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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함에 대하여

불안에 갇힌 스스로를 바라보며

by 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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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기억

이십 대 후반에 서류, 필기, 세 번의 면접이라는 입사 시험 단계를 무수히 겪었다. 작은 실수에도 원점으로 계속 돌아가버리는 항아리 게임처럼 모든 입사 시험은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면 좌절과 고통이 배가 되어 내 영혼이 빨래판에 벅벅 문질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불합격자라는 불명예만 얻었고 실력은 증명했으나 누구도 나에게 축하해주지 않는 나날이 계속됐다. 그 시기를 어쩌다 운 좋게 넘겨내고 직장을 얻고 밥벌이를 하는 지금도 그 고통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다섯 번 넘게 이직을 했고 아마 수백 개의 회사에게 거절당했다. (사실 나는 어제도 면접 탈락 소식을 전달받았다.)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는 게 어른이라던데, 이 허망함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다. 허망함은 찬 기운처럼 마음을 아리게 하고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난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도전을 멈추면 이 허망함은 사라질까.


나는 계속 무언가를 고치고 있다

인생에 완성이라는 건 없겠지만, 나는 늘 인생에서 무언가를 고치고 싶어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 방을, 내 커리어를, 내 몸을 고치면 기분이 나아졌다. 내 삶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부모님은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내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쪽으로 달려가는 일이 계속됐다. 그래서 잘못된 방향으로 결코 달리고 싶지 않았다. 조금씩 고쳐서 가장 나은 곳으로 스스로를 인도하고자 했다. 미래의 내가 가장 좋은 곳에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강박에 가까울 만큼 삶 속에 고칠 게 없는지 살폈다. 불안은 그렇게 늘 내 마음 끄트머리에서 눈을 부릅뜨고 서있었다.


불안에 갇힌 나

어디선가 읽은 내용으로는, 불안은 생존하려는 노력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스물네 시간 내내 불침번을 서는 마음이다. 문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안정된 상황에서 나의 마음은 계속 불침번을 선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놓는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한다기보다 상처받아도 괜찮기 위해서 대비를 해놓는 사람. 배수의 진을 매번 치는 사람의 마음은 늘 전쟁 중이다. 그래서 어쩐지 때때로 피곤하고 예민해 보인다. 무던해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늘 바쁘다.


왜 그렇게 사느냐는 물음

얼마 전 제발 이제 그만 쉬라는 말, 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놀고먹을 나이는 아닌데, 과하게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몇 년 전까지 온몸에 들어간 힘을 빼는 법 조차 몰랐던 나이기에, 좀 놀라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도대체 얼마큼 물크러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단단한 돌이 되어 이제껏 굴렀는데 어떤 모양으로 삶을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답 없는 것을 또 고민해본다.


매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

작은 강아지를 보며 헤헤 웃는 나.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나. 선선한 날씨에 행복을 느끼는 나. 씨앗을 심고 자라나길 기다리며 설레하는 나. 허망하고 불안한 마음결 사이사이에 그나마 남아있는 평화로운 순간들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허망함은 마음의 고개를 자꾸만 떨구게 하는데, 나는 굳이 굳이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살고 싶어 한다. 잘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해서 예쁜 그릇에 담아 먹고 낯선 길에 발길을 돌려 구석에 핀 꽃을 찾는 노력은 사실 있는 힘을 짜내서 해야 하는 것들이다. 삶은 허망해도, 가끔은 기쁘고 싶다.


네가 나를 좋아해줬으면

내 삶의 기쁨은 무엇인지 더듬어보면, 결국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가끔 뜬금없이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해줬으면 좋겠고 '난 네가 이래서 좋아'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으면 어쩐지 내 삶이 멀쩡해보인다. 겉은 그럴듯한 것들로 둘러싼 내 삶도 사실 당신들로 인해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 사진: 박기평 작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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