이 그러하듯, 이번 봄에는 무언가 달라져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부디 그러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괜찮아, 지금이 딱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