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거리는 시장 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오는 대학 자원봉사단을 위해서 이것저것 사려는 목적도 있었고 아이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물고기를 사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이곳 실리구리까지 나오는 길은 여전히 멀다. 자동차로 3시간. 웬만한 건 시골 장에서도 해결이 되건 만 오늘은 특별히 큰 도시 시장으로 나왔다.
홍콩 마켓.
중국 제품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동대문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곳에서 못 구하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여러 가지 제품들이 많다. 재질은 장담할 수 없으나 가격은 장담할 수 있다.
남편은 한국에서 오는 대학 자원봉사단이 필요한 물품들을 사느라 다른 방향으로 가고 두 아들들과 나는 시장 구경을 했다. 물고기 가게에서 금붕어 두 마리를 샀다. 여기서 집까지 3시간이 걸린다고 가는 동안 물고기가 죽지 않겠냐고 묻는 우리에게 아저씨가 말한다.
“32시간을 봉지 속에 있어도 죽지 않으니 걱정 말아요. 내가 공기 많이 들어가게 묶었으니까.”
허풍끼 넘치는 아저씨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웃으면서도 우리는 주황색 금붕어를 샀다.
아이들은 금붕어가 그리도 좋은지 걸어 다닐 때도 보고 또 본다.
남편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앉아 그를 기다린다.
열심히 릭샤를 끄는 아저씨들, 내 눈에는 영 촌스럽게만 보이는 인도 옷들을 이것저것 뒤척이며 고르는 대학생들,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일꾼들,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자전거로 싣고 다니며 파는 아이스크림 아저씨까지.
시장은 모두가 바쁘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한참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 시장 구경을 하는데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바쁘게 걸어 다니는 거리 한쪽에 여러 사람들이 서 있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있나? 여러 사람들이 서 있는 곳 안쪽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망가져서 못 쓸 것만 같은 우산을 실로 한 바늘 한 바늘 꿰매고 있었다.
우산이 망가지면 새로 사면된다는 나의 관념을 아주 강하게 깨는 장면이었다. 우산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도 다양했다. 회사원처럼 보이는 젊은 청년 하며 아이를 손에 잡고 온 아주머니,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산을 고치는 아저씨들. 모두가 우산 고치는 할아버지 주위에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산이 고쳐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에서도 우산은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팔리지만 이 사람들은 우산을 고쳐 쓰는 것이 생활이 된 듯했다.
수없이 내 손을 거쳐 간 여러 가지 모양의 우산들이 생각났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깊이 생각했더라면 너희들을 좀 더 오래 썼을 수도 있었을 텐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난히 시끄럽게 들리는 경적 소리들. 12억의 인구가 사는 나라인 만큼 어딜 둘러봐도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산을 고치는 할아버지의 모습만이 내게 들어왔다. 빨리빨리 바꿔 바꿔가 만연한 내 삶 속에서 시간을 들여서 우산을 고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은 남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추억을 수선하러 온 낭만 가들 같았고 한 바늘 한 바늘 꼼꼼하게 우산을 고치는 할아버지는 우산 수선의 장인처럼 보였다.
널찍한 전통가옥 아래에서 멋진 한복을 입고 무엇엔가 열중하는 텔레비전 속의 한국 장인들의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복잡한 시장 안에서 자신만의 솜씨를 여유롭게 사람들에게 전하는 할아버지는 명색이 최고의 수선 장인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아버지를 보다 보니 어느새 남편이 일을 마치고 와있었다. 아이들은 좀 전에 산 금붕어를 아빠에게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다.
난 시장에서 만났던 우산 고치는 장인과 그 주위에 모여 있는 낭만가들의 모습을 잊을까 아쉬워 몰래 사진을 찍는다.
하루를 바쁘게 지내는 나에게 주는 쉼표 같은 여유로움. 오늘 난 그 여유로움을 간직한 채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