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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4. 2019

젊은 아빠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라크에서 온 비밀 일기

어제부터 비가 내렸다 멈췄다 내렸다 한다. 비가 오다 갑자기 해가 뜨기까지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더니 여기 웨스트 뱅갈에서는 개가 장가가는 날이란다. 참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보면서 모두 웃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위는 한층 가셨다. 인도도 한국처럼 가을이 오는 것인가. 

남편은 출장을 가고 아이들은 시험 기간이고 날씨는 선선하고 나는 인도의 가을을 타고 있었다. 아주 멜랑꼴리한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앉아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서 내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글감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는데 내 머리 한 구석에 숨어 있는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아빠의 일기였다.


작년 봄이었나보다. 밤늦게 아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해옥아. 아빠 지금 머하는지 아니? 84년도 이라크에서 쓴 일기 읽고 있다.”

“와 진짜요? 멋지다 우리아빠.”

“옛 추억이 나를 부르네. 어제일 같은데 벌써 35년이 지났구나.”

“와. 아빠 나중에 저 가면 일기장 보여주세요. 내용 말고 일기장이라도 보고 싶어요.”

그러자 아빠가 잠시 뒤 문자를 보냈다.

“비밀이야.”

나는 아빠의 귀여운 메시지에 웃음을 보내드렸다.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아빠는 엄마와 결혼 하고 1년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해외 근로를 나갔다. 그때 그 시절은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아빠처럼 해외에 나가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마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한국에 일하러 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될까. 아빠는 그 사람들처럼 해외에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가족 앨범 안에는 긴 장발을 휘날리며 중동의 어느 바닷가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있다. 가끔 집에 가서 앨범을 열 때 아빠의 사진을 보긴 했어도 한 번도 아빠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때 아빠가 써 놓은 일기장이 있다니. 나는 생각만으로도 설렜다. 


다음 날 저녁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긴 이야기가 적힌 메시지였다. 나는 아빠가 보낸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아빠의 비밀 일기였다. 

“해옥아. 1984년 추석 전날 쓴 일기야.” 

“와. 1984년 이면 제가 2살 때네요.” 

아빠는 추억을 회상하며 그날의 일기를 한자 한자 메시지로 옮겨서 내게 보내주셨다. 문자를 길게 안 쓰시는 아빠가 일기를 핸드폰에 옮겨 쓰려니 오타도 많았다. 하지만 글자 하나하나에서 나는 1984년의 추석을 느꼈다. 

아빠는 그때 이라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있어서 공사 현장에서도 폭탄 소리를 듣곤 했다고 했다. 내가 인도에서 느끼는 명절의 느낌과 아빠가 이라크에서 느꼈을 추석의 느낌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해외에 나와 있지만 아빠는 가족들과 떨어져 해외에 있었던 것이니.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아빠의 일기를 읽어 내려갔다. 추석날 일하는 사람들끼리 집에 갈 차표는 끊었냐면서 요즘 차표 끊기가 힘들다며 농담을 나누는 이야기들을 읽는데 마음이 아렸다. 그곳의 이야기를 일기로 쓰던 아빠는 어느새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자야. 즐거운 추석되길 빈다. 해옥아. 너는 즐겁겠네. 친척들이 와서. 녀석 크면 아빠의 마음을 알까? 알 리가 없지....... 자야. 언젠가 당신과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나는 이 고통을 참을 수 있다.” 

아빠의 일기를 읽어 내려가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침을 삼켜도 또 삼켜도 뜨겁고 뭉클한 것이 자꾸 목으로 올라온다. 


그랬다. 나는 커서도 아빠의 마음을 몰랐다. 아빠가 내게 아빠의 비밀 일기를 보여주기 전까지 나는 아빠의 마음을 몰랐다. 평생 산 들 자식이 부모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서른 살의 아빠가 아내와 어린 딸과 떨어져 그 멀리에서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아빠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가난한 집안을 돕기 위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지금의 아빠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 아빠는 어렸었고 외로웠고 힘들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하던 그 비밀스러운 감정을 그날 아빠가 내게 보내왔다. 내게 보내주신 아빠의 일기는 한동안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아빠는 말했다. 

“내가 쓴 일기지만 추억에 눈물이 나려고 하는구나.”

그날의 아빠의 추억에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더 많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엄마와 아빠의 그 시절을 제게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젊은 시절 중동의 바닷가에 서 있는 아빠의 사진을 떠올렸다. 바다 건너편에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아빠의 젊은 시절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해옥아. 그때도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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