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살다 보면 한국의 날짜가 아닌 인도의 날짜를 따라 산다. 그렇다고 달력이 다른 것은 아니다. 그저 인도의 공휴일을 더 따르게 되고 한국의 특별한 날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는 몇 주 지난 후에서야 아버님 생신을 기억했고 아빠 엄마 생신을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한국에 사는 남동생이나 가족들에게 연락을 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 놓는다. “야. 엄마 생신 때 나한테 꼭 문자 줘. 누나 자꾸 까먹는단 말이야.” 물론 알람을 맞춰 놓기도 하지만 알람도 확인 후 다시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평생 아버님만 의지하고 사시던 어머님께 아버님의 빈자리는 무척이나 컸다. 옛날 어른들이 그러셨듯이 어머님께 남편은 세상이었다. 좋으나 싫으나 아버님을 위해 사셨고 아버님과 항상 함께 하셨다. 그래서 어머님께는 암 투병하시던 아버님을 수발하던 5년이라는 시간마저도 소중한 것이었다.
“해옥아. 내가 혼자 사는 것은 괜찮은데 이 허리 아픈 것만 나을 수 있다면 하루만 살아도 원이 없겠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은 더 약해지셨다. 평생 살아오신 삶의 무게가 어머님을 눌러서 이제는 곧게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굽었고 그 무게가 마음도 누르고 있는 듯했다.
언제부턴가 자꾸 눈물을 흘리신다. 아들 가정이 멀리 인도에 있어서 그런지 통화를 할 때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은 남편과 함께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특별히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어머님을 위해 노래를 불러드리기로 했다. 남편과 인터넷에서 어버이날 노래를 찾았다. 안 부른 지 오래돼서 가사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 노래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자주 부르던 “높고 높은 하늘이라~”로 시작되는 노래와 어렸을 적 자주 보던 ‘우정의 무대’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서 군부대 무대 뒤에 숨어있던 어머니가 나올 때 나오던 노래 “낳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가 있었다.
“캬~~ 이 노래. 기억나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남편은 혼자 추억에 잠겨서 눈을 감고 주먹을 흔들어 가며 노래를 부른다.
“여보. 이 노래로 하자. 이 노래 부르자.”
그렇게 우리는 가사를 프린트한 후 책상 위에 앉았다. 핸드폰을 가로로 잘 세워 놓고서는 화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머님이었다.
“어머님. 잠시만요.”
남편과 나는 밑에 펼쳐 놓은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뉜 자리 갈아 뉘시며......”
노래를 부르는데 핸드폰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이셨다. 어머님은 안경을 벗고서는 작은 눈을 닦으며 울고 계셨다.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홀로 소파에 앉아 아들 가족의 노래를 들으며 울고 있는 어머님을 보고 있노라니 내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떨리고 또 떨려서 그 떨리던 눈물이 노래를 삼켜버렸다. 그런 나를 보던 남편도 눈물을 훔쳤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 이 좋은 날 왜 우세요. 어머님이 우시니까 노래를 다 못 부르잖아요.”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 화면에 계신 어머님께 이야기했다.
“아. 엄마는 거참. 아들과 며느리가 노래를 못 부르게 하시네.”
울먹이며 말하는 며느리와 아들을 보시며 어머니는 더 우셨다.
눈물을 닦으면서 이야기하셨다.
“아니. 너 네 생각하니까. 거기서 고생하는 거 생각하니까. 애들도 보고 싶고.”
어머님은 벗었던 안경을 다시 끼셨다. 어머니 안경 속으로 주름진 어머님의 눈가에 고여 있는 눈물이 보였다.
나중에 남편은 말했다. 가사를 미리 읽는데 2절이 꼭 엄마의 모습 같았다고.
“어려선 안아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그러고 보니 어머님이 그랬다. 우리가 집에 간다고 연락이라도 하면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아파트 관리소 앞에 나가서 우리를 기다리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 쓰고 때로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밤늦은 시간에도 어머님은 우리를 기다리셨다. 남편은 항상 그런 어머님을 ‘별난 아줌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날 만큼은 그 별난 아줌마가 남편을 울렸다. 그리고 나를 울렸다.
그 날 우리의 노래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작은 키에 굽은 허리, 주름진 얼굴에 눈물도 많고 걱정도 많은 그 별난 아줌마를 위해 노래했다. 사랑을 담아서. 눈물을 담아서.