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예민한 사람의 고백
얼마 전,
엄마와 함께 한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우드 인테리어로 가득한
푸근한 설렁탕집이었어요.
주문을 하려던 찰나
저는 날카롭고 높은 직선의 소음이 귀에 꽂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놀라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들 웃으며 국밥을 먹는데
저 홀로 당혹스러워하며 눈을 굴리고 앉아있었죠.
그 소음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높은 전자음 같기도 했고
음악에 파묻힌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 소리가 안 들려? 정말 안 들려?"
엄마에게 거듭 물었지만
엄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만 했죠.
"사장님, 음악을 틀어놓는 기계에 뭔가 문제가 있어요. 전자음이 들려요."
가게 사장님은 기계를 요리조리 살피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바늘처럼 제 귀에 계속 찌르는 전자음은 결코 멈추지 않았고
견디다 못한 저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밥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헤드폰의 빈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비명에
속이 울렁거려 몇 스푼 국밥을 뜨지 못하고 가게에서 도망쳤습니다.
제가 소리에 예민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틴 버즈라는 개념을 아시나요?
틴 버즈는 10대 이하의 아이들만 들을 수 있는
높은 음역대의 주파수입니다.
인간의 청각은 10대를 넘기면
노화를 거듭하며 들을 수 있는 주파수 영역이 줄어든다고 해요.
10대만 들을 수 있는 높은 주파수를
30, 40대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저의 경우는
10대가 아닌데 그런 주파수를 들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주파수를 듣거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가 청각이 유난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같이 걷던 사람의 작은 단추가 도로에 톡 떨어졌는데
제가 그 소리를 듣고 그 단추를 주워줬던 적.
옆집에 사는 이들의 대화가
벽을 타고 생생하게 들려서 내적친근감이 생겼던 적.
(물론 가족들은 전혀 안 들린다고 하더군요)
사람 많은 곳에서
진동 소리를 알아차리고
휴대폰 주인에게 전화받으라고 말했던 적.
이런 적 많았거든요.
어렸을 때는 그저 내 귓구멍이 유난히 커서 세상 소리를 이렇게 잘 듣나 싶었어요.
하지만 이비인후과에서 청각이 아주 건강하고 정상(?) 크기의 귓구멍이라고 했으니
아마 청각 세포 자체가 예민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각이 발달한 사람이
시끄러운 세상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버티거나 덮거나.
어린 시절엔 그냥 버텼습니다.
청각이 예민한지 몰랐으니 그냥 살았던 거죠.
운동도 해보고 집중력 향상된다는 노래도 들어보고..
이것저것 시도해 봐도 결과는 똑같더군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사람들의 목소리가 몽땅 귀로 들어와서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로기 상태가 돼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좀 더 커서는 아예 귀를 덮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워크맨의 소리를 크게 키워서
다른 소리가 아예 안 들리게 만들면서 공부했죠.
때문에 저희 엄마는
귀청 떨어질 만큼 음악을 크게 들기 좋아하는 아이로 저를 기억합니다.
스무살 무렵에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적 있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 열람실이 너무 시끄럽고 부산스러워서 싫어했는데
서울대 도서관의 일반인 열람실은 정말 극도의 고요함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종이 넘기는 소리, 발자국 소리, 기침 소리.
소음 데시벨 자체가 다른 열람실에 비해 1/10도 안되었죠.
모든 사람들이 소음 적게 내기에 대한 합의가 되어있는 느낌이랄까?
이 도서관에서 공부했을 때
시험 결과가 정말 잘 나오더라고요.
그때서야 조금 알았어요.
청각이 예민한 사람은 소음을 무시하거나 다른 소음으로 덮어버리는 게 답이 아니라
정말 고요한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7년 전쯤!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저에게 도래해서
세상을 조용히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어요.
애플스토어에서 처음 경험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정말 충격적이었죠.
머리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시끄러웠던 세상이
이어버드 하나로 이렇게 조용해질 수 있다니.
입만 벙긋벙긋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느꼈던 그 지극한 평화라니.
저는 이 경험 이후로
당장 노이즈 캔슬링 이어 버드를 구매했습니다.
이어버드 덕분에 집중력도 높아졌고
스트레스도 줄었고
사람들 속에서 불안한 느낌도 많이 없어졌어요.
그러나 이어버드로는 미세한 소음까지는 만족스럽게 잡을 수 없었고
작년에 BOSS 헤드폰을 구매해
진정한 소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끼면서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보다 작은 음량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귀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청각이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스트레스를 좀 덜 받고
조용한 공간에서 스스로를 다독거릴 수 있었을 텐데.
요즘은 그런 아쉬움이 남긴 해요.
저는 최근 발매된 조성진의 Ravel 독주 전곡집을 즐겨 듣고 있어요.
제가 추천하는 트랙은 아래 두 영상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https://youtu.be/jJjDBuxhJsI?si=9jX4s0bHlBPFI1jJ
https://youtu.be/UIXe7H52UkA?si=4NbFjvwMaL6yhsZ_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음들만 따서
구슬로 빚은 것만 같은 조성진의 연주.
당신이 고요 속에 있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