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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Mar 02. 2018

타임머신을 타고 온 할아버지

골목길 안의 작은 세탁소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골목은 시장 구석구석을 잘 아는 사람들만이 이용하는 길이었다.

시장 교차로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골목. 그곳은 많은 상점들이 자리 잡은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 옷이나 그릇 가게 등 물품을 넣어 두는 창고들이 많았고 간혹 작은 악세 사리들을 도매로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골목에는 주인 없는 개들이 먹을 것을 찾아 구석구석을 살폈다. 간혹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개들은 어김없이 꼬리를 내리고 눈치를 보며 도망가곤 했다. 인도 개들의, 주인 없는 개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발걸음을 더 옮기면 가톨릭에서 설립한 고등학교의 낡은 정문이 있었고 작은 정문 사이로 더 작아 보이는 운동장에서 휴식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더 걸어가면 내가 자주 가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재래시장이 나왔다.


재래시장으로 가는 골목의 왼쪽에는 작은 세탁소가 있었다. 어디에도 세탁소라고 이름을 붙일 만한 모습은 없어 보였다. 낡고 어두컴컴한 가게에는 제대로 된 문도 없었고 간판도 없었다. 그저 길고 하얀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 한 분이 옷을 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매번 그 길을 지나갈 때면 나는 뜨겁게 타고 있는 아궁이 그리고 그 위에 올려놓은 쇠 다리미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오래 이 일을 하고 계신 걸까? 요즘 전기다리미도 많은데 저렇게 화롯불에 달구어진 쇠 다리미를 쓰는 이유는 뭘까? 이곳에 옷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꼭 100년 전에 살던 할아버지가 소중히 아끼던 가게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이 골목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그날은 재래시장 그릇가게 주인이 내가 필요한 큰 냄비를 물류 창고에서 찾아주겠다며 나를 물류 창고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 물류 창고는 할아버지의 가게 바로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난 냄비를 사러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할아버지의 가게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할아버지보다 좀 어려 보이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가게 앞에 낮은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그 가게에 손님이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한 날이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은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께 궁금한 것도 많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할아버지가 웃고 있는 모습, 할아버지가 일하고 있는 모습만 핸드폰에 담았다.

왠지 내가 궁금증을 풀어놓자마자 할아버지의 타임머신 기계가 재 작동해서 할아버지를 100년 전 과거로 돌려놓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낡고 오래된 세탁소여도 좋았다. 아궁이 화롯불에 달궈서 사용하는 무거운 쇠 다리미도 괜찮았다. 누군가의 미소가 들어간 세탁소라면 말이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진짜 행복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행복은 내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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