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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pr 23. 2017

멀리 걸어도 통하는 사이?

말하지 않아도 풍겨 나는 노부부의 뒷모습

“얘들아, 빨리나 와. 시간 다됐다.”

“엄마. 오토바이로 데려다주면 안 돼요?”

“안 돼. 얼마나 된다고. 걸어가야지.”

아침 7시 30분이면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준다. 둘이서 걸어가기 충분한 거리지만 혹시나 뱀이 나올까, 길거리 개들이 아이들에게 겁을 줄까 걱정이 되어 아침이면 아이들을 꼭 데려다준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는 길은 참 고요하다. 아침 일찍 날아다니는 새들을 구경하는 것도, 그리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들의 노래자랑을 듣는 것도 무척 행복한 일이다.     


요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상 부딪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 있다.

삐쩍 마른 할아버지는 인도 전통의상인 룽기를 입고 계시고 할머니는 옆구리가 다 보이는 낡은 사리를 입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입으신 룽기는 그냥 천 하나를 둘러서 입는 치마 같은 것으로 그 길이도 자기들이 조절해서 긴 것으로 때로는 짧은 치마처럼 입을 수 있다. 할아버지는 마른 자신의 다리를 선보이고 싶으셨는지 룽기를 아주 짧게 접어 올리셨다.     

매일 아침 노부부는 자신들이 기르는 소를 풀들이 많은 우리 집 근처로 가져다 놓으신다.

길을 걸어갈 때도 꼭 두 분은 싸우신 것처럼 인상을 쓰고 따로 걸어간다. 때로는 어디다가 소를 묶어 놓을 것인가를 두고 다투기도 하신다. 그런데도 매일 마다 두 분은 함께다.

나는 그렇게 같이 있지 않은 듯 또 함께 다니는 노부부의 모습이 좋았다.


그날은 소를 묶어 놓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주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인이 자신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신기한지 연거푸 내 등을 토닥이시던 할머니. 몇 개 없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으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신 거예요?” 생뚱맞은 나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머쓱해하더니 작게 답하셨다.

“70년.” 할아버지는 90이 다 돼 가시고 할머니는 80이 넘으셨다고 했다.

사실 이곳 시골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이를 잘 모른다. 요즘에야 ‘아다르 카드’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증이 나왔지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일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깜짝 놀란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도대체 몇 살에 결혼하신 거예요?”

“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 아 그래 저놈 만할 때쯤 했나 봐.”

할아버지의 손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우리 큰아들이었다. 아니 이제 11살 된 아이를 보고 그때쯤 결혼했다고 하시다니. 정확한 나이는 몰라도 분명 할아버지 기억에 아주 어릴 때 결혼했었나 보다. 하긴 요즘도 시골에서는 20살도 안된 여자 아이들이 아이들 여러 명을 낳고 생활하는 조혼이 있으니 옛날에는 더 했겠지. 아이는 몇 명을 낳았고 이 지역에서 쭈욱 살았다는 둥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이야기하시는 그분들의 모습 속에서 얼굴 곳곳이 그려져 있는 주름 속에서 난 그분들의 살아온 인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분들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사진에 담았다.

멀찌감치 떨어져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팔짱 끼고 진한 스킨십을 뽐내며 지나가는 젊은 커플보다도 더 사랑 넘쳐 보였다. 평생 살면서 싸우고 또 사랑하면서 이제는 없으면 허전한 그런 존재가 되었을 테니까.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노부부였지만 그들의 뒷모습은 힘들어 보이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함께여서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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