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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Jul 17. 2016

그녀의 이름 하시나

만남이 주는 행복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이사 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집 뒤에 텃밭을 만들어 놓고 대나무와 그물로 멋지게 울타리도 만들어 놓았는데 자꾸 이웃집 염소들이 우리 텃밭의 야채들을 다 먹고 있던 때였다. 그날은 우리 텃밭의 피해를 막고자 텃밭을 침범한 염소 두 마리를 간신히 잡아두었다. 주인이 오기만 하면 제대로 따져 줄 테다 다짐을 하고 있었던 그날, 그녀가 우리에게 왔다.


푸석푸석한 머리카락들, 정돈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는 머리 스타일, 아무래도 몇 주일 머리를 감지 않은 듯 보였다. 이빨은 툭 튀어나온 뻐드렁니 인 데다가 얼굴은 몹시 찡그러진 인상이었다. 말 그대로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보기엔 힘든 얼굴이었다. 남편과 함께 그녀에게 따졌다.

“우리가 심어놓은 상추를 다 먹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염소를 묶어 놓으면 되는데 왜 풀어놔서 우리 텃밭을 다 망가지게 합니까?” 그녀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듣지 못하는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소리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달랐다. 괴성 소리 같았다. 그녀는 언어 장애인이었다. 화가 난 그녀는 가지고 있던 커다란 칼자루(인도에서 흔히 코코넛을 자를 때 사용하는 자루)를 남편에게 휘둘렀다.

이성을 잃은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우린 일단 후퇴했다. 순순히 염소 두 마리를 돌려주고 난 뒤 우린 그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뒤로도 그녀는 자주 우리 집 근처를 다녔다. 낡고 때 묻은 사리를 대충 입고 머리는 풀어헤치고 다니는 그녀를 볼 때면 가끔은 소름이 돋았다. 우리 집 강아지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짖지 않다가 그녀가 지나가면 도둑이라도 본 듯이 짖어댔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존재였다.     

며칠이 지난 후 시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손을 모으고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고 있었다. 비록 좋지 않은 기억이 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시장에서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가지고 있던 얼마의 돈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도 날 알아봤던지 아주 반가운 얼굴로 고맙다고 내 머리에 자기의 손을 얹었다가 다시 그녀의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인사한다. 힌두교의 특별한 인사법이다. 자신을 도와준 나에게 축복을 빈다는 의미였다.


시장에서의 만남 이후로 그녀를 만날 때면 두려움보다는 연민이 느껴졌다. 남편은 있을까? 많이 가난한 걸까? 말을 하지 못하니 얼마나 힘들까? 그녀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약간 떨어진 곳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한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다. 소를 몰고 오는 여인들을 보면 그녀가 생각났다. 어떻게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런데 며칠 전 그녀가 나타났다. 우리 집 뒤 풀밭에 앉아서 소에게 줄 풀을 매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풀을 매도될 텐데 왜 하필 이 뜨거운 한낮에 풀을 매는 거야?”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은 어떻게라도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집에 있던 빵과 바나나 그리고 물을 들고 그녀에게 갔다.

“안띠(인도에서는 여자 어른을 이렇게 부른다.) 이거 먹어요. 엄청 뜨거운데.”

환하게 웃더니 내가 준 빵과 바나나를 먹기 시작했다. 잘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전에 시장에서 내가 돈을 줬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고마웠다고.

다시 앉아서 풀을 매는 그녀 옆에 나도 앉았다.

“안띠. 압까 남꺄해?(이름이 뭐예요?)” 라고 물었다. 사실 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말을 못 하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그녀가 씩 웃더니 자신의 팔을 보여준다. “어....어...어” 자신의 팔을 보라는 말이었다. 그녀의 왼쪽 팔에는 ‘HASINA(하시나)’ 라고 쓰여 있었다. 하시나! 그녀의 이름이 참 예뻐 보였다. 아마 남편이나 가족이 타뚜(문신)로 이름을 새겨준 듯했다. 그녀의 이름을 알고 나니 이제는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왜 진작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이렇게 예쁜 이름이 있었는데.

이곳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가난하고 지저분해서, 또 이상해 보여서 그들을 멀리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조금만 그들에게 가까이 가면 전에 보지 못한 소중한 그들만의 모습들을 만난다. 난 그들의 진짜 모습들이 너무 좋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난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하시나. 하시나.

 다음에 보면 꼭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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