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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ug 15. 2016

엉망진창 문구점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행복

나에게 문구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쁘고 힘든, 때로는 지치는 삶 속에 서점과 문구점은 내게 상큼한 레몬주스 같다.

깨끗한 문구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처음 느껴지는 종이 냄새들, 알록달록 갖가지 색깔들의 펜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이어리와 공책. 문구점의 그 상큼한 향기와 진열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물건들은 나를 설레게 한다.

계획된 것들이 잘 되지 않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다이어리나 공책을 산다. 그리고 함께 쓸 수 있는 펜들도 함께.

새로운 공책에 글을 써 나가다 보면 나는 새로운 힘을 얻고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꼭 새해를 맞이하는 12월의 마지막 밤처럼.

인도에 온 후로도 큰 도시에 살 때에는 그런 문구점에 가는 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이사를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여기에는 문구점이 없죠?”

“아니 여보, 문구점이 없긴 왜 없어. 여기 널린 게 문구점인데.”

“알죠. 문구점이 있다는 건. 내 말은 깨끗하고 좋은 문구점 말이에요.”

“기다려봐. 내가 좋은 곳을 알려줄게. 거긴 모든 게 다 있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다시 말하는 남편.

“정말 이라니까. 따라오기만 해.”  

여느 인도 부부처럼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날 죽여 줍쇼’ 하고 길 한 복판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염소들을 지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고등학생들 무리를 지나서 엉거주춤 길 가에 서 있는 소를 지나서 시장에 도착했다. 그가 말한 문구점은 어디 있는 걸까?

한참 좌우를 살펴가며 문구점을 찾고 있는 나를 지나 바로 앞에 있는 고물상 점으로 들어가는 남편.

설마 했던 그 고물상 점이 남편이 소개해 주고 싶었던 문구점이었던 것이다.

낡은 물건들이 진열된 문구점

좁아서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가게. 오른쪽 낡은 나무 진열대 에는 소복이 먼지 쌓인 촌스러운 수첩들과 천 필통들, 그리고 천장에 달려 있는 수많은 펜들, 계산대조차도 수많은 공책들과 물건들로 어지럽혀져 있는 곳.

‘도대체 여기서 뭘 판다는 거야. 고물상 점도 이 정도는 아니겠네.’

여기서 스트레스를 풀기는커녕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만 같았다. 내가 그 엉망진창인 문구점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관찰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신나게 물건을 구입했다. 정리되지 않아 보이는 문구점에서도 주인과 종업원은 얼마나 물건들을 잘 가지고 오는지.

 그 가게에서는 아저씨가 가져오는 것이 그곳의 최고의 물건이었고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산 물건들을 보며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건을 파는 아저씨

그렇게 고물상 문구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더 좋고 깨끗한, 또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만한 문구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쓸 것들이 필요할 때면 그곳을 찾았다.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구경하는 멋진 문구점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

꼬마 아이를 옆으로 안고서는 큰 아이를 위한 공책을 사는 엄마. 손자 손녀를 위해 도화지를 사는 할아버지, 샀던 물건이 좋지 않다며 다시 바꾸는 아저씨까지.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 가게를 떠날 때 면 꼭 검은 봉지에 담긴 물건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오랜만에 나온 시장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제대로 샀다는 행복감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좋은 문구점을 갔을 때는 화려한 물건들에 내 시선이 고정되었다면 이곳 엉망진창 문구점에서는 나의 시선이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허름한 옷차림에, 그들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도 그곳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촌스럽고 오래된 골동품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 같은 이 문구점에서 난 사람들을 만나는 행복을 느꼈다.

흘러나오는 노래도 없고, 진열해 놓은 예쁜 공책도 없는데도 말이다.

문구점을 찾은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이 엉망진창 문구점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를 보며 또 한 번 웃는다. 행복 바이러스는 이렇게 쉽게 전염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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