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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7. 2019

엄마의 터널

아니 이 터널 길게 보이더구먼 왜 이렇게 짧노?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였다.

“엄마. 일요일인데 늦게까지 자지.”

“어. 저기 아파트 앞에 있는 물 뜨러 가려고. 운동 삼아서.”

“그냥 정수기 물 먹지?”

“아이다. 정수기 물 보다도 거기 물이 엄청 맛있데이. 건강에도 좋다 카고. 빨리 안 가면 사람들이 줄을 슨다니까. 옥아. 니는 자라. 엄마 갔다 올게.”

“아니야. 엄마. 나도 갈게요. 잠깐만요.”


나는 머리를 질끈 묶고 엄마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사실 인도에서 올 때 짐을 적게 가지고 온다고 옷을 많이 안 가져왔었다.) 

엄마는 돌돌이(캐리어처럼 변신한 바퀴 달린 장바구니) 에다가 음료수 병들을 잔뜩 넣었다. 

잠바에 귀여운 여성 중절모까지 쓴 엄마는 물 뜨러 간다 하기에는 너무 완벽한 모습이었다.

“와~ 엄마. 멋지게 입으셨구먼.”

“니 더 안자도 되겠나? 내 혼자 가도 되는데.”

“괜찮니더. 어무이. 걱정 마이소. 딸내미가 따라가야제.”

나는 안동 사투리를 써가며 엄마를 따라나섰다. 

아파트 마당은 주차해 놓은 차들로 빽빽이 차 있었다. 일요일은 사람들이 쉬는 날이라 이렇게 차가 많은 거라고 엄마는 이야기했다. 엄마는 안동 물 뜨러 가는 길 전문 가이드처럼 길을 안내했다. 

아파트 정문을 나와서 내리막길을 걸어가니 큰 도로가 나왔다. 어렸을 적 엄마와 시장까지 걸어가던 그 길 그대로였다. 엄마는 시간만 나면 물을 뜨러 간다고 이야기했다. 가면서 운동도 하고 물도 뜨고 일석이조라고 이야기하셨다. 


새벽 날씨는 약간 쌀쌀했다. 엄마와 나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 뿐이었다. 물이 나오는 아파트로 가려면 긴 터널을 지나야 된다고 했다. 엄마가 빨리 걸어가도 15분은 걸리는 터널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옥아. 너 여기 터널 안 가봤제? 내가 좋아하는 터널이야. 새로 생긴 건데 긴 터널을 혼자 걸어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비 오는 날에도 운동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노? 근데 꽤 길어가지고 니가 힘들지 않을라?”

“아이고. 됐니 더. 엄마가 가는데 젊은 딸이 못 갈까 봐. 내가 또 걷는 거는 디기 잘한다 왜.” 

엄마와 내가 걸어가는 터널은 정말 길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음을 막는다고 길은 플라스틱 방음벽으로 감싸져 있었다. 한마디로 작은 동굴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 혼자 지나가면 안 무서워?”

“야. 뭐가 무섭노. 노래를 크게 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좋지. 나는 가끔 이 터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운동한다. 엄마처럼 여기서 운동하는 아주매들도 많다 왜.”

어두컴컴하고 긴 터널이 나는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는 혼자 이 터널을 걷는 게 좋은가? 터널에 미세먼지도 많다던데’ 나는 혼자 생각했다. 

엄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교회 노래였고 가끔 인생을 이야기하는 트로트도 있었다. 나는 터널 안으로 울려 퍼지는 엄마의 목소리가 좋았다. 

일찍 나와서 그런지 물을 뜨는 곳에는 우리와 다른 아저씨 한 분뿐이었다. 엄마는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기뻐했다. 


나는 엄마의 삶을 생각했다. 아침 일찍이 닭발 공장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닭발을 까고 저녁이 돼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의 일상을.

그래서 엄마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올 이 터널의 의미를.

엄마는 이 긴 터널을 걸으면서 인도에 사는 딸을 생각할 것이고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을 생각할 것이었다. 

엄마는 이 긴 터널을 걸으면서 이제 얼마 후면 둘째를 보게 될 막내아들을 기억할 것이고 그녀의 미래를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들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이 긴 터널을 걸으면서 인생을 기억하고, 인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터널은 엄마에게 쉼이었고 엄마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무대였다. 


“딸내미가 다르긴 다르네. 엄마 물 뜨는 것도 도와주고. 안 무겁나? 내가 끌고 갈까?”

“아이고. 됐니더. 엄마. 내 힘세다.”

돌아오는 길 물통을 싣고 오는 똘똘이는 꽤나 무거웠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의 터널은 여전히 길었다.

하지만 엄마와 걷는 터널이 좋았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추고 엄마와 나만의 수다 소리만 터널 안을 울리고 있었다.

어두 컴컴한 터널을 다 지나고 나니 눈이 부셨다. 나는 터널을 나오며 생각했다.


‘아니 이 터널 길게 보이더구먼 왜 이렇게 짧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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