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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Nov 22. 2021

8. 해리성 기억 상실증

처음 정식으로 교제했던 사람과의 헤어짐이 상처가 된 부분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오히려 헤어진 직후에는 그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그전보다 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려고 애를 썼고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에 집중하며 평범한 듯 일상을 보내기 위해 노력해도 헤어짐의 후유증인지, 누군가와의 만남에 가려져 있던 이전의 내 감정이 다시 올라온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감정적인 흔들림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어쨌든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최대한 아무 일 없고 평범한 사람인척 애를 쓰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웃고 떠들다가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며 또다시 감정이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밖으로는 나름 잘 감추며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와 언니는 여전히 내 모습에서 불안함과 분노가 교차하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위태로운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언니는 내게 심리상담을 권유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상담소라며 추천해준 곳은 원래 부부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당사자가 상담을 받을 의향이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심리상담..?

‘글세..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이미 모든 일들은 벌어진 상태인데, 이미 나는 상처를 받았고 이미 나는 아픈데.. 살이 찢어지면 꿰매거나 약을 바르면 된다지만, 내 감정에는 어떤 치료를 해줄 수 있다는 걸까? 그게 가능할까?’

언니에게 처음 심리상담을 권유받았을 때는 무조건적인 반감만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나 자신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할 만큼 격해지고 점점 더 커지는 감정의 폭을 느끼며 ‘뭐라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래. 해보자.’ 싶은 생각이 들었고 상담을 받겠다고 했다.

사실, 어느 한순간 ‘이렇게 하자!’ 싶은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그저 여느 때처럼 상담을 받아보자며 나를 설득하던 언니에게 무의식 중에 알겠다는 말이 나왔다.

다시 또 찾아온 무기력함에 별 생각이 없는 상태였고, 그 순간에는 ‘그게 뭐 도움이 되겠어?’ 싶은 의심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채 나온 대답일 뿐이었다.

내 휴무일에 맞춰 예약을 잡는 것까지 모두 언니가 진행해줬고 날짜와 시간을 전해 들으면서도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생각보다 덤덤하게 상담을 받으러 가겠다는 내 모습조차 불안해 보였는지 엄마와 언니가 같기 가주겠다고 했지만 그냥 혼자 가겠다고 했다.

왜인지 혼자 가고 싶었다.

그렇게 첫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내 발로 상담소라는 곳을 찾아갔다.



상담소는 깨끗하고 넓었다.

내담자들 간에 마주침을 최소화하기 위한 듯 대기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심플하게 꾸며진 공간에 상담사의 이력과 경력이 소개된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것과 여러 가지 논문 작성 내역 및 상담 경력이 나열된 이력을 보며 ‘저런 것들이 내 상처와 관련이 있을까...’ 하는 괜한 생각도 들었다.

혼자서 이곳까지 찾아오기는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무언가 온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꿈틀 거리며 생기는 반감이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굳이 타인에게 그것도 가족도 아닌 남에게 힘듦을 토로하고 위로받고 나아가서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싫었다.

스스로 괜찮지 않은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공존하며 마음속에 작은 혼란이 일었다.

그렇게 상담사의 이력을 노려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직원이 상담실로 나를 안내했다.

상담실에 들어서니 오른쪽으로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상담사가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TV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던 사람이라 그런지 낯선 느낌은 별로 없었다.

나를 반기는 듯하면서도 뭔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적막한 공기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걱정 어린 시선이 조금은 답답하고 불편하다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마주 앉아 가벼운 눈인사를 한번 더 나누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잠깐의 침묵이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담사가 내게 첫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무슨 일로 오시게 되었나요?"


첫 질문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가벼운 실소가 흘러나왔다.

언니의 소개로 진행된 상담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기본적인 상황과 배경이 어느 정도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나에게 여기에 온 이유를 묻는 것은 ‘당사자인 내 입으로 말을 해야만 들어준다는 건가?’라는 반감이 생기며 마음의 가시를 돋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이 들었다.

‘언니가 이렇다고 하던데 맞나요?’라는 질문이 더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말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 동안 짧은 헛웃음과 수긍이 지나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면 상담사가 먼저 대화를 이끌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상담사의 눈빛은 ‘언제까지라도 너를 기다려 줄게’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읽었으면서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을 우물 거리다 어렵게 한마디를 뱉어냈다.


“제가... 어렸을 때.. 옆집 할아버지한테... 안 좋은 일을 당했어요... 성.. 적..으로…...”


한마디 한마디를 뱉어내는 동안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듯이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침을 삼켜가며 겨우겨우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상담사가 나지막이 한마디를 건넸다.


“많이 힘드셨겠네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힘들었겠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등등의 위로는 언니와 엄마에게 충분히 받았었다.

그게 다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 다짐했기에 엄마와 언니가 해주는 위로가 다일 거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받는 첫 위로는 생각보다 나를 너무 쉽게 무너뜨렸다.

대기실에 앉아 상담사의 이력은 노려보며 돋아내던 마음의 가시가 오히려 내 가슴속에 내려앉아 나를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려앉고 있었다.

상담사의 그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눈앞이 흐려지고 어느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낯선 사람에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꺼내어 보이기 싫은 이야기를 처음 했다. 그리고 상대에게 들은 첫마디는 지극히 형식적인 위로였다.

하지만, 난 그 형식적인 위로 한마디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입으로는 새어 나오는 무언가를 막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아무 말 없이 티슈 한 장을 건네던 상담사는 참지 말고 울어도 된다는 말을 했다.

그랬다. 나는 말하는 것도, 우는 것도 밖으로 내보 인적 없던 사람이었다. 소리 내어 울거나 내 감정을 밖으로 표출한 적 없었다.

울음을 애써 삼키며 숨죽여 울던 내 모습에서 슬픔을 밖으로 표출한 적 없는 것 같아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로 감정을 표현하고 토해 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웃음이든 울음이든 충분히 밖으로 내뱉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고, 단 한마디를 뱉어낸 후에 한동안 상담이 멈춰 버렸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다가, 어느 순간 적막감 속에서 내 흐느낌만 남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깊은숨을 몰아쉬며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물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상담사는 여전히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진정된 내 모습에 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나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수년이 지나고 불현듯 떠올랐지만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어린 시절 그날의 일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것에 대한 혼돈과 자책에 대해 모두 천천히 이야기했다.

내 말을 들은 상담사는 내 증상에 대해 '해리성 기억 상실증'이라는 진단을 했다.

'기억 상실'이라는 말에 조금은 놀랐었다. 그때만 해도 기억상실이라는 증상은 언니처럼 물리적인 외부 자극이나 상처로 인해 뇌를 다쳤을 때 나타는 증상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기억 상실증'이라는 것은 뇌의 문제이자 신경계 문제인 만큼 오히려 정신적인 충격이 기억 장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선택적 기억장애'라고 할 수 있는 '해리성 기억 장애' 증상을 보인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체적으로 어린 시절의 성폭행이나 커다란 사건,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며 해당 사건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거나 일부분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이라고 한다.

물리적 충격에 의한 뇌 기능 장애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기억 상실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과 외부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와 같은 반응이라는 것이다. 마치,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 하나를 머릿속의 상자에 담아 저 멀리 밀어 버리고 외면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건과 관련한 혹은 비슷한 상황, 사람, 장소 등을 인지하게 되면서 그 상자는 열리게 되는 것이고 나 역시 어느 요소 하나가 그 기억을 건드리게 된 것 일거라고 했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기억 상실증 이라니.. 

처음 기억이 떠올랐던 날,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었다.

'내가 겪은 일인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날의 일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게 미워하면서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날의 일 때문에 몇 년간 가시를 돋아낸 채 살아왔으면서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궁금해했지만, 기억이 떠오를수록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내가 만든 기억 상실로 인한 증상이었다니.. 더 허무하고, 더 허탈하고, 더 한심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상담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을 겪은 것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충격적인 사건, 사고를 겪었을 때 아주 흔하게 그리고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과 내가 겪은 일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조금은 위안이 되긴 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40분간 진행된 상담에서 한참을 울고, 한참을 내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심리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피로감이 몰려왔다. 많이 울어서 그런 거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에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몸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보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더 힘든 것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문 심리검사 결과를 들고 시작된 두 번째 상담에서 나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더 힘든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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