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 마을. 내가 살던 곳에서 버스 타고 한 시간 오토 릭샤 타고 30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동네로 들어가는 먼지 나는 비포장 길을 달리다 보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아주 작고 낡은 초등학교가 나왔다.
학교라고 해 봤자 점심때쯤 모여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밥과 카레를 제공하고 짧게 공부하는 것이 다였다.
보고만 있어도 빨려 들어갈 것 만 같은 아이들의 눈
며칠은 안 빤 것 같은 교복들을 입고 낡은 가방을 메고 맨발로 학교를 다니는 이곳 아이들을 보는데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지저분함 속에서 빛나는 아이들의 눈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꾸 중독될 때쯤 우리는 그곳에 도서관을 계획했다.
영어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어 책이라니. 괜찮은 생각일까? 고민도 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독서는 사치였다. 학교 교과서도 제대로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으리라.
이 도서관이 아이들의 삶을 도대체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을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작은 즐거움의 공간이라도 마련해 주자는 그 목적 하나로 시작했다.
동네 청년들과 함께 그린 도서관 벽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도서관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남편과 시작한 페인트칠에 마을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즐거운 분위기로 벽화를 그렸다.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그림을 가지고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왠지 우리가 미술작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렴. 누가 뭐래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이 구루 파티 도서관의 벽화를 그리는 특별한 미술작가들이었다. 너무 뜨거운 태양빛에 남편에게 잠시 숙소에 가서 책들을 정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방으로 왔다.
작은 방 안쪽은 며칠 전 주인이 수확한 곡식 포대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책 박스들.
박스를 열어가며 책 이름들과 종류를 분류하면서 도서관에 진열할 순서대로 책을 정리했다. 한참을 정리하는데 4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꼬마 한 명이 내 앞에 앉아 있지 않는가?
“와나껌! 땀비!(안녕. 꼬마야.)”
짧은 내 인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때부터 그 꼬마 녀석 뭐라 뭐라 따밀어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따밀어 실력이 아주 짧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꼬마야. 아줌마가 이거 책을 정리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너무 방해는 하지 말고. 알았지?”
꼬마 녀석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책을 만져 대기 시작한다.
행복한 미소를 선물한 꼬마 손님
숫자가 쓰여있는 책, 시간을 가르쳐 주는 책, 과일 이름을 가르쳐 주는 책들. 어쩌면 자기 수준에 꼭 맞는 것들을 펴보는지 모르겠다.
‘요 녀석 내가 책 정리하고 있다고 만지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도 자꾸 책을 섞어 놓네. 그냥 바깥에 나가 있으라고 할까? 이걸 어떻게 해?’
내가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그 꼬마는 아주 신이 나서 책을 본다.
내가 듣든 말든 나를 보며 뭐라 뭐라 이야기한다.
가끔 자기가 아는 염소나, 소, 강아지 같은 사진들이 나오면 너무 반가운 듯 까르르르 웃기까지 한다.
나의 업무 장소를 방해하러 온 것만 같은 이 꼬마 녀석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내가 졌다 졌어. 그래 어차피 네가 볼 책이니 맘껏 봐라. 맘껏.”
능청스럽게 날 보며 웃는 그 꼬마의 웃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지우개가 되어 내 마음에 삐뚤 하게 그려져 있던 짜증과 피곤들을 요술처럼 싹 지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