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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연애

처음하는 외국인과의 연애

by 유조



외국인과의 연애는 아직 낯선 이야기다.


유튜브에선 국제커플의 이야기가 흥하고

TV에선 가끔 파란눈의 백인이 동양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조명하지만

주변에서 보긴 어렵다.


아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존재와 연애를 하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테다.








그런 내가

현재 외국인과 연애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둘의 모국어는 다르고

우리는 제3의 언어인 영어로 소통을 한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하는 연애란

정말 많은 고생이 따른다.


그를 처음에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전혀 다른 영어 액센트와 표현법에 나는 적잖게 당황했고

그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데에 일주일 넘게 걸렸다.


서로가 왜 그런 표현을 하는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고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속상해했다.



문화적 차이도 컸다.


매일 시시각각 연락하고 표현이 많은 한국 연애에 익숙했던 나는

무던하고 실용(?)적인 연애를 한다는 그가

좀처럼 이해가 안됐다.


"한국 연인들은 하루에 70번 넘게 메시지를 한다는 거 알아?"

라고 그에게 말했을 때,

그는 놀라면서

'만나서 하면 되잖아. 메세지로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아?'라고 답했다.


메시지를 하는 것 자체가 애정의 표현이라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참 막막했더랬다.








나는 나의 애착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불안정 애착으로 인해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매번 상대를 시험하려했다.


상대를 위해 지나치게 헌신하고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실망해서 금방 마음이 식었다.


이번 낯선 연애에서

나는 나의 불안정 애착에 대한 여러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사람과 하는 연애는

불안정 애착자에게 공포 그 자체다.


시차 때문에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사고가 났거나 아픈 상황에는 달려갈 수도 없다.

서로가 일하는 시간에는 연락이 잘 안되니

답장은 늦어지고 서운한 감정만 쌓인다.


문자로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

나에게는 너무 버겁다 말하니

그는 생각에 잠겼다.


얼마후 그는

이런 나를 위해 일을 포기하고

몇 주간 한국에서 머물렀다.


가벼운 활자들 속에 속상했던 마음이 많이 다독거려졌고

나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그와

많은 이야기, 여행, 산책을 했다.


그 시기에 그에게서 느꼈던 건

연인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가족으로서의 사랑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난 네 곁에 계속 돌아와서 머물거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

진짜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다시 일을 하러 해외로 나가던 날,

그는 나를 안으며 불안해했다.


무던하고 표현 없는 사람의 불안은

되려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당장 곁에 없어도 괜찮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 충실히 살아갈거고

그는 곧 다시 내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


내가 이제서야 깨달은 이 낯선 연애의 본질이다.


그는 나에게 'Like'라는 단어를 쓰다가

최근에 'Love'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의 차이는

상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의 크기 차이일까.



사랑은 일관성있는 행동의 결과물이라는 걸

새롭게 알아간다.


연애가 아닌 '사랑'에 가까워지는 관계.

이번 연애에서 나는 그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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