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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4. 2019

세상 제일 멋진 현장 소장님

아빠와의 화상통화

해외에 사는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부모님과 통화를 한다. 인터넷 신호가 좋을 때는 화상 통화로 인터넷 신호가 좋지 않을 때는 음성 통화로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인도와 한국의 시간차가 3시간 30분이기 때문에 평일에는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한국은 벌써 밤이 되곤 해서 주말을 택한 것이다.

이제 60대 후반으로 들어선 아빠는 아직도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새벽 5시면 식사를 하시고 일하러 나가신다. 엄마는 닭발 공장에서 일하고 계셔서 아침 7시면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태우러 오는 회사 봉고차를 기다리러 아파트 앞 큰길에 나가 서 계신다. 엄마와 아빠는 일 년 내내 거의 비슷한 날들을 보내신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러 가고 저녁이면 돌아와 하루를 마감하고 평범하면서도 너무나 성실한 두 분은 나에게 보석 같은 존재이시다.


그날은 한낮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끔 일 하시면서도 연락을 하셔서 당연히 건축 현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집 컴퓨터 앞에 앉아 계셨다.

“어? 아빠. 일하러 안 가셨어요?”

“그래. 아빠 요즘 쉬잖나. 허리가 아파서 병원 갔더니 일을 좀 쉬라고 하더라. 잘됐지 뭐.”

“거 봐요. 아빠. 미리미리 안 쉬어 주니까 몸이 억지로 쉬게 하는 거잖아요. 잘됐어요. 아빠. 푹 쉬어요.”

“그래. 뭐 뒹굴뒹굴 잘 쉬고 있다. 세상 좋네.”

“아이고. 그럼 엄마가 가장이네. 하하하. 아빠는 쉬고 엄마가 일하니까.”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으셨다.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갔지만 난 아빠가 마음에 쓰였다. ‘허리가 빨리 괜찮아져야 할 텐데. 또 회사에서 부른다고 일하러 가시면 안 될 텐데.’


며칠 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갑자기 아빠 생각이나 전화기를 들었다.

‘아빠는 분명히 집에서 쉬고 계실 테니까 화상통화로 해야겠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얼굴이 보이는 화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 울리지 않아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어. 딸내미야?”

화상통화 속의 아빠는 집안에서 편히 쉬고 있는 아빠가 아니었다.

안전모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화를 받는 아빠는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였다.

“아빠! 아니 왜 현장에 계셔요? 벌써 허리가 나았어요? 한 열흘 쉬어야 한다면서요.”

“아. 딸내미. 아니 회사에서 내가 꼭 필요하다고 나와 달라고 사정을 하잖아. 어쩌겠노. 와야지.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닳아 없어지는 게 낫지.”


또 그 말이다. 나는 아빠가 닳아 없어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항상 마음이 아팠다. 벌써 은퇴할 나이인 아빠라고 어디 쉬고 싶지 않을까. 넉넉지 않은 형편에 어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 일을 멈추지 못하신다는 것을 나는 다 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쓰라렸다.

주위로 시끄러운 공사 소리가 들리고 일꾼들 목소리가 들렸다.  

하얗고 형광색 테이프가 붙여져 있는 회사 조끼를 입은 아빠.

안전모를 쓴 아빠 얼굴에서 땀이 물 흐르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빠 몰래 스크린숏으로 아빠의 얼굴을 저장했다.

그리고 가끔 갤러리에서 아빠의 얼굴을 본다. 감사해서 보고 미안해서 보고 또 사랑해서 본다.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현장 소장님을 봤다.

아빠!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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