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미 Jun 01. 2016

집시들의 행복

가진 것이 없다고 느꼈던 그들의 소소한 행복

유난히 내 손을 무는 모기 때문에 잠에서 깼다. 새벽 1시.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던 새들도 거리에서 들리던 개 짖는 소리도 모두 잠잠하다. 조용한 귀뚜라미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전기가 끊겼다. 또 비가 오려나 보다. 이곳은 비가 몰아치기 직전이면 꼭 전기가 끊기곤 한다. 누군가는 전기 공단에서 안전을 위해 일부러 비오기 직전 전기를 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자주 전기가 끊기기 때문에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역시 비였다.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 천둥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려니 기분이 묘하다.

비 오는 소리를 들을 때면 그리고 전기가 없는 캄캄한 곳에서 촛불 하나 의지하고 있을 때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이 든다. 어두움은 그리고 촛불은 왠지 사색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오늘은 유난히 며칠 전 기차역에서 본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마중하러 기차역으로 갔다. 뭐 예상했듯이 기차는 20분 정도 지연이 되었고 난 플랫폼에 앉아 남편이 탄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이어서 인지 날씨가 좋아서 인지 기차역 뒤쪽으로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탄 산줄기가 또렷이 보였다. 차 타고 1시간 반이면 부탄이라더니 정말 가깝긴 가까운가 보다. 인도에는 산보다는 평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끔 이렇게 보이는 산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한참 장엄한 산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반대편 플랫폼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들과 엄마가 눈에 띈다.

어디를 향해 떠나거나 누구를 마중 나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지저분한 옷차림과(적어도 한 달은 빨지 않은 듯 때 묻은 옷) 폭탄 맞은 것 같은 머리 모양(적어도 일주일은 머리를 감지 않고 지낸 듯한 머리)을 하고 있는 그들은 집시들이었다.


기차역 주위에 터를 잡고 있는 집시들


인도에서 집시란 아주 가난한 부족 중 하나이면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당나귀에 수레 같은 것을 연결해서 한 달이면 한 달 일주일이면 일주일 장소를 옮겨 가며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부분 기차역 옆이나 들판에 얇은 천으로 텐트를 치고(사람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의 낮은 텐트) 남자들은 가까이 힘든 일들을 도맡아서 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를 뒤져 먹고사는 부족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철학이 있어서 인지 절대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는다. 그 집시 부족이 이곳 기차역 근처에 자리를 잡았나 보다.

지저분한 머리에 찢어진 옷을 입은 두 아이들이 신이 났는지 엄마 주위를 맴돌며 뛰어다닌다. 엄마는 이미 품속에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두 아이를 보고 있는 듯했다. 옷도 찢어지고 얼굴도 꼬질꼬질한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기차역을 뛰어다닌다. 조금 지나니 그 엄마가 아이들을 의자에 눕혀 놓고 머리에 있는 이를 잡아주기 시작한다. 여행객들이 앉으라고 만들어 놓은 의자가 자기네 침대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당당하게 말이다. 목적지로 떠나려는 사람들과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복잡한 기차역 안에서 집시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과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엄마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엄마들의 모습이었고 찢어진 옷을 입고 맨발로 뛰어다니며 엄마에게 장난을 거는 아이들의 모습은 불쌍한 집시 아이 라기보다는 해맑은 천사의 모습이었다.


힘들어 보이는 그들의 삶 속에서도 그들만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바쁜 생활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집시 여인과 아이들의 모습은 조급함으로 또는 걱정으로 달궈진 나의 삶을 식혀주는 빗방울 같았다.

다 가진 내가 제대로 가지지 못한 그들을 동경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내가 가진 것이 전부가 아니고 가지지 못해 불쌍하게 여겼던 그들의 삶이 오히려 가치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탄 기차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기차에 가려진다. 좀 전 까지만 해도 기차가 늦게 온다고 불평하던 나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는 기차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