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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Jan 07. 2020

연중행사 남편의 손 편지

마음이 담긴 편지 선물이 나는 좋았다

생일날 아침.
여느 때 같으면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부엌에 서서 아침을 하고 있을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났던 터라 나는 밥을 하고 남편이 끓일 미역을 물에 담갔다. 남아있던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남편이 뒤늦게 들어왔다.
“벌써 밥 했어?”
“네. 밥은 했고 미역국은 안 했습니다.”
“아이. 밥도 내가 했어야 했는데. 자. 그러면 이번에는 또 뭘 넣어 볼까?”
남편은 작년에도 그랬듯이 미역국에 된장 한 스푼을 넣었다. 감자와 양파 버섯 등 있는 야채들은 다 넣은 듯하다. 성민이 현민이는 아빠의 특이한 미역국 요리법에 인상을 써가면서 걱정을 한다.
“엄마. 이거 괜찮아요? 아빠 미역국에 이상한 거 다 넣어요.”
“응. 그게 아빠 표 미역국이야. 맛있을 거야. 좀 특이하긴 해도.”
“여보. 설탕도 좀 넣어 볼까?”
“아이고 아니. 설탕만 빼고 다른 건 다 넣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평소보다도 더 늦은 생일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손님으로 와 있던 쌤 가정도 함께 식탁에 앉았다. 내가 요리한 밥과 남편이 준비한 감자볶음 그리고 미역국이 나란히 식탁 위에 올려졌다. 식사 기도가 마치고 밥을 먹으려는데 남편이 문 밖에서 무언가를 들고 왔다.
바로 집 앞에 있는 화단에서 꺾은 작고 예쁜 장미 꽃다발이었다.
“이거 만드느라 좀 늦었어. 이 꽃은 안개꽃 대신으로. 어때 진짜 안개꽃 같지 않아?”
“참. 여보. 하나 더 있어. 얘들아. 아빠는 이제 숙제 끝났다~~”
숙제라는 말에 나는 남편이 준비한 선물이 바로 편지라는 것을 알았다.
일 년에 딱 하루 내가 남편에게 편지를 받는 날이 바로 오늘 생일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손 편지가 좋았다.
작년 남편의 선물은 편지와 함께 아주 좋은 전기 히터였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겨울이 되면 날씨가 꽤 춥다. 한국처럼 방안에 난방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 안에 있을 때도 음식을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두꺼운 옷에 조끼나 잠바까지 입고 있어야 했다.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이 준비했던 크고 비싸 보이는 전기 히터는 그 당시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전기 히터를 사용하기에는 우리 동네 전력이 너무 약했다. 전기 히터를 틀 때마다 곧바로 우리 집 모든 전기가 꺼져 버렸다. 결국 우리는 비싸고 좋은 전기 히터 기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겨울을 지나야 했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이번에 다른 때 보다 더 정성 들여 쓴 편지와 꽃을 선물했다.
신혼 때 종이 한 장을 채우지 못해서 난감해하던 남편이 이제는 두 장을 꽉 채워서 내게 마음을 선물해 주었다.

안개 가득한 새벽녘에 장미를 손질하고 있는 남편을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편지지를 출력하고 그 위에 고민하며 편지를 쓰고 있는 남편을 그려보았다.
값비싼 전기 히터보다도 직접 손질한 꽃다발과 남편의 마음이 담긴 편지 선물이 나는 좋았다.
그의 시간과 마음이 꽃다발과 편지 안에 콕콕 박혀 있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한동안은 남편의 편지에 힘을 얻어 살아갈 것 같다.

“힘들고 지칠 땐 당신이랑 걷고 싶고, 좋은 일이 있을 땐 당신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땐 연락하고 싶고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안정되고 힘이 나고 암튼 여러 가지로 고맙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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