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다고 오늘도 우겨본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스스로가 평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자람없이,
뒤쳐짐없이,
튐없이.
조용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스스로가
참 평범하지 않구나, 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스스로를 결코 씨네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개봉하는 대부분의 영화를 다 본 것도 모자라
옛날 영화의 계보까지 다 안다던가.
여행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인도 오지부터 호주까지 여러 국가를 모험하듯 다녔다던가.
음식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도앱에 수십, 수백개 맛집 즐겨찾기가 등록 되어있고
인스타그램에는 음식 사진으로 가득하다던가.
상대가 쿡 찌르면
검색창처럼 이것저것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마구 쏟아낼 때라던가.
세상 속 재밌는 곳을 가봤고 온갖 것을 다 해본 나.
아직 가보고 싶어하는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
낯선 사람들에게 이런 스스로를 내보일 때마다
움츠러들곤 합니다.
한국 문화의 특성상
대화를 위해 꺼내놓은 내 경험에
유난떤다, 잘난척 한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많고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오판하는 경우도 많아서
대화에서 겸손의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죠.
근데 솔직히 좀 답답하고 지겨울 때가 있어요.
영화, 책, 미술, 음식, 여행, 시사, 정치, 역사까지.
이 모든 것을 풍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드물다는 사실에 슬퍼서요.
대화의 희열은
지식의 깊이에도 있지만 너비에서도 나오거든요.
저는 무언가를 참 잘 잃어버립니다.
엊그제는 장갑 한 쪽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잃어버린만큼
물건을 잘 찾기도 합니다.
아, 그래서 잃어버린 장갑은 금새 찾았습니다.
잠시 들른 카페에 떨어뜨리고 나온 게 분명했거든요.
조심성 없다고 지적받던 어린 시절.
이렇게 계속 물건을 잃어버릴 거라면
그냥 물건을 잘 찾는 능력을 키우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죠.
추리 소설을 읽고
시간을 되짚어보는 능력을 키우고
스스로의 행동 습관에 일관성을 만들고 보니
잃어버리는 물건을 찾는 데에는 도가 텄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단점을 없애지 말고
그저 그것을 상쇄할 장점을 키우면 되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삽니다.
저에게 돌아오지 않는 물건이라면
제 주인을 찾아 떠났다고 생각하는
여유까지 키우면서요.
제가 요즘 가장 기다리는 것은
임윤찬의 피아노 공연과
봄에 다시금 방문할 제주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최진영 작가의 산문 <어떤 비밀>입니다.
요즘 쓰고 있는 소설은
문어와 고래, 그리고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이네요.
오늘 눈은 어쩐지 따뜻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