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도망치듯 이직을 준비했나

by 비나 Binah


예전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을 오늘 아침 폴인에서 만났다.

"회사가 어려워서요. 리더십이 부재해서요…" 퇴사할 이유는 많죠. 그런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파도가 거세게 칠 때 결정하진 않으려 해요. 조직의 상황이 안 좋을 때 나가면 내 커리어에 도움될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조직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실리적인 선택이기도 해요.

- 폴인, 전 배민 기업브랜딩팀 김유나님 인터뷰 中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벌어지는 일


두번째 위기 앞에서 나는 빨리 회사를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기울어가는 조직에 남아있는게 나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마음의 여유가 단 한 톨도 없었던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이직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기업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나자,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본래도 안정 추구형에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나인데, 이런 경험까지 하고 나니 불확실한 것들이 더더욱 싫어졌다. 조급한 마음, 희뿌연 미래, 점점 좁아지는 내 시야, 그 모든 것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하게, 치열하게 살아야 돼? 나 좀 대충 살고 싶어!


든든한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다. 그래서 ‘정년보장’이 주는 안정, 그거 하나면 다 해결될 거라 믿었다. 정확히는 믿고 싶었다. 그것만 손에 넣으면 나머지는 천천히 따라올 거라고. 쫓기지 않고 천천히 나아갈 수 있는 자유도, 경제적 안전이 보장된 울타리 안에서 여유롭게 자아탐색을 할 자유도. 내 실패를 허용해줄 보험, 한두번 떨어져도 날 지켜줄 에어매트 같은 존재가 간절했다.



정작 '내가 원하는 일'을 나에게 묻지 않은 채


동시에, 그때 나는 가장 이직하기 좋은 연차라고 하는 3-5년차였다. 주변의 대기업 이직이나 전문직 합격 소식도 유독 많이 들려왔다. 솔직히 그들이 부러웠다. 내 발밑이 불안할수록 남의 성취는 더 크고 빛나보이는 법이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번듯한 타이틀이 갖고 싶었다. 아니, 가져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안정성이든 사회적 평판이든, 적어도 하나는 보장해줄 수 있는 회사만 골라 지원했다. 초년생 때의 순수한 열정은 어느새 잊혀지고, 사회적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 가장 민감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극소수지만, 진심으로 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한 곳도 있긴 했다. 아쉽게도 그런 곳들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잠시 멈춰 나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진짜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하지만 그때 나는 그저 빨리, 높이 탈출하고 싶었다. 결국 이력서를 냈던 어느 곳에서도 최종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면접관들은 다 읽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열심히 숨기려 했던 나의 속마음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봐야만 옳고 그름을 알게 되는 시기가 있다. 주변의 조언도 들리지 않고, 직접 부딪혀보고서야 깨닫는 일들. 그래서 아프지만, 그런 경험은 비로소 내 것이 된다.

keyword
이전 03화두번째 위기 :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안의 개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