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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6. 2019

별난 아줌마에게 바치는 엉망진창 노래 선물

별난 아줌마가 남편을 울렸다. 그리고 나를 울렸다.

“여보. 내일은 어버이날이니까 잊지 말고 부모님께 전화해야 해요.”

“응. 알았어.”

“알람이라도 맞춰 놓을까?”


인도에 살다 보면 한국의 날짜가 아닌 인도의 날짜를 따라 산다. 그렇다고 달력이 다른 것은 아니다. 그저 인도의 공휴일을 더 따르게 되고 한국의 특별한 날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는 몇 주 지난 후에서야 아버님 생신을 기억했고 아빠 엄마 생신을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한국에 사는 남동생이나 가족들에게 연락을 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 놓는다. “야. 엄마 생신 때 나한테 꼭 문자 줘. 누나 자꾸 까먹는단 말이야.” 물론 알람을 맞춰 놓기도 하지만 알람도 확인 후 다시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평생 아버님만 의지하고 사시던 어머님께 아버님의 빈자리는 무척이나 컸다. 옛날 어른들이 그러셨듯이 어머님께 남편은 세상이었다. 좋으나 싫으나 아버님을 위해 사셨고 아버님과 항상 함께 하셨다. 그래서 어머님께는 암 투병하시던 아버님을 수발하던 5년이라는 시간마저도 소중한 것이었다.

“해옥아. 내가 혼자 사는 것은 괜찮은데 이 허리 아픈 것만 나을 수 있다면 하루만 살아도 원이 없겠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은 더 약해지셨다. 평생 살아오신 삶의 무게가 어머님을 눌러서 이제는 곧게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굽었고 그 무게가 마음도 누르고 있는 듯했다.

언제부턴가 자꾸 눈물을 흘리신다. 아들 가정이 멀리 인도에 있어서 그런지 통화를 할 때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은 남편과 함께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특별히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어머님을 위해 노래를 불러드리기로 했다. 남편과 인터넷에서 어버이날 노래를 찾았다. 안 부른 지 오래돼 가사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 노래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자주 부르던 “높고 높은 하늘이라~”로 시작되는 노래와 어렸을 적 자주 보던 ‘우정의 무대’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서 군부대 무대 뒤에 숨어있던 어머니가 나올 때 나오던 노래 “낳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가 있었다.

“캬~~ 이 노래. 기억나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남편은 혼자 추억에 잠겨서 눈을 감고 주먹을 흔들어 가며 노래를 부른다.

“여보. 이 노래로 하자. 이 노래 부르자.”

그렇게 우리는 가사를 프린트한 후 책상 위에 앉았다. 핸드폰을 가로로 잘 세워 놓고서는 화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머님이었다.

“어머님. 잠시만요.”

남편과 나는 밑에 펼쳐 놓은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뉜 자리 갈아 뉘시며......”

노래를 부르는데 핸드폰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이셨다. 어머님은 안경을 벗고서는 작은 눈을 닦으며 울고 계셨다.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홀로 소파에 앉아 아들 가족의 노래를 들으며 울고 있는 어머님을 보고 있노라니 내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떨리고 또 떨려서 떨리던 눈물이 노래를 삼켜버렸다. 그런 나를 보던 남편도 눈물을 훔쳤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 이 좋은 날 왜 우세요. 어머님이 우시니까 노래를 다 못 부르잖아요.”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 화면에 계신 어머님께 이야기했다.

“아. 엄마는 거참. 아들과 며느리가 노래를 못 부르게 하시네.”

울먹이며 말하는 며느리와 아들을 보시며 어머니는 더 우셨다.

눈물을 닦으면서 이야기하셨다.

“아니. 너 네 생각하니까. 거기서 고생하는 거 생각하니까. 애들도 보고 싶고.”

어머님은 벗었던 안경을 다시 끼셨다. 어머니 안경 속으로 주름진 어머님의 눈가에 고여 있는 눈물이 보였다.


나중에 남편은 말했다. 가사를 미리 읽는데 2절이 꼭 엄마의 모습 같았다고.

“어려선 안아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그러고 보니 어머님이 그랬다. 우리가 집에 간다고 연락이라도 하면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아파트 관리소 앞에 나가서 우리를 기다리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 쓰고 때로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밤늦은 시간에도 어머님은 우리를 기다리셨다. 남편은 항상 그런 어머님을 ‘별난 아줌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날 만큼은 그 별난 아줌마가 남편을 울렸다. 그리고 나를 울렸다.

그 날 우리의 노래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작은 키에 굽은 허리, 주름진 얼굴에 눈물도 많고 걱정도 많은 그 별난 아줌마를 위해 노래했다. 사랑을 담아서. 눈물을 담아서.


사랑합니다.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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